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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724호 2021년 10월 4일

국어와 영어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백주대낮''은 곧 ''벌건 대낮''이죠


“이제 더 이상 이런 불법폭력이 백주대낮에 벌어지는 일이 없도록 개혁해야 합니다.” 얼마 전 제1야당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서 이른바 강성 귀족노조로 알려진 노동단체를 비판하며 언급한 대목이다. 정치는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문장 안에 쓰인 ‘백주대낮’이란 표현이 익숙하면서도 어딘지 좀 어색하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백주대로’를 비틀어 ‘백주대낮’이라 말해
이 말을 꽤 자주 접한다. “백주대낮에 이런 시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백주대낮에 버젖이 거짓말하다니….” 그런데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백주대낮’이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래 ‘백주대로’란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비틀어 변형된 형태로 쓴 것이기 때문이다.

실은 사전에 ‘백주대로’란 말도 없다. ‘백주’와 ‘대로’가 각각의 단어로 있을 뿐이다. 백주(白晝)란 ‘환히 밝은 낮’을 뜻한다. 순우리말로는 ‘대낮’이다. ‘백주의 강도 사건’ ‘술에 취해 백주에 대로를 활보한다’ 식으로 쓴다. 그러고 보면 주로 부정적인 문맥에서 쓰인다. 용례가 다 그렇다. ‘대로(大路)’는 말 그대로 크고 넓은 길이다. 고유어로 ‘큰길’이라고 한다. 이 두 말이 어울려 ‘백주 대로에…’ 같은 표현이 나왔다. 한 단어가 아니라서 붙여 쓰지 않고 띄어 쓴다. 당연히 사전 표제어에는 없고 각각의 단어가 따로 올라 있다.

그럼 왜 이 ‘백주 대로’가 ‘백주대낮’으로 바뀌어 나타날까? 고유어 ‘대낮’은 ‘환히 밝은 낮’을 뜻한다. 한자어 ‘백주’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 ‘백주대낮’은 ‘역전앞’ 같은 겹말에 해당한다. 글쓰기에서 새삼 겹말의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는 없다. 중복 표현은 세계 어느 언어에서나 다 있고, 우리말에도 처갓집 고목나무 전선줄 해변가 등 단어로 인정돼 사전에 올라 있는 게 워낙 많다.
토박이말 ‘벌건 대낮’이 친숙하고 알기 쉬워
일반적으로 글쓰기에서는 ‘간결함’을 추구하기 때문에 ‘백주대낮’ 같은 중복 표현을 기피한다. 더구나 ‘백주대로’란 본래의, 온전한 표현이 있으니 이의 잘못이라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주대낮’은 아예 쓰면 안 될 말일까?

겹말이 생겨나는 까닭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왜 ‘백주대낮’을 자꾸 쓰는지 이해가 간다. ‘백주’라는 한자어 자체로는 어감을 충분히 전하기 힘드니 몸에 익숙한 고유어 ‘대낮’을 덧붙인 것이다.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는 ‘백주(白晝)=대낮’이란 관계를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역(逆)으로 ‘대낮’만을 쓰는 것도 뭔가 아쉽다고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강조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덧붙여 쓰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백주대낮’이 아닐까 싶다.

순우리말 표현에 ‘벌건 대낮’이란 게 있다. 관용구 ‘벌건 거짓말’이 뻔히 드러날 만큼 터무니없는 거짓말(‘새빨간 거짓말’과 같은 말)이란 뜻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벌건 대낮’은 환히 드러나는 밝은 낮이다. 그러니 대낮을 강조하고 싶다면 굳이 잉여적 표현인 ‘백주대낮’보다 ‘벌건 대낮’을 쓰면 된다. ‘백주대로’는 좀 무겁고, ‘백주대낮’은 틀린 말 시비가 있으니 ‘벌건 대낮’이라고 하면 딱이다.

우리말은 생각하기에 따라, 실천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우리 스스로 지키고 키워갈 수 있다. ‘백주대로’야 원래 있던 말이고, ‘백주대낮’도 조어법상 만들어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벌건 대낮’이란 우리 고유 표현을 쓰면 말맛도 살리고 우리말 어휘도 풍성하게 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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