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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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정치인은 善한 동기 아닌 결과에 책임져야"
“정치인은 자신이 누릴 권력에 도취되기에 앞서 감당해야 할 권력을 책임 있게 수행해낼 자질과 역량을 갖췄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선(善)한 동기만으로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면 안 되고, 행위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져야 한다.”독일 정치·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그가 뮌헨대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했던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를 직업 또는 소명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자질과 덕목에 대해 설명했다.베버는 1919년 이 책을 펴낸 동기에 대해 “독일에서 만연한 관료주의 때문”이라고 말했다. “입헌제의 발달로 한 사람의 지도적인 정치인이 정치 전반을 통일적으로 지휘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하지만 독일에선 전문적인 행정 훈련을 받은 관료에 의한 지배 현상이 강화돼 정당정치가 위축되고,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배출이 더욱 어렵게 됐다. 독일 정치인들은 권력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동종 직업집단인 ‘길드’와 같이 단지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고 파벌 본능에 빠져 있다.” “책임의식 없는 열정, 낭만주의일 뿐”독일 정당과 의회가 관료들의 결정에 기계적으로 따르는 거수기 또는 실행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정치를 단순히 생계수단으로 삼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베버는 이런 독일 상황을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라고 규정하고 “관료 지배체제를 통제해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정치 지도자가 갖춰야 할 세 가지 자질로 열정, 책임의식, 균형적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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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자유·안전 보장 못하면 복종의무 없다"
“천성적으로 자유를 사랑하는 인간이 권력자 또는 국가에 권리를 양도하는 것은 자연상태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에서 벗어나 개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권력자가 이런 사회계약의 의무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에게 복종할 이유가 없다.”토머스 홉스(1588~1679)가 쓴 《리바이어던》은 국가의 필요성을 사회계약설을 통해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리바이어던이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수많은 사람을 조합해 만든 거인이 머리에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는 검(劍)을 잡은 채 산 너머에 있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거인의 이름이 ‘리바이어던’으로, 인간의 집합이면서 인간의 힘을 뛰어넘는 권력을 가졌다. 저마다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자연상태에 있던 인간이 개인 권리를 위임하는 사회계약을 통해 탄생시킨 국가를 상징한다.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괴물이다. 성서에서는 혼돈을 상징하지만, 홉스는 그 반대의 뜻으로 차용했다. 리바이어던은 통치와 질서를 보장할 수 있는 힘의 소유자이며,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인간의 교만함을 억누르고 그들을 복종하게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홉스는 사회계약을 맺기 이전, 즉 정부와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그렸다. 질서를 찾아볼 수 없고 모든 것은 폭력과 술수, 힘과 기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장 나쁜 것은 폭력에 따른 죽음의 공포이며,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며 추잡하고 야만적이며 덧없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선 만인 대 만인의 투쟁”홉스는 인간의 본성 중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세 가지 요소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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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은 평등·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밀집한다
“밀집 속에서는 가깝게 느끼고 커다란 안도감을 얻게 된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는 이 ‘축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인간은 군중을 형성한다.”“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군중을 죽음으로 내몬 자들을 숭상한다. 그들은 모두 시체 더미의 왕이다. 살아남는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이 모든 권력자가 원하는 것이다.”예술과 철학과 자연을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왜 그런 끔찍한 범죄에 참여하고, 또 침묵했을까. 포악한 권력자의 명령이 있었다지만 히틀러 시대의 유대인 집단학살은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미스터리이자 공포로 기억된다. 엘리아스 카네티는 스페인계 유대인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거주하다가 ‘군중’의 위협에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 강렬한 충격이 계기가 된 35년 연구의 결과물이 《군중과 권력》이다. 군중의 본질을 폭넓은 시각으로 조명한 이 저작을 아널드 토인비는 “인간사에 대한 포괄적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평했다. “군중 속 안도감은 순간의 환상일 뿐”카네티는 위협적 군중이 형성되는 이유를 “생존 본능의 발동”이라고 진단했다. 인간은 광활한 평원 위에 서서 돌아가는 풍차와 같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풍차와 이웃 풍차 사이에는 간격이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삶은 이 간격 속에서 펼쳐진다. 재산, 지위, 계급 등이 간격을 만들고 확대시킨다. 함께 모여야만 이 간격이 주는 중압감과 질곡에서 해방될 수 있다.” 군중이 밀집상태를 선호하는 이유다.《군중과 권력》은 밀집된 군중이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방전(放電)’을 꼽는다. 방전은 카네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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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손님 각자가 가지고 온 음식이 한 사람이 만든 요리보다 더 다양한 맛을 내는 것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내리는 판단이 훨씬 더 뛰어나다. 국가가 필요한 이유도 이와 같다.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국가 구성원들이 서로 보완적인 역할을 함으로써 더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그리스 정치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행복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하는 목적 가운데 최고의 선(善)이라고 여겼다. 그는 “행복이란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조건 안에서 가장 적절하게 스스로를 실현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잘 어울리는 것”이라고 했다.이런 개인의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무엇인지 탐구한 책이 《정치학(politica)》이다. 그는 41세 때 마케도니아 왕의 부탁을 받고 왕자(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가정교사가 됐다. 이 책은 그가 알렉산더에게 가르치기 위해 정리한 교재다. 폴리티카는 ‘폴리스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지칭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비롯한 각 폴리스의 다양한 통치 형태를 관찰한 뒤 어떤 것이 바람직한 정치 시스템인지 제시했다.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국가라는 정치공동체를 이뤄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생존 때문이다. “인간이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다. 