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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捲土重來 (권토중래)

    ▶ 한자풀이捲: 말 권土: 흙 토重: 거듭 중來: 올 래흙먼지를 일으켜 다시 쳐들어온다는 뜻한번 실패한 자가 다시 도전함을 이름-두목(杜牧)의 시중국 오강(烏江)은 초패왕 항우가 한나라 유방과 최후의 결투를 벌인 곳이다. 이 싸움에서 진 항우는 자결했고, 유방은 오랜 패권 전쟁을 끝내고 통일 한나라의 황제에 올랐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온다는 뜻으로 고립무원의 상황을 이르는 사면초가(四面楚歌)도 이 전투에서 비롯된 고사성어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고 한탄한 항우의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도 이 전투가 배경이다.항우의 부하들은 “강동으로 돌아가 다시 힘을 모아 재기하자”고 권유했지만, 항우는 “8년 전 8000여 자제와 함께 떠난 내가 무슨 면목으로 혼자 강을 건너 강동으로 돌아가겠느냐”며 31년의 짧은 생을 스스로 마쳤다. 항우의 애첩 우미인(虞美人)이 항우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훗날 당나라 말기의 대표적 시인 두목(杜牧)은 항우의 기백을 기리며 “승패란 병가에서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니, 부끄러움을 안고 참을 줄 아는 것이 사나이라네. 강동의 젊은이 중에는 준재가 많으니,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쳐들어왔다면 어찌 되었을까(捲土重來未可知)”라고 시를 지어 그의 죽음을 아쉬워하였다. 여기서 유래한 권토중래(捲土重來)는 어떤 일에 실패하였으나 힘을 축적하여 다시 그 일에 착수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로 사용된다.두목은 당대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노두(老杜)로 불리는 것에 견줘 소두(少杜)로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다. 1000년이 지난 어느 날, 오강의 여사(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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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목구어(緣木求魚)

    ▶ 한자풀이緣:인연 연木:나무 목求:구할 구魚:물고기 어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얻으려 한다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음을 비유-<맹자>전국시대 주나라 신정왕 3년(BC 318)에 맹자는 양나라 혜왕과 작별하고 제나라로 갔다. 동쪽에 있는 제나라는 서쪽의 진(秦), 남쪽의 초(楚)와 더불어 전국시대 제후국 가운데에서도 대국이었다. 당시 50이 넘은 맹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론을 설파했다.제나라 선왕(宣王)은 역량이 뛰어난 명군이었고, 맹자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맹자는 그의 왕도정치론이 통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가 아니라 부국강병론이었다. 선왕 또한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 통일이었다. 맹자와 선왕은 문답을 나눴다. “임금께서는 전쟁을 일으켜 신하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를 맺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내게 대망(大望)이 있기 때문이오.” “전하의 대망이란 것에 대해서 말씀해 보시지요.” 선왕이 주춤하자 맹자가 슬쩍 낚시를 던졌다. “전쟁의 목적은 의식(衣食)이오니까, 인생의 오락이오니까?” “아니오, 나의 욕망은 그런 것이 아니오.” 이에 맹자가 다그치듯 말했다.“그러시다면 영토를 확장해 진과 초와 같은 대국으로 하여금 허리를 굽히게 하고, 중국 전토를 지배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따르게 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일방적인 무력으로 그것을 얻으려 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같은 것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이옵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오니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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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九牛一毛 (구우일모)

    ▶ 한자풀이九: 아홉 구, 모을 규牛: 소 우一: 한 일毛: 터럭 모아홉 마리 소에 털 한 가닥이 빠진 정도라는 뜻대단히 많은 것 중 아주 적은 것의 비유-<한서>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 때 장군 이릉(李陵)은 흉노를 정벌하러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열 배가 넘는 적의 군사를 맞아 10여 일간 치열하게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이듬해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전쟁 중 죽은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 투항해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노한 무제는 이릉 일족을 참형하라고 명했으나 중신들은 무제의 얼굴만 살필 뿐 누구 하나 옹호하는 자가 없었다. 사마천이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소수의 보병으로 수만의 오랑캐와 싸우다 흉노에 투항한 것은 훗날 황제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마천은 흉노들이 가장 무서워한 이광 장군의 손자 이릉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라를 구할 용장으로 믿었기 때문이다.이에 진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궁형(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형벌)을 내렸다. 남자로서 너무나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때의 일을 ‘이릉의 화(李陵之禍)’라고 부른다. 사마천은 옥중에서 친구 임안에게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밝힌 편지를 썼다. “내가 법에 의해 사형을 받아도 아홉 마리의 소 중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뿐이니, 나와 같은 자가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고도 죽지 않았으니 졸장부라고 여길걸세.”아홉 마리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털을 뜻하는 구우일모(九牛一毛)는 아주 많은 것 중에서 가장 적은 것을 비유하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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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九死一生 (구사일생)

