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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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일거양득 (一 擧 兩 得)
▶ 한자풀이一 : 하나 일擧 : 들 거兩 : 둘 량(양)得 : 얻을 득속석은 중국 진(晉)나라 혜제(惠帝) 때 저작랑을 지내고, 진사(晉史)를 편찬한 인물이다. 그가 농업 정책을 왕에게 진언하면서 “위나라 때의 개척지인 양평으로 들어가 살게 한 백성들을 다시 서쪽으로 이주시키자”고 했다. 왕이 이유를 물으니 그가 답했다. “백성들을 서주로 이주시킴으로써 변방을 보강하고, 10년 동안 부세(賦稅)를 면제해 줌으로써 이주의 고달픔을 위로합니다. 이렇게 하면 밖으로는 실질적인 이익이 있고, 안으로는 관용을 베풀어 일거양득(一擧兩得)이 됩니다.” 《진서》 속석전에 나오는 얘기다.《춘추후어》에는 힘이 장사인 변장자(辨莊子) 얘기가 나온다. 호랑이 두 마리가 마을에 나타나 가축들을 잡아가자 동네 사람들이 변장자를 불렀다. “걱정 마시오. 내가 그놈들을 때려잡을 테니.” 변장자가 여관에 투숙한 이튿날 호랑이 두 마리가 나타나 소를 몰고 달아났다. 그가 활과 칼을 들고 호랑이를 쫓았다. 호랑이 잡는 장면을 보려고 여관의 사동도 뒤를 따랐다.산속에서 으르렁거리는 호랑이 소리가 들렸다. 변장자가 살금살금 호랑이 곁으로 다가가 활을 겨눴다. 순간, 사동이 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무슨 짓이냐?” 그가 험악한 표정을 짓자 사동이 목소리를 죽였다.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서로 소를 차지하려고 싸우는데, 한 놈은 결국 죽지 않겠습니까. 이긴 놈도 크게 다칠 테고요. 그때를 기다렸다 한 번에 두 마리를 잡아야지요.” 변장자는 무릎을 쳤고, 잠시 후 호랑이 두 마리를 어깨에 걸치고 마을로 내려왔다. 《춘추후어》는 ‘하나로 두 가지 이익을 얻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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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 (以 心 傳 心)
▶ 한자풀이以 : 써 이心 : 마음 심傳 : 전할 전心 : 마음 심석가는 노자의 무언지교(無言之敎)를 몸소 실천한 성인이다. 석가는 큰 스승이다. 송나라 승려 도언은 석가 이후 고승들의 법어를 기록한 《전등록》에서 “석가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적었다. 불교의 진수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면서 고통받는 중생에게 ‘마음의 길’을 터줬다. 석가는 제자들의 물음을 늘 칭찬했고, 자신의 가르침을 강요하지 않았다.송나라 스승 보제의 《오등회원》에는 석가가 이심전심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석가가 영취산에 모인 제자들에게 연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 줄기를 살짝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스승의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직 가섭만이 석가의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통한다는 염화미소(拈花微笑)는 이 영취산 설법에서 나왔다. 석가가 연꽃을 집어드니(拈華), 제자 가섭이 그 뜻을 헤아려 미소를 지었다(微笑)는 의미다.연꽃은 탁한 연못에서 피어난다. 하지만 더없이 청아하고 맑고 깨끗하다. 속세도 탁하다. 흐리고 탐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스스로 깨달으면 탁한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중생도 맑고 깨끗하게 거듭난다.참고로 사성제(四聖諦)는 불교의 기본 교리다. 사제(四諦)로도 불리는 이 교리는 고(苦)·집(集)·멸(滅)·도(道) 네 진리가 핵심이다. 고(苦)의 진리(고제)는 고통으로 가득찬 현실을 바로 보라는 거고, 집(集)의 진리(집제)는 탐심 욕망 이기심 등 고통이 생기는 원인을 바로 보라는 거다. 멸(滅)의 진리(멸제)는 온갖 번뇌를 벗고 해탈을 얻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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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 (泣 斬 馬 謖)
▶ 한자풀이泣:울 읍斬:벨 참馬:말 마謖:일어날 속삼국지는 위·촉·오 세 나라가 천하통일을 꿈꾸는 얘기다. 전술과 지략, 음모와 술수가 얽히고설켜 있다.북벌에 나선 제갈량이 위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조조는 이를 갈았다. 천하의 명장 사마의에게 20만 대군을 내주며 설욕을 명했다. 제갈량도 사마의 군대를 깰 계책을 세웠다. 문제는 보급로였다. 군량 수송로인 가정(街亭)을 지켜야 제갈량이 마음 놓고 계책을 펼 수 있었다. 마속(馬謖)이 자청하고 나섰다. 마속은 제갈량과 문경지교를 맺은 마량의 친동생이다. 제갈량도 누구보다 그를 아꼈다. 하지만 제갈량은 썩 내키지 않았다. 사마의 군대를 대적하기에는 아직 어리다고 판단한 것이다. 마속이 ‘비장의 카드’를 썼다. “만약 명을 지키지 못하면 저는 물론 일가권속까지 참해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가정의 지형을 살핀 마속은 욕심이 생겼다. 제갈량이 “지키기만 하라”고 수차 명했지만 적을 잘만 유인하면 몰살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속은 수하 장수들의 진언을 무시하고 산꼭대기에 진을 쳤다. 하지만 사마의 군대는 마속의 생각대로 산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결국 식량과 물이 끊긴 마속은 사마의 수하 장합이 이끄는 군대에 대패했다. 제갈량이 마속의 죄를 묻는 자리는 숙연했다. 제갈량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다. 하지만 사사로운 정에 끌려 군율을 저버리는 것은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가 된다.” 마속이 형장으로 끌려가자 제갈량은 소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룻바닥에 엎드려 울었다. ‘눈물로 마속을 참한(泣斬馬謖)’ 것이다.공정해지려면 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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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지인 (宋 襄 之 仁)
