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어로 '님'을 사용한 선구자는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일본 교토대로 유학 갔을 때,
당시 함께 공부하던 벗들을 "~님"으로 불렀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100년 만에 되살아난 호칭어 '~ 님'
지난 18일 옛 전남도청 건물 앞.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이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5·18을 상징하는 이 노래는 한때 제목의 ‘임’을 ‘님’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많았다. 원래 제목이 ‘님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임’으로 수렴돼 가는 모양새다. 현행 표준어법상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현행 어법상 ‘님’은 단독으로 못 써

우리말에서 ‘님’과 ‘임’의 용법은 의외로 까다롭다. 우선 현행 표준어에서 ‘님’의 쓰임새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람의 성이나 이름 뒤에 쓰여 그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이는 의존명사이므로 앞말과 띄어 쓴다. 요즘 은행 등 접객업소에서 손님에게 “OOO 님” 하고 부르는 게 그것이다. 일부 대기업에서 수평적 사내문화를 촉진하기 위해 도입하고 있는 ‘~ 님’ 호칭도 같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접미사로서의 ‘님’이다. 이때는 높임의 뜻을 더하는 기능을 한다. ‘선생님, 사장님’ 할 때의 ‘님’을 말한다. 또는 대상을 인격화해서 높이기도 한다. ‘해님, 달님, 별님’ 하는 게 그것이다. 특히 이때 ‘해님’을 ‘햇님’으로 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해님’은 파생어(단어와 접사의 결합)이기 때문에 사이시옷 규정(합성어에서 발생)과 관련이 없다. ‘님’이 의존명사이든 접미사이든 분명한 것은 현행 어법에서 ‘님’을 단독으로 쓰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제나 앞말에 의존하거나 접사로 붙어서 존재한다.

단독으로 쓰이는 말은 따로 있다. ‘사모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임’이 그것이다. 형태는 ‘님’과 비슷하지만 다른 말이다. 품사로는 명사다. “임을 그리는 마음이 사무친다”처럼 쓴다. 원래 노래 제목 ‘님을 위한 행진곡’이 ‘임을…’로 바뀐 배경이기도 하다. 속담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이루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님도 보고 뽕도 딴다’라고 하면 틀린 말이다. 이 역시 ‘임도…’라고 해야 맞다. ‘내 님, 그 님’ 할 때가 곤혹스럽다. 발음상으로는 분명히 그리하는데, 쓸 때는 ‘내 임, 그 임’이라고 해야 한다. ‘님’의 쓰임새를 좀 더 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지만, 현행 문법 안에서는 아직 아니다.

최현배 ‘님 용법’ 규범으로 수용할 만

1957년 완간된 <조선말 큰사전>(한글학회 간)에서도 ‘님’을 접미사, ‘임’을 명사로 구별했다. 간혹 ‘님’과 ‘임’을 같은 말로 착각해, 그 차이를 두음법칙에 의한 것 아니냐고 오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님’과 ‘임’은 고유어로, 두음법칙이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호칭어로 ‘님’을 사용한 선구자는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이다. 그는 1920년대 중반 일본 교토대로 유학 갔을 때, 당시 함께 공부하던 벗들을 “~님”으로 불렀다. “김 형(兄), 이 공(公), 최 씨(氏)” 등 한자어를 사용하기 싫어 “김 님, 이 님, 최 님” 식으로 했다(김석득 <외솔 최현배 학문과 사상>). 100년 전 외솔의 실험이 오늘날 되살아난 현실은 ‘언어의 변천’과 관련해 주목할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외솔은 ‘님’의 기능에 현행 문법과 달리 자립명사로 쓰이는 또 한 가지를 언급했다. 이미 지적한 사람을 다시 가리킬 때 성명을 빼고 ‘님’이란 말만으로 그를 가리킬 수 있다고 했다. 이 역시 수십 년 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빛을 봤다. 채팅할 때 상대방을 ‘님!’ 하고 부르거나 “님은…”처럼 지칭하는 게 그것이다. 다만 현행 문법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틀린 표현이란 점을 알아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