    ▶ 한자풀이九: 아홉 구死: 죽을 사一: 한 일生: 날 생아홉 번 죽을 뻔하다 한 번 살아나다수차례 고비를 겪고 간신히 목숨을 건짐-초사(楚辭)전국시대 초나라 정치가이자 이름난 시인 굴원은 학식이 깊고 글재주가 뛰어나 삼려대부라는 높은 벼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는 간신들에게 모함받아 관직에서 쫓겨났다. 그 뒤 굴원은 좌절과 방황 속에서 불행히 살다 돌을 안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었다. 그는 평소에 충언을 빙자한 간사함이 임금의 공명정대함을 흐리게 해 진정한 충신들이 미움을 받는 현실을 미워했다.그가 나라와 임금을 걱정하는 충정에서 지은 <이소>라는 글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긴 한숨 쉬고 눈물을 닦으며, 사람 일생에 난관이 많음을 슬퍼하노라내 고결하게 살고 조심한다 했지만 아침에 바른말하다 저녁에 쫓겨났네그래도 내 마음이 선하다고 믿어 아홉 번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아홉 번 죽었다 살아난다’는 뜻의 ‘구사일생(九死一生)’은 이 글에서 비롯했다. 본래는 ‘구사무일생(九死無一生)’, 즉 아홉 번 죽는 동안 한 번도 살아남지 못함을 뜻하지만,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흔히 아홉은 수의 끝을 의미한다. 그러니 아홉 번 죽는다는 것은 수없이 죽는다는 뜻으로도 풀이가 가능하다.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기사회생(起死回生)’은 <여씨춘추> 별류편에 나온다. 노나라 사람 공손작이 “나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이것은 크나큰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고 장담한 데서 비롯됐다. 원뜻은 말 그대로 ‘죽은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지만,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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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實事求是(실사구시)

    ▶ 한자풀이實: 열매 실事: 일 사求: 구할 구是: 바를 시청나라 고증학파가 내세운 학문 방법론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옮음을 구한다는 뜻-한서(漢書)한나라 경제에게는 유덕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유덕은 하간왕이 되었는데, 고서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에는 진시황이 유학과 관련된 대부분의 서적을 불태운 상황이라서 고서적을 구하기 어려웠고, 책값도 비싸서 적잖은 돈이 필요했다.유덕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조상들이 물려준 옛책을 그에게 바쳤으며, 그를 따르는 학자들은 그와 함께 고서를 연구하고 정리했다. 한무제가 즉위하자 유덕은 여러 학자와 고대 학문을 연구해 칭송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학문 연구를 즐길 뿐만 아니라 옛서적을 좋아하며, 항상 사실로부터 옳은 결론을 얻어낸다(修學好古 實事求是)”고 했다.‘실질적인 일에 나아가 옳음을 구한다’ ‘사실을 얻는 것을 힘쓰고 항상 참 옳음을 구한다’로 풀이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출전은 <한서(漢書)> 하간헌왕전에 보이는데, 학문 방법론으로 제기된 것은 청대 고증학자들에 의해서다. 고증학의 학풍은 경전의 일자일구(一字一句)에 대해 정확히 자구를 해석하고 고증하는 것이 특징이다. 고증학자들은 송나라와 명나라의 학문이 경전의 본뜻에 어긋난 주관적인 해석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허망한 담론이라고 주장했다.우리나라에서는 조선 후기 김정희의 ‘실사구시론’이 유명하다. 그 개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실사구시라는 말은 학문을 하는 데 가장 요긴한 방법이다. 만약 실사(實事)를 일삼지 않고 공허한 학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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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管鮑之交(관포지교)

