과학 이야기
과학과 놀자 (6) 나노 물성

물질의 특성은 크기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을까?
과학자는 물질을 연구한다. 물질을 연구하는 것은 물질의 새로운 성질을 알아내는 일, 새로운 물성을 가진 물질을 만드는 일, 새로운 물질을 활용하는 일 등을 포함한다. 예를 들면, 그래핀(graphene)에서 휘는 성질과 전기를 잘 통하는 성질이 있음을 밝히는 일, 그래핀을 합성하는 일, 이 물질을 이용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 일 등이 과학자가 하는 일에 해당한다. 그런데 새로운 성질이 없다면 합성하는 것도 응용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물질의 성질을 연구하는 일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개념은 국가에서 공시한 교육과정에 따르고 있다. 2015년 개정 교육과정 문서에서 물질의 특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물질과 혼합물의 개념을 이해하여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물질을 구별할 수 있도록 한다. 밀도, 용해도, 끓는점, 어는점 등이 물질의 특성이 될 수 있음을 알고…밀도, 용해도, 끓는점, 어는점이 물질의 특성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

한편, 중학교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물질의 특성을 정의하고 있다.

< 물질은 색깔, 맛, 냄새와 같은 겉보기 성질과 부피, 질량, 길이 등 크기 성질과 끓는점, 밀도와 같이 물질의 양과 관계없는 세기 성질을 갖는다. 물질의 여러 가지 성질 중 그 물질만이 나타내는 고유한 성질을 물질의 특성이라고 한다. >

그래서 학생들은 끓는점, 녹는점, 밀도, 용해도 등 양과 관계없이 일정한 값을 갖는 물질의 성질을 물질의 특성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물질의 특성은 크기와 무관한 값을 갖는다고 인식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배울 때도 금을 반씩 나누어갈 때 금의 녹는점이 일정한지 달라지는지 추론하는 과정에서 크기와 관계없이 일정한 녹는점이 금의 특성이라고 확인한다.

계속 작게 나누면 어떻게 될까?
 금 입자의 크기에 따른 녹는점  출처: ancientnano.org
금 입자의 크기에 따른 녹는점 출처: ancientnano.org
금의 녹는점은 1064℃이다. 그러면 금 덩어리를 계속 반씩 잘라서 크기를 줄여도 녹는점이 항상 일정할까? 금 알갱이가 눈으로 보이고 현미경으로 보일 때까지는 녹는점이 변하지 않고 일정하다. 하지만,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아지면 녹는점 값이 줄어들기 시작해 그 크기가 10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를 의미) 이하로 줄어들면 녹는점이 급격하게 줄어든다(그림 1). 즉, 크기가 매우 작아지면 물질의 특성으로 볼 수 있는 녹는점이 크기에 무관하지 않고 크기에 의존하는 성질을 보인다.
 은 나노 입자가 분산된 수용액의 다양한 색(좌)과 은 나노 입자의 전자현미경 사진(우)
은 나노 입자가 분산된 수용액의 다양한 색(좌)과 은 나노 입자의 전자현미경 사진(우)
물질의 크기가 나노 영역으로 작아지면 물질의 녹는점을 비롯해 다양한 물성들이 원래의 성질과 달라지고, 크기와 구조에 따라 변한다. 물질의 특성으로 여겨지는 색도 변한다. 그림 2에 나타낸 유리병은 약 15㎚ 크기의 은 나노 입자가 물에 분산돼 있는 것으로 우리가 아는 은의 색이 아니라 다양한 색을 보여주고 있다. 은이 이 정도로 작아지면 색깔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균을 없애는 성질도 생겨서 은 나노 입자를 이용한 항균 제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나노는 무엇이 특별한가?

크기가 작아져서 나타나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부피 대 표면적 비가 매우 커진다는 것이다. 1㎤ 크기 입자의 표면적은 6㎠인데, 이 물질을 1nm 크기로 작게 나누면 표면적이 6×107㎠이다. 즉, 표면적이 1000만 배 더 증가한 것이다. 이런 특성은 고체 촉매를 이용한 반응에 크게 도움을 준다. 같은 양의 촉매를 사용하지만 반응을 일으키는 표면적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반응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유용하다. 실제 자동차에서 연소한 기체를 배출하기 전에 거치는 촉매 변환기에 이런 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물질의 크기가 나노 크기로 작아질 때 녹는점, 색 등의 물질의 성질이 달라지는 특성을 이용하면 기존에 만들 수 없었던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 QLED 디스플레이에 대한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한데, 이 기술의 핵심 소재는 양자점(Quantum Dot)이라는 물질이다. 이 물질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의 크기가 변하면 에너지 간격이 조절돼 3원색을 선명하게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차세대 디스플레이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앞에서 본 금도 10nm 이하로 크기가 작아지면 녹는점이 300℃ 이하로 내려가는데, 그러면 헤어드라이어를 이용해도 금을 녹일 수 있다. 이 현상을 이용하면 회로의 도선을 잉크젯 프린터로 프린팅하는 기술이 가능해진다. 실제 나노 잉크라는 기술로 활발히 연구되고 실용화되고 있다.

정대홍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
정대홍 서울대 화학교육과 교수
크기에 따라 물질의 성질이 달라지는 나노의 세계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물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알고 있던 물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도 해주고,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도 있으며, 생명과학과 의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 분야에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과학을 배우면서 새로운 나노의 세계에 흥미를 가지고 접근해 미래에 나노를 활용한 꿈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기억해주세요

물질의 크기가 나노 영역으로 작아지면 물질의 녹는점을 비롯해 다양한 물성들이 원래의 성질과 달라지고, 크기와 구조에 따라 변한다. 나노의 세계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물성을 발견할 수도 있고, 알고 있던 물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도 해주고, 이를 이용해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도 있으며, 생명과학과 의학을 비롯한 많은 학문 분야에 새로운 도구를 제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