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이야기

(4) 흙의 경제학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매장 무덤.  한경 DB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발굴된 선사시대 매장 무덤. 한경 DB
흙은 동양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모두 농경이 경제생활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성서에 등장하는 첫 인간인 ‘아담’은 히브리어로 땅 또는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에서 나왔다. ‘이브(하와·하바)’는 히브리어로 생활을 뜻하는 ‘하바(hava)’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적 사고에서 최초 남자와 여자의 이름은 ‘흙’과 ‘삶’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라틴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호모(homo)’ 역시 ‘살아있는 흙’을 뜻하는 단어 ‘후무스(humus)’에서 나왔다. 농경지 유지하려면 소금 유입 차단해야하지만 그처럼 중요한 흙이었지만 관리가 쉽지는 않았다. 흙의 관리에 실패했을 때 문명권의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문명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출발부터 인류는 흙 관리에서 삐걱거렸다. 인류는 최초로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지력 관리에 실패했다. 반건조 지대 지하수에 소금이 많이 녹아 있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메소포타미아 같은 반건조 지대에서 흙에 소금이 축적되는 것을 막으려면 적당한 수준에서 농경지에 물을 계속 대주거나 주기적으로 농경지를 묵혀야 했다. 하지만 강변의 경작 가능한 토지를 중심으로 생산량이 급증하고, 그에 따라 인구밀도가 갑작스럽게 높아지면서 이 같은 처방이 불가능해졌다. 배수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비옥한 농경지는 짧은 시간에 불모지가 돼버렸다.

지역의 젖줄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연안 토지는 평평한 데다 돌도 적고, 정기적인 범람으로 신규 토사 유입도 원활해 비옥하긴 했다. 하지만 불리한 자연조건도 있었다. 두 강의 강물은 북쪽 산맥에서 눈이 녹는 봄에 유량이 절정을 이루는데, 작물에 물이 가장 필요한 때인 늦여름에서 초가을엔 오히려 물이 가장 부족했다. 집약 농업에선 기온이 급등하는 여름에 더 많은 물이 필요한데, 농경지에 댄 어마어마한 물은 뜨거운 햇빛을 받아 금세 증발되고 더 많은 소금이 흙에 스며들었다.

결국 이 지역에서 첫 문명을 건설했던 수메르인은 농경지를 묵혀두는 기간이 점점 짧아질 수밖에 없었고 그 피해는 커져만 갔다. 기원전 3000년경 수메르인이 남긴 최초의 수확 기록에서는 보리와 밀의 수확량이 같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밀의 비중이 줄고 보리 비중이 높아졌다. 밀이 소금 농도에 더 민감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2500년이 되면 밀은 작물 수확량 가운데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원전 2000년엔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더 이상 밀은 자라지 않았다.

땅의 사막화 위험은 언제나 있어반면 아프리카대륙에서 이집트 문명을 꽃피운 나일강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나일강의 물은 소금기가 적고, 해마다 강가의 농경지에 엄청난 양의 새로운 침적토를 실어다줬다. 이에 따라 이집트의 농업은 수천 년간 매우 생산성이 높았고, 로마 시대에는 로마제국을 먹여 살리는 곡창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집트는 오랫동안 로마황제의 직할지로 ‘특별관리’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조건에 변화를 준 것은 19세기였다. 19세기 초 유럽으로 수출할 목화를 재배하겠다는 야심으로 영국은 공격적인 관개농업을 나일강에 도입했다. 지나치게 물을 대는 농경지 밑으로 지하수면이 솟아오르면서 흙에 소금이 축적됐다. 1880년경 영국의 농업 전문가 매켄지 윌리스는 관개 농경지를 “흰 소금이 땅을 덮어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처럼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고 묘사할 지경이 됐다.

이런 현상은 1952년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돼 1970년 완공된 아스완댐 효과로 더욱 심해진다. 호수에 담긴 물이 증발하면서 오히려 많은 물이 사라졌고, 나일강 삼각주에 침적토 공급이 끊겼다. 나일강 유역은 곡창지대로서 지력이 고갈되기 시작했고, 오늘날 화학비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역이 됐다.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지중해의 식량공급지였던 나일강 하구는 오늘날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처지가 됐다.

데이비드 S 랜즈 하버드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표현에 따르면 건조지대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도박’이다. 땅의 사막화 위험은 상존했다. 이 같은 위험은 사하라 사막 남부 지역이나 아라비아 사막 북부 지역부터 미국 대평원까지 모두 동일하게 적용됐다. 옛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이 곡물과 면화를 경작하려고 애썼던 바이칼 호수 주변 시베리아 초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흙의 관리는 고대세계에서 경제생활의 기초였고, 현대에도 세계 각지에서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인 셈이다. NIE 포인트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밀이 자라지 못하게 된 메소포타미아…흙을 잘못 다스리면 문명이 사라졌다
①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강·유프라테스강) 이집트(나일강) 인더스(인더스강) 황허(황허) 문명 등 선사시대 주요 문명이 강 주변에서 발달한 이유는 왜일까.

②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 댐이나 보 등을 설치해야 할까, 침적토 등이 공급될 수 있도록 인공구조물을 없애야 할까.

③ 식량 증산을 위해 새만금 시화호 등 간척 사업을 더 해야 할까, 해양 생태계 보존을 위해 간척지 등 바닷가를 복원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