▶ 한자풀이宋: 나라 송襄: 도울 양之: 갈 지仁: 어질 인명분은 순리와 이치를 앞세우고 실질은 현실을 중시한다. 베풂은 명분이고, 누구에게 어떻게 베풀지는 실질이다. 베풂이 상대에게 되레 해가 된다면 명분은 맞지만 실질은 어긋난 것이다. 베풂이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송나라 군사가 강을 두고 초나라 군사와 마주했다. 송나라 양공(宋襄)이 강 한쪽에 먼저 진을 쳤다. 막강한 초나라 군대는 송나라 진을 부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송의 군대가 턱없이 약하다고 판단한 장군 목이가 양공에게 간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양공은 듣지 않았다. “그건 의로운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패자가 될 수 있다.”어느 새 초나라 군사는 강을 건너와 진용을 가다듬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한번 간절히 진언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진용을 미처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양공은 재차 무시했다.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싸움의 결과는 이미 짐작했을 거다. 원래 열세였던 송나라 군사는 참패하고, 양공 자신도 허벅지에 입은 부상이 악화돼 이듬해 죽고 말았다. 남송 말부터 원나라 초에 걸쳐 활약한 증선지가 편찬한 《십팔사략》에 나오는 이야기다.‘송양의 어짊’을 뜻하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은 어리석은 대의명분을 내세우거나 과한 인정을 베풀다 되레 해를 입는 것을 비유한다. 누구는 조선 500년을 ‘명분의 시대’라고 꼬집는다. 명분만을 좇다 실질을 잃어 나라가 허약해졌다는 것이다. 실질이 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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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불여일견 ( 百 聞 不 如 一 見 )
▶ 한자풀이百: 일백 백聞: 들을 문不: 아니 부(불)如: 같을 여一: 한 일見: 볼 견판단은 빗나갈 때가 많고, 추론도 오류가 잦다. 책을 단 한 권 읽은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달랑 책 한 권으로 세상을 논하고, 그게 다 맞다고 우기면 대책이 없다. 조약돌만 한 소견으로 태산을 논하는 건 무지의 오만이다.한나라 9대 황제 선제 때의 일이다. 서북 변방의 유목 민족인 강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진압에 나섰으나 대패했다. 선제가 오늘날 검찰총장격인 어사대부 병길에게 토벌군 장수로 누가 적임인지를 후장군(後將軍) 조충국에게 물어보라 명했다. 당시 조충국은 76세 백전노장이었지만 군사를 거느릴 정도로 힘이 넘쳤다. 7대 황제 무제 때 흉노 토벌에 나선 그는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해 한나라 군사를 모두 구출했다. 이런 전공으로 싸움터에 나갈 때 깃발을 들고 앞서는 거기(車騎)장군에 임명된 명장이었다. “내가 적임이오. 이 노신을 능가할 자가 어디 있겠소.” 병길이 선제의 뜻을 전하니 그는 선뜻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다.조충국이 명장임을 아는 선제가 그를 불러 강족 토벌 대책을 물었다. “계책이 있으면 말해 보시오. 군사는 얼마나 필요하겠소.” 그가 답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무릇 군사란 싸움터를 보지 않고는 헤아리기 어려운 법이니 바라건대 신을 금성군으로 보내 주시면 현지를 살핀 후 계책을 올리겠습니다.” 선제는 기꺼이 허했다.현지를 둘러본 조충국은 기병보다 둔전병(屯田兵·평시엔 농사를 짓다 전시엔 싸움에 동원되는 병사)을 두는 게 좋다는 방책을 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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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孟母三遷)
▶ 한자풀이孟: 맏 맹母: 어미 모三: 석 삼遷: 옮길 천맹자는 유가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유학에서 성인 공자 다음가는 아성(亞聖)으로 학문이 깊고, 뜻이 크고 강했다. 그가 주창한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자신의 기상이기도 하다.맹자는 어렸을 적에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처음엔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상여 메고 곡하는 흉내를 내고 놀았다. 맹자 어머니는 자식 기를 곳이 못 된다 여겨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한데 이번엔 장사꾼 흉내만 내고 다녔다. 이곳 또한 아니다 여겨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맹자가 글 읽는 흉내를 내므로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합당한 곳이라 여기고 이곳에 정착했다.