    ▶ 한자풀이管: 대롱 관주관할 관鮑: 절인 물고기 포之: 갈 지交: 사귈 교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아의 우정처럼아주 돈독하고 허물없는 사이를 이름-<사기(史記)>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라는 두 관리가 있었다. 둘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비범한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오른 뒤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규의 아우 소백은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인 관중마저 죽이려 했다. 소백이 군주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운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곱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나랏일을 맡겼다. 재상에 오른 관중은 재능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시대의 패자로 군림하게 했다. 후에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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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董狐之筆(동호지필)

    ▶ 한자풀이董:감독할 동狐:여우 호之:갈 지筆:붓 필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역사 기록을 그대로 써서 후대에 남긴다는 뜻-<춘추좌씨전>춘추시대 진나라 임금 영공(靈公)은 포악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정경대신 조순은 임금의 그런 행태를 몹시 우려했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충정으로 직언하고 바른 정사를 펴도록 호소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왕의 미움을 사는 빌미가 되었다.영공은 자객을 보내 조순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자객은 가까이에서 조순을 본 순간 그의 인품에 감명받아 감히 어쩌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분이 안 풀린 영공은 도부수를 매복시킨 술자리에 조순을 불러냈다. 조순은 호위병 하나가 가는 도중에 함정을 알아차리는 바람에 그 길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국경 쪽으로 도망쳤다.악행은 끝이 있는 법. 영공은 조천이라는 자에 의해 시해됐다. 국경을 막 넘으려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순은 급히 도성으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사관(史官)인 동호(董狐)가 공식 기록에다 이렇게 적었다.‘조순, 군주를 죽게 하다.’조순은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동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반박했다.“물론 상공께서는 임금을 직접 시해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벌어졌을 때 국내에 있었고, 조정에 돌아와서는 범인을 처벌하려고 하지도 않았잖습니까? 국가 대임을 맡은 대신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직접 시해와 무엇이 다른지요?” 날카로운 지적에 조순도 할 말이 없었다.후에 공자는 이 사건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법도대로 ‘올바르게 기록한 동호’는 훌륭한 사관이다.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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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누각(空中樓閣)

    ▶ 한자풀이空:빌 공中:가운데 중樓:다락 누(루)閣:집 각공중에 세워진 누각이란 뜻으로 근거가 없는 가공의 사물을 이름-<몽계필담>송나라 학자 심괄이 쓴 <몽계필담>에는 공중누각(空中樓閣)의 어원이 되는 대화가 나온다. 대화의 배경은 등주라는 고장으로, 사방으로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지방이다. 경관이 뛰어나 사람들이 즐겨 찾았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여보시게, 저기 내 손가락 끝에 아물거리는 게 무엇인가?” “이 사람 참, 자네 손끝엔 앞산밖에 더 있나. 보이긴 뭐가 보인다는 거야?” “아니, 이쪽으로 와서 좀 보시게. 저 하늘 끝에 도시가 보이지 않는가?” “거기에 무슨 도시가 있겠나. 자네에게 헛것이 보이는 거지.”이런 다툼이 생긴 것은 봄과 여름이 되면 태양의 방향에 따라 큰 도시와 높은 건물의 모습이 저 멀리 하늘가에 아련히 비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비친 풍경을 등주 사람들은 바다위에 세워진 도시라는 뜻으로 ‘해시(海市)’라고 불렀으며, 허공에 세워진 집이라고 해서 공중누각이라고도 했다. 공중누각은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하여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요즘말로 ‘신기루(蜃氣樓)다. 신(蜃)은 무명조개를 가리키며, 용의 일종인 이무기를 이르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바다의 신기루를 보고, 이것이 바다 속에 사는 무명조개나 이무기가 토해내는 기운이 뭉쳐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기초가 허약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사상누각(沙上樓閣)도 의미가 비슷하다.공중누각이나 신기루는 근거가 빈약한 상상력이다. 빛의 굴절이 만들어낸 허상(虛像)일 뿐이다. 노력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