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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촌철살인 (寸鐵殺人)

    ▶ 한자풀이寸: 마디 촌鐵: 쇠 철殺: 죽일 살人: 사람 인말이 너절하면 힘이 없다. 글이 너절하면 뜻이 얕다. 길이 너절하면 발길이 헷갈린다. 최고의 맛은 담백하고, 최고의 소리는 고요하고, 최고의 덕은 은미한 법이다. 창이 너무 길면 적을 정확히 겨냥하기 어렵고, 말이 너무 길면 본질이 흩어진다.나대경은 남송의 학자다. 그의 <학림옥로>는 밤에 집으로 찾아온 손님들과 나눈 담소의 모음집이다. 천(天)·지(地)·인(人)으로 분류해 문인이나 선인의 말을 시화(詩話)·어록·소설의 문체로 실었다. 거기에 보면 종고선사(禪師·선종의 교리를 통달한 스님)가 선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어떤 사람이 무기를 한 수레 가득 싣고 왔다고 해서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한 치도 안 되는 칼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한 치도 안 되는 칼로 사람을 죽인다’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은 이 문구가 출처다.여기서 ‘살인(殺人)’은 원래 무기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마음속의 속된 생각을 없앤다는 뜻이다. 번뇌를 없애고 마음을 모으면 ‘작은 것’ 하나로도 큰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얘기다. 촌철(寸鐵)은 손가락 한 개 폭 길이의 무기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말 한마디, 깨달음과 감동을 주는 짧은 경구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니체는 “거짓을 말하는 자는 수다스럽다”고 했다. 수다로 거짓을 가리고, 감추고 싶은 데로 쏠리는 타인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공자는 “말을 꾸미는 자에게는 인(仁)이 드물다”고 했다. 부풀리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말은 거짓이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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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상계 (走爲上計)

    ▶ 한자풀이走: 달릴 주爲: 할 위上: 윗 상計: 셈할 계용기는 물러서고 나아가는 것을 아는 거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는 거다. 물러서야 할 때 나아가는 건 만용이고, 나아가야 할 때 물러서는 건 비겁이다. 병사를 보전해야 후일을 도모하고, 힘을 모아야 큰일을 꾀한다. 진퇴를 아는 건 삶의 큰 지혜다.중국 남북조시대 제나라 5대 황제인 명제는 제나라를 세운 고제의 증손인 3, 4대 황제를 차례로 시해하고 제위를 찬탈했다. 즉위 후에는 고제의 직손은 물론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무참히 죽였다. 개국 공신인 회계 태수 왕경측이 두려움에 떨었다. 명제 역시 그가 불안했다. 명제가 대부 장괴를 장군에 임명해 회계 인접 지역으로 파견하자 왕경측은 1만여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 도읍으로 향했고, 도중에 농민들이 가세해 병력이 10만여 명으로 늘어났다.병석에 누운 명제를 대신해 국정을 돌보던 태자 소보권이 피란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왕경측이 껄껄 웃었다.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도망치는 게 최고의 계책(三十六計走爲上計)이라고 했다. 너희 부자에게 남은 건 이제 도망가는 길밖에 없느니라.” 한데 왕경측은 자신의 운명은 몰랐다. 그는 난전 중 관군에게 포위당해 목이 잘려 죽었다. <자치통감> <제서>에 전해오는 얘기다.<삼십육계>는 36가지 전술을 여섯 항목으로 묶은 병법서다. 5세기까지의 고사(故事)를 17세기 명나라 말에서 청나라 초기에 수집해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고사와 교훈이 곳곳에 들어 있어 <손자병법>만큼이나 자주 인용된다. 여기에 나오는 전술 중 하나가 ‘세가 불리하면 도망쳤다가 후일을 도모하는 게 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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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중지와 (井中之蛙)