국가라고 불릴 정도의 공동체가 돼야 자급자족이 가능해지고, 스스로의 힘으로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공유지의 비극 정확하게 인식두 번째는 국가에 소속돼야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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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면 중우정치(衆愚政治) 우려 커"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다. 민주정체는 무제한의 자유 탓에 욕심과 쾌락에 빠진 나라다.”“민주정은 대중의 선호가 도덕이 되는 중우정치로 변질할 우려가 농후하다. 개별 사물 너머 존재하는 ‘그 무엇’이 본모습이자 존재 이유다.”플라톤(BC 428?~348?)은 서구 사상의 출발점으로 불린다. 수학자 겸 철학자였던 화이트헤드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오늘날의 서양철학은 플라톤 사상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돼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이 2500년 전 제기한 개념과 관점, 문제의식이 아직도 세계인을 사로잡고 있으며, 무수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상찬이다. 《국가론》은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주변 사람들과 ‘정의’를 주제로 나눈 대화를 10권 분량으로 엮어낸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아테네의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이상국가 ‘칼리폴리스’에 대한 구상을 설파했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국가(폴리스)에는 “강한 사람이 더 많이 갖는 것, 그게 정의”라는 생각이 득세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를 ‘권력 게임’이 아니라 ‘좋은 삶’이라는 주제의식으로 풀어낸 그 자체로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철인 왕’의 이상, 법치국가로 이어져플라톤은 1권에서 “스스로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을 경우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통치당하는 것”이라고 썼다. 최근 회자되는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저질스러운 자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는 인용구의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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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직업 윤리관이 근대 자본주의를 탄생시킨 핵심"
“프로테스탄트(개신교)는 세속적인 직업에서 거둔 성공을 구원의 증표로 삼았고, 이윤 획득과 물질적인 성공을 신(神)의 축복으로 여겼다. 이런 새로운 사고방식이 전통주의적 경제 체제를 허물어버리고 근대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는 평생에 걸쳐 산업사회의 새로운 발전 방식과 구조를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특히 큰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자본주의 발전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개신교가 들어선 나라가 이탈리아 스페인 등 가톨릭 영향이 강한 나라에 비해 경제 성장이 빠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한 답을 담아 1920년 출간한 책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베버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생활양식이나 가치관, 신념 등과 연관된 문화 현상의 하나로 보았다. 그는 “금욕적 개신교의 직업 윤리관이 합리적 생활을 중시하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탄생시킨 핵심이었다”며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면서 증명했다.베버는 “과거 가톨릭은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거나 저축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죄악시했고, 노동을 인간의 원죄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봤다”고 했다. 그러나 개신교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변했다고 베버는 설명했다. 직업 노동과 금욕적 절제를 통해 부(富)를 축적하는 것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개신교 금욕주의, 자본 형성에 기여”베버는 개신교, 특히 칼뱅파의 교리에 주목했다.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구원받은 자와 저주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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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은 권력에 이익 될 수 있는 존재 만드는 게 목적"…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메커니즘 새 각도로 분석
“권력은 감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 모든 장소에서 ‘몸(인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동원한다.”미셸 푸코(1926~1984)는 자크 데리다와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다.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일련의 상대주의적 지적 풍토를 마뜩잖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푸코에 대해서만큼은 예외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푸코 신드롬’이 몰아쳤고, 그의 이름은 현대 사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인용 빈도 최상위권 학자이기도 하다.푸코는 ‘지식의 견고한 축적’이나 ‘이성의 점진적 진보’라는 전통적인 역사 이해 방식, 즉 역사주의를 거부한다. 대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권력’과 ‘권력의 폭력’에 천착했다. 그런 집요한 탐구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재구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자발적 복종’ 부르는 ‘판옵티콘’ 사회1975년 출간된 푸코의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은 현대사회를 보는 기존과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권력과 그 권력에 대한 ‘자발적 복종’의 메커니즘 분석을 통해서다. 자발적 복종이란 “사람들이 스스로 권위에 복종해 그 상태를 편안함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상태”라는 게 푸코의 정의다.푸코는 프랑스혁명을 전후로 감옥제도와 함께 시작된 형벌제도의 변화를 ‘권력의 경제학’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감옥은 단순한 범죄자 수용소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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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굴종을 택해 조직 안에서 안주하려는 심리 있어"…능동적으로 자아를 실현시키는 적극적 자유 추구 강조
“우리는 독일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싸운 그들의 선조와 같은 열성으로 자유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 그밖의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유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에리히 프롬(1900~1980)은 독일 출신 미국 심리학자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간 뒤 1941년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썼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 심리를 분석한 것이다. “이성적이고 지성적이라고 자부하는 독일에서 어떻게 나치가 등장할 수 있었는가”라는 의문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왜 사람들은 수많은 투쟁을 통해 가까스로 얻은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에 열광하는 걸까. 인간은 자유를 쟁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걸까. 프롬은 근대 민주주의 체제가 사회의 여러 제약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다고 여기지만, 개인은 또 다른 권위에 예속됐다고 봤다.“자유 얻었지만 고독과 불안 뒤따라”프롬은 20세기 이전의 인류사를 자유 쟁취의 역사라고 규정했다. 종교개혁으로 개인의 해방이 가속화했다는 데 주목했다. 프롬은 “중세까지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적 고민뿐 아니라 탄생, 결혼, 죽음 등 인생 중대사를 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해결했다”며 “하지만 종교개혁은 우리로 하여금 혼자 신 앞에 서게 했다”고 했다. 종교개혁과 봉건체제 해체로 사람들은 종교, 정치, 사회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됐다. 프롬은 이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라고 했다.자본주의 발달도 ‘~로부터의 자유’를 촉진했다. &l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