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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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도토스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의 선물"…세계 4대 문명·한강의 기적도 물 덕분이죠
물은 생명을 낳았고 문명을 키웠습니다. 인류 역사상 농사를 시작한 문명은 물을 따라 나타났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을 보세요. 고대 이집트 문명은 아프리카를 종단하는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말했지요.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등장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라는 쌍둥이강에서 일어났습니다. 메소포타미아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어로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이니 참 신기합니다. 인더스 문명 역시 물 문명이었습니다. 인더스강의 잦은 범람은 수리 시설을 끊임없이 자극해 발전시켰습니다. 이 문명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물 관리 실패 때문이었다는 설명이 있을 정도로 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문명이었습니다. 중국 문명은 거대한 물의 세계, 황허강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황허 문명이라는 것이죠. 고대 문명, 그러니까 기원전 수백, 수천 년 전에 나타난 거대 문명은 ‘물=문명’임을 역사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거죠.이 등식은 훗날 등장하는 지중해 문명에도 적용됩니다. 영어로 표기되는 지중해(Mediterranean) 역시 그리스어로 ‘땅 사이의 바다’를 뜻합니다. 땅 사이에 놓인 바다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와 로마였습니다. 지중해는 유럽 세계를 잇는 평평한 도로와도 같았습니다. 배를 띄우면 어디든 갈 수 있었죠. 이는 곧 지중해가 상업 중심로였다는 의미입니다. 자본과 물건, 사람이 오가는 바닷길을 장악하는 나라가 최강 국가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성장하면서 그리스 문명은 지중해의 ‘슈퍼 파워’가 됐습니다.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 전쟁도 사실 해상패권을 둘러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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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밀이 자라지 못하게 된 메소포타미아…흙을 잘못 다스리면 문명이 사라졌다
흙은 동양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모두 농경이 경제생활의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성서에 등장하는 첫 인간인 ‘아담’은 히브리어로 땅 또는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에서 나왔다. ‘이브(하와·하바)’는 히브리어로 생활을 뜻하는 ‘하바(hava)’와 관련이 있다. 기독교적 사고에서 최초 남자와 여자의 이름은 ‘흙’과 ‘삶’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라틴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호모(homo)’ 역시 ‘살아있는 흙’을 뜻하는 단어 ‘후무스(humus)’에서 나왔다. 농경지 유지하려면 소금 유입 차단해야하지만 그처럼 중요한 흙이었지만 관리가 쉽지는 않았다. 흙의 관리에 실패했을 때 문명권의 경제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문명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출발부터 인류는 흙 관리에서 삐걱거렸다. 인류는 최초로 농경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지력 관리에 실패했다. 반건조 지대 지하수에 소금이 많이 녹아 있는 것을 몰랐던 탓이다. 메소포타미아 같은 반건조 지대에서 흙에 소금이 축적되는 것을 막으려면 적당한 수준에서 농경지에 물을 계속 대주거나 주기적으로 농경지를 묵혀야 했다. 하지만 강변의 경작 가능한 토지를 중심으로 생산량이 급증하고, 그에 따라 인구밀도가 갑작스럽게 높아지면서 이 같은 처방이 불가능해졌다. 배수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비옥한 농경지는 짧은 시간에 불모지가 돼버렸다.지역의 젖줄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연안 토지는 평평한 데다 돌도 적고, 정기적인 범람으로 신규 토사 유입도 원활해 비옥하긴 했다. 하지만 불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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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인류 최초의 교역품은 비너스와 칼이었다
2008년 9월 독일 슈바벤 지역 펠스 동굴에서 3만5000년 전의 매머드 이빨에 조각된 비너스 상이 발견됐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각품에 세간의 이목이 쏠렸다. 사실 비너스 상이라고 불리는 여인의 나체상은 문자가 없던 석기시대의 문명 교류와 인류의 장거리 이동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구대륙 각지에서 발견되면서 선사시대의 글로벌화한 문화교류의 흔적으로 꼽힌다. 19세기 말엽부터 서유럽과 동유럽, 시베리아의 여러 곳에서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여러 형태의 여인 나체상이 발굴됐다. 학자들은 이 여인상을 여성의 원형으로 간주해 ‘비너스’라고 이름 붙였다. 동서 문명 교류를 증명하는 비너스 상동서 문명 교류사 연구자인 정수일 박사에 따르면 1882년 프랑스 브라상푸이에서 처음 유물이 출토된 뒤 펠스의 비너스가 나오기 전까지 7개 지역 19개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의 비너스 상이 다수 발견됐다. 구체적으로 레스퓌그와 브라상푸이 등 프랑스 다섯 곳에서 비너스 상이 나왔다. 이탈리아 세 곳, 독일 남부 한 곳도 출토지다. 유명한 발렌도르프 비너스 상이 나온 오스트리아 발렌도르프를 비롯해 옛 유고연방 지역 두 곳과 우크라이나 다섯 곳, 동시베리아의 코스텐키와 아브데보 등에서도 비너스 상이 발견됐다. 프랑스에서 바이칼호 연안까지 북방 유라시아 광활한 영역에 출토지가 산재해 있고 제작 연대는 보통 2만5000년에서 2만년 전의 후기 구석기시대로 추정된다. 대부분 크기가 왜소해 가장 작은 이탈리아 트라시메노 출토 비너스 상은 높이가 3.5㎝ 정도이고 가장 큰 이탈리아 사비냐노 출토품도 22㎝에 불과하다. 펠스 비너스도 높이가 겨우 6㎝다.1979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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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3) 중국 문명 이야기
■기억해 주세요^^明나라는 淸나라보다 영토는 작았지만, 관습, 언어, 인종 등이 훨씬 더 ‘중국적’이었다. 오늘날 중국 영토의 많은 부분은 청나라 때 비로소 중국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역이다.중국은 문명이다. 국가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인구가 많고 영역도 넓다. 서쪽 신장지구의 터키계 이슬람 신도들과 불교 및 내세를 믿는 티베트 주민들, 농경문화와는 거의 접점이 없는 유목민들이 모두 ‘중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통치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다른 민족들이 ‘한 나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한족으로 동질화가 가능한가중국 문제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정치학자 로스 테릴(Ross Terrill)에 따르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단일성’에 집착한다. 동일한 역사와 동일한 풍습이 있다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사실로 포장한다. 예컨대 동서로 네 시간의 시차가 나는 데도 중국 정부는 단일 시간대를 고수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베이징의 시간에 맞춰 ‘새벽 세 시’를 ‘아침 일곱 시’로 인정해야만 한다.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정보가 없고, 중앙정부가 힘으로 각 지역을 누를 수 있다면 중국은 갈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모든 지역의 정보교류와 경제교류 총량이 빠르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의 방식은 거의 수명이 다 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대내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연방제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법에 의거해 문화적 인종적 소수파에게 보다 너른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각 지역의 독자성을 인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