    ▶ 한자풀이井: 우물 정中: 가운데 중之: 갈 지蛙: 개구리 와가을 홍수로 황하에 물이 가득했다. 황하의 신 하백(河伯)은 천하를 얻은 듯 뿌듯했다. 한데 강을 따라가다 동해에 이른 하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동해의 넓고 깊음은 황하에 비할 바가 못 됐다. 하백이 북해의 신 약(若)에게 한숨 지으며 말했다. “‘백 가지 도리를 들으면 저만한 사람이 없는 줄 안다’는 속담이 바로 저를 두고 한 말인 듯합니다. 공자의 지식이 작고 백이의 절개가 가볍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까지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다의 끝없음을 보니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마터면 크게 깨달은 자들에게 오랫동안 비웃음을 당할 뻔했습니다.”약이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에게는 바다를 얘기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평생을 우물에 갇힌 탓이지요. 여름 벌레에게는 얼음을 말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여름에만 매여 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나보다 큰 물이 없습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크다고 여긴 적이 없습니다. 나 또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것이니 조그마한 돌멩이나 작은 나무가 거대한 산에 있는 격이지요…. 모든 것을 만물이라 부릅니다. 사람은 그 만 중에 하나일 뿐이지요.” <장자> 추수편에 나오는 이야기다.어쩌면 우리 모두는 ‘우물 안 개구리(井中之蛙)’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주제는 잊은 채 강을 말하고, 바다를 논하는지도 모른다. 시냇물이 목소리를 키우면 강이 되고, 강이 목소리를 키우면 바다가 되는 줄 착각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모른다(井中之蛙 不知大海). 평생을 좁은 공간에 갇힌 탓이다. 여름철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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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전긍긍 (戰戰兢兢)

    ▶ 한자풀이戰: 싸움 전戰: 싸움 전兢: 떨릴 긍兢: 떨릴 긍맨손으로 범을 잡을 수 없고 걸어서는 강을 건너지 못하네. 사람들은 그 하나는 알고 있지만 그외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네.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戰戰兢兢) 마치 깊은 못에 임한 듯하고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하네.공자가 편찬한 <시경> 소아편 ‘소민(小旻)’의 마지막 구절이다. 임금이 간신에 둘러싸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것을 풍자한 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와 뜻이 맞물리는 ‘꾀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면 꾀하는 일이 잘되지 않는다’도 소민에 나오는 시구다.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신하가 많으니 나라가 임금의 뜻대로 다스려지지 않음을 비유한 구절이다.전전(戰戰)은 겁을 먹고 벌벌 떠는 모습이고, 긍긍(兢兢)은 지극히 조심해 몸을 움츠리는 태도다. 그러니 전전긍긍(戰戰兢兢)은 지나치게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몸가짐이다. 소민은 만용과 소심을 대비시킨다. 맨손으로 범을 잡고, 걸어서 강을 건너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다. 군주에게 만용을 부리면 단번에 목이 날아간다. 간신은 그걸 알기에 깊은 연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 위를 걷듯 임금의 눈치만 살핀다. 나라에 약이 되는 쓴 말은 삼키고 임금의 귀에 달콤한 단 말만 뱉어댄다.“미래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약한 자에게는 불가능이고, 겁 많은 자에게는 미지(未知)이고, 용기 있는 자에게는 기회다.”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말이다. 빙판길에선 떨며 걷는 자가 더 자주 넘어진다. 두려움에 지면 뚜렷한 길이 흐려지고, 흐릿한 길이 아예 없어진다. 전전긍긍, 세상만사 너무 겁먹고 너무 소심하면 발을 내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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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하청 (百年河淸)

    ▶ 한자풀이百: 일백 백年: 해 년河: 물 하淸: 맑을 청춘추시대 정나라가 위기에 처했다. 초나라의 속국 채나라를 친 것이 빌미가 돼 초나라의 보복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정나라 대부들이 대책을 논했으나 의견이 팽팽히 갈렸다. 강대국 초나라와 맞설 수 없으니 화친을 맺어 백성을 살리자는 주장과 화친을 맺는다는 것은 초나라의 속국이 된다는 것이니 끝까지 싸우면서 진나라에 구원을 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섰다.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한 프로타고라스가 말하지 않았나. 모든 담론은 거대한 상반된 논리가 있다고.화친론과 주전론이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자 대부 자사가 나섰다. 그는 먼저 ‘황하(黃河)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면 인간의 수명으로는 부족하다. 점을 쳐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해지고 그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한다’는 주나라 시를 인용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지금 진나라의 구원병을 기다리는 건 백년하청(百年河淸)일 뿐이오. 진이 우리를 도우려 초나라와 전쟁을 일으킬 이유도 없지 않소. 초나라와 화친을 맺어 백성을 불안에 떨지 말게 합시다.” 결국 정나라는 화친으로 큰 고비를 넘겼다.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얘기다.백년하청(百年河淸), 백 년을 기다려도 황하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뤄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바로잡기 난망한 일, 가망이 없는 희망, 막연한 기다림 등을 비유한다.기다림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막연한 기다림은 때론 시간낭비다. 숙성은 세월을 그저 흘려보내는 게 아니다. 익히고 단련해 스스로를 영글게 하는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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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일지십 (聞一知十)