나이가 들어 고향을 떠나 공부하던 맹자가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베틀에 앉아 길쌈을 하던 맹자 어머니가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물었다. “공부는 마쳤느냐?” “아직 마치지 못했습니다.” 맹자의 대답에 어머니는 베틀의 날실을 끊어버리고 아들을 꾸짖었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버린 것과 같다. 그런 마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 맹자는 어머니 말에 크게 깨달아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배움에 매진했다.첫 번째 글은 맹자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에 관한 얘기고, 두 번째는 날실을 끊어 맹자에게 깨달음을 줬다는 단기지교(斷機之敎)에 관한 얘기다. 공통어는 스승(어머니)·환경·교육이다. 출처는 《열녀전》이다.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수 없다. 비관적 유전자는 좀처럼 낙관적 유전자로 바뀌지 않는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타고난 그대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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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귀에 봄바람이 스쳐가듯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음 - 이백의 시
▶ 한자풀이馬 말 마耳 귀 이東 동녘 동風 바람 풍흔히 중국의 시(詩)는 당나라에서 몇 발짝도 내딛지 못했다고 한다. 한자 시어가 당나라 시대에 그만큼 꽃을 피웠다는 얘기다. 중국 최고 시인으로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 시선(詩仙)으로 추앙받는 이백은 당나라 문학을 만개시킨 주인공이다. 이백(701~762)이 두보(712~770)보다 10년 정도 앞서 태어났다. ‘이태백이 놀던 달아~’의 태백(太白)은 이백의 자다.이백이 벗 왕십이에게서 ‘한야독작유회(寒夜獨酌有懷·추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 회포를 읊다)’라는 시 한 수를 받고 답신을 보냈다.그는 장편의 답시에서 무인을 숭상하고 문인은 경시하는 당시 당나라 세태를 열거했다. 투계(鬪鷄)나 즐기는 자가 천자의 총애를 받고 변방에서 작은 공을 세운 자가 충신이나 된 듯 으스대며 다닌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은 문인은 시부(詩賦)나 지으며 세월을 보낼 뿐 아무리 글이 뛰어나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그의 마지막 시 구절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향한 울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세상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머리를 내저으니(世人聞此皆掉頭),마치 봄바람이 말 귀를 스쳐가는 것과 같네(有如東風射馬耳)이백은 자신의 글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세태를 ‘봄바람이 말 귀를 스치는 것(馬耳東風)’으로 표현했다. 시인다운 묘사다. 하지만 현재의 처지가 이렇더라도 억지로 부귀영화를 바라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으며 시를 맺는다. ‘소귀에 경 읽기’ 우이독경(牛耳讀經), ‘소 앞에서 거문고 타기’ 대우탄금(對牛彈琴)도 뜻이 같다.사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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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도움 - 오월춘추
▶ 한자풀이同 한가지 동病 병 병相 서로 상, 빌 양憐 불쌍히 여길 련(연)춘추시대에 자주 회자되는 오자서(伍子胥)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다. 초나라 태자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와 맏형이 처형당하자 복수를 위해 오나라로 망명했다. 그는 오나라 공자 광에게 자객 전저를 천거했고, 광은 전저를 시켜 사촌동생인 왕요를 시해하고 스스로 왕에 올랐다. 그리고 자신을 합려라고 이름했다. 월나라 구천에게 죽임을 당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단초가 된 그 인물이다.오자서는 자객을 천거한 공로로 권세 막강한 대부가 되었다. 그해 역시 비무기의 모함으로 아버지를 잃은 백비가 초나라에서 망명해 오자 그를 천거해 함께 정치를 했다. 대부 피리가 오자서에게 물었다. “백비의 눈매는 매와 같고 걸음걸이는 호랑이 같으니 필시 사람을 죽일 상이오. 공은 어떤 까닭으로 그런 자를 천거했소?” 오자서가 답했다. “그가 나와 같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오. 하상가(河上歌)에 ‘같은 병은 서로 불쌍히 여겨(同病相憐) 한 가지로 걱정하고 서로 구하네(同憂相救)’라고 했소.”그로부터 9년 후, 합려는 초나라에 대승을 거뒀고 오자서와 백비는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았다. 한데 오자서는 월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모함에 빠졌고, 분을 참지 못한 그는 스스로를 태워 목숨을 끊었다. 남방의 앙숙 오나라와 월나라의 흥망성쇠를 다룬 《오월춘추》에 나오는 얘기다.“네 맘 알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네 글자다. ‘네 맘을 안다’는 건 너의 마음에 내 마음이 섞여 있다는 거다. 소통은 내 마음에 네 마음을 담으려는 심적 투쟁이다. 머리로만 하는 이해는 늘 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