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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93호 2021년 2월 1일

Cover Story

로마제국·16세기 스페인·짐바브웨, 모두 인플레로 파탄


정부가 쓸 돈을 더 마련하려고 세금을 올리면 대부분의 사람은 화를 냅니다. 정부가 세금을 많이 떼갈수록 쓸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부는 새로운 방법을 씁니다. 이 방법은 세금을 올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사람들의 화를 당장 돋구진 않습니다. 정부가 돈을 많이 찍어내 쓰는 방법, 즉 인플레이션 수법입니다. 토머스 소웰이라는 경제학자는 《베이직 이코노믹스》라는 책에서 “인플레이션은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썼습니다. 세상의 모든 정부는 늘 쓸 돈이 적다고 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유사 이래로 그랬습니다. 정치와 권력이 타락한 나라는 멋대로 돈을 찍어내 썼고, 그러다가 망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인플레이션 사례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그리스-로마의 인플레이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재위 BC 336~BC 323)이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진진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적 관점 즉, 인플레이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대왕입니다. 그는 정복 전쟁을 통해 많은 보물을 노획했습니다. 금을 비롯해 값나가는 물건들이 일시에 그리스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리스에 돈이 넘쳐난 것이죠. 그러자 그리스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인플레이션 현상 즉, 생산능력보다 돈의 공급이 많아서 돈의 가치가 폭락한 겁니다. 물가 폭등으로 그리스는 대혼란에 빠졌더랬습니다. 로마가 망한 이유 중 하나로 경제학자들은 ‘화폐 타락(돈을 많이 발행)’을 듭니다. 코모두스 황제는 은화(銀貨)에 철을 섞은 ‘나쁜 돈(惡貨)’을 마구 만들어 썼습니다. 네로 황제는 금 성분이 하나도 없는 도금 화폐를 뿌려댔습니다. 사람들은 로마 화폐, 즉 로마 경제를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제국은 결국 무너졌습니다.
스페인-유럽의 인플레이션
너무 많은 ‘화폐’ 때문에 망한 사례는 16세기 스페인에서도 있었습니다. 당대 유럽 최강국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많은 금과 은을 본토로 가져왔습니다. 쏟아져 들어오는 금과 은에 취한 스페인은 그것을 자본으로 삼아 산업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생산 기술이 금과 은이 늘어난 속도를 맞추지 못하자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물건값이 한없이 치솟았습니다. 이 돈은 유럽으로 퍼졌고, 유럽 전체가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습니다. 《국가의 부와 빈곤》이라는 책에 데이비드 랜즈는 ‘스페인은 돈이 너무 많아서 가난해졌거나, 가난한 상태에 머문 나라였다’고 썼습니다. 스페인 황실은 세 차례나 파산했고, 힘이 쇠약해진 17세기 중엽 그나마 금은이 들어오지 않자, 스페인은 초라한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돈이 스페인을 방탕하게 만든 것입니다.
짐바브웨와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
아프리카 짐바브웨는 극단적인 인플레이션(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의 예로 악명이 높습니다. 맨큐경제학에도 소개될 정도였죠. 이 나라 정부는 돈을 정말 많이 찍어냈습니다. 원래 1짐바브웨달러의 가치는 미국 1달러와 거의 같았습니다. 돈의 가치가 잘 관리됐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정치적 격변기를 겪던 2008년 1월 짐바브웨 중앙은행은 1000만짐바브웨달러짜리 지폐(0이 일곱 개)를 발행했습니다. 이것의 가치는 겨우 미국 4달러 정도였습니다.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1년 뒤 중앙은행은 100조짐바브웨달러 지폐(0이 14개)를 찍어냈습니다. 미국 3달러 가치였습니다. 화폐가 휴짓조각이 됐다는 표현을 씁니다만, 휴짓조각이 화폐보다 비쌌습니다. 화폐를 수레에 싣고 가야 빵 한 조각을 살 수 있었는데, 싣고 가는 중에 빵값이 올랐더랬습니다.

독일의 예도 만만치 않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 경제는 엉망이었습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은 어마어마한 전쟁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독일 정부는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습니다. 1920년 7월 당시 미국 1달러는 40마르크와 같은 가치를 지녔습니다. 1923년 11월 미국 1달러는 4조마르크와 같았습니다. 당시 독일 정부는 1700대가 넘는 인쇄기를 밤낮으로 돌려 돈을 인쇄했습니다. 독일 국민이 가졌던 모든 것의 가치가 인플레이션 속에 증발했습니다.
베네수엘라 그리고 한국
최근의 예로 베네수엘라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있습니다. 지금 베네수엘라에선 베네수엘라 돈으로 거래할 수 없습니다. 좌파 정부가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는 바람에 화폐가 교환, 거래, 가치저장 수단이 되지 못합니다. 지폐 한 자루를 가져가도 생닭 한 마리를 못 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돈을 길거리에 뿌려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예품 만드는 종이로 쓴다고 합니다. 화폐 제도가 망가지자 자국 내 생필품 생산도, 수입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삶이 고통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정부와 여당이 돈을 찍어서라도 지원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독일도 그럴듯한 명분으로 돈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언제나 ‘좋은 뜻(선의)’을 앞세웁니다. 그러나 돈을 찍어서 경제를 살렸다거나, 부자가 됐다는 나라는 유사 이래 없었습니다. 부가가치 생산능력이 없으면 화폐 찍기는 환상일 뿐입니다. 돈을 마구 찍어내면, 인플레이션이 퍼지면, 빈곤과 부패와 고통이 나라를 뒤덮고 맙니다. 역사는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고기완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정부는 왜, 어떤, 목적으로 돈을 더 많이 쓰려고 할까요?

② 짐바브웨와 독일에서 나타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국민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자.

③ 인플레이션을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토론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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