    ▶ 한자풀이聞: 들을 문一: 한 일知: 알 지十: 열 십세계 4대 성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공자는 인(仁)을 강조한 유가(儒家)의 창시자다. 그의 유가적 사상은 특히 동양적 사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음악, 주역, 시(詩) 등에도 두루 조예가 깊었다. 제자가 3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제자들의 재주도 각자 달랐다. 누구는 학문에 뛰어나고, 누구는 언변이 좋았고, 누구는 장사에 밝았다.자공(子貢)은 재산을 모으는 데 남다른 재주가 있어 공자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유세하는 자금의 대부분을 뒷받침했다. 안회(顔回)는 가난했지만 총명하고 영리할뿐더러 효심이 깊어 공자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하루는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자공아, 너는 안회와 비교해 누가 낫다고 생각하느냐?” 자공이 답했다. “저를 어찌 안회와 비교하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聞一知十)’ 사람입니다.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깨칠 뿐입니다.” 겸손한 듯하지만 실은 자기도 꽤 안다는 의미의 답변이었다. 자공은 자신의 재주를 믿고 자만심이 강해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자공의 속내를 떠본 공자가 말했다. “그래, 어림없느니라. 너만이 아니라 나도 한참 미치지 못 하느니라.”‘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매우 영특함을 의미하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은 <논어> 공야장 편에 나온다. ‘그는 문일지십의 영재다’ 등으로 쓰인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고, 책을 통해 스스로 익히는 것은 하나를 들으면 둘 셋을 깨우치려는 ‘지적 내공’을 강화하는 훈련인 셈이다.참고로 예(禮)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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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경지수 (明 鏡 止 水)

    ▶ 한자풀이明:밝을 명鏡:거울 경止:그칠 지水:물 수중국 춘추시대 노나라에 왕태(王)라는 학덕이 높은 사람이 있었다. 노나라에는 그를 따라 배우는 사람이 공자의 제자만큼이나 많았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가 불만 섞인 투로 물었다. “스승님, 많은 사람이 왕태를 따르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공자가 답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춰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 <장자> 덕충부 편에 나오는 얘기로, 명경지수(明鏡止水)는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뜻한다.‘맑은 거울’을 뜻하는 명경(明鏡)은 <장자>의 다른 부분에서도 나온다. 같은 스승을 모시고 있는 정자산이라는 사람이 위세를 과시하려는 신도가를 나무라는 대목이다. “자네는 지위를 내세워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네. 듣건대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끼면 거울이 맑지 못하네. 어진 사람과 오래도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 세상에는 잘못을 변명하는 사람은 많으나 제 잘못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받는 죄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네”라며 정자산을 꾸짖었다. 이처럼 명경지수는 본래 도가(道家)에서 주창하는 무위(無爲)의 경지를 가리켰으나 후일 그 뜻이 변하여 순진무구한 깨끗한 마음을 가리키게 되었다.사람은 수시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성찰은 고요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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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삼모사 (朝三暮四)

    ▶ 한자풀이朝:아침 조三:석 삼暮:저녁 모四:넉 사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원숭이를 너무 좋아해 집에서 수십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 먹일 정도로 원숭이를 아꼈다. 원숭이들 역시 저공을 따랐고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는 의사소통까지 가능해졌다.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이처럼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 보니 먹이는 게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고민 끝에 저공은 원숭이의 먹이를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아 머리를 썼다.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나눠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씩 줄 생각인데 어떠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펄쩍 뛰며 “아침에 하나 덜 먹으면 배가 고프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저공이 슬쩍 말을 바꿨다. “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씩 주는 건 어떠냐?” 그 말에 원숭이들은 모두 좋다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라는 뜻의 조삼모사는 당장 눈앞의 차별만을 따지고 그 결과가 같음은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간사한 잔꾀로 남을 속이고 희롱함을 일컫기도 하다. <열자> <장자>에 함께 나오는 얘기다. ‘무분별한 복지정책은 조삼모사로 국민을 현혹한다’ 식으로 활용된다. 스스로가 어리석으면 조삼모사에 넘어가기 쉽고, 때로는 정치인들이 조삼모사식 정책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아침에 명령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는 조령모개(朝令暮改)와는 뜻이 다르다. 조삼모사는 ‘간사한 잔꾀’에, 조령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