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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한강의 《채식주의자》

    남편인 ‘나’와 동침을 거부하는 영혜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 영혜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꾸린다. 뭔가 요구하는 법이 없으며 끼니때 말없이 맛난 음식을 요리하는 아내와 사는 일은 재미있지 않지만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딱히 불만도 없다. 오히려 성가시게 굴지 않는 것이 아내의 장점이라 생각된다. 아내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싫어하여 잘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 정도다.그러던 아내가 어떤 꿈을 꾼 뒤로 갑자기 육식을 거부한다. 냉장고의 고기와 생선, 우유, 계란까지 갖다버린 아내는 오로지 채소, 김치, 말간 미역국이 전부인 밥상을 차린다. 고기 냄새가 난다며 ‘나’와의 동침도 거부한다. 아내는 자주 꿈을 꾸고 잠을 설쳐 눈에 핏발이 서고 밥을 먹지 못하여 꼬챙이같이 말라간다. ‘나’는 영혜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처형이 초대한 식사 모임에서 처형과 장모는 영혜에게 어릴 때 영혜가 좋아했던 소고기볶음과 굴무침을 권하지만 소용이 없다. 장인은 ‘나’와 처남이 영혜의 두 팔을 붙들도록 하고 입에 탕수육을 억지로 밀어넣고 영혜가 이를 거부하자 호되게 손찌검한다. 영혜는 결국 과도로 손목을 긋고 병원에 실려가고 ‘나’의 가정은 파국을 맞이한다.어린 시절, 동물들이 새끼를 다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약한 새끼를 죽이고 개체 수를 조절해 살아남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고 약육강식이라는 자연계의 냉혹한 법칙에 진저리를 쳤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 여겼다. 인간이라면 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공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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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의 교실은 잘 돌아간다.엄석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문열, 1987년)의 ‘영웅’이다. 엄석대는 담임 교사를 대신해 아이들을 지배하고 통제한다. 엄석대가 ‘다스리는’ 학급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다. 그가 이끌고 나가는 운동팀은 모든 반 대항 경기에서 우승했고 학급 비품은 어느 반보다 넉넉했으며 교실은 깨끗하고 화단은 환하다. 성적도 우수할뿐더러 그가 실습 감독을 하는 실습지는 수확이 가장 많다. 학급은 일사불란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물론 이 완벽함의 이면에는 영웅 엄석대의 폭력적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 그의 권력은 막강해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그리고 직접 나서지 않고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급우를 괴롭힐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통치술은 교묘하다.석대에게 순응하지 않고 도전했던 한병태는 한 학기 내내 괴롭힘을 당한다.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주먹 싸움에서 매번 참패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임에도 집단적 기세에 눌려 싸움 등수는 꼴찌로 밀려났고, 철저한 따돌림을 당해 함께 놀 친구 하나 없는 상태가 된다. 딴 아이들이 다 하는, 어쩌다 걸려도 가벼운 꾸중으로 끝날 뿐인 잘못들, 예를 들면 동네 만화 가게에서 만화를 읽은 것 따위도 엄청난 비행으로 자치회에 고발돼 처벌을 받고 학교 전체에 알려질 만큼 말썽 많은 불량 학생이 돼버린다. 이러니 공부도 제대로 될 리 없다. 상위권이던 성적은 어느새 겨우 중간을 웃돌 뿐인 정도로 내려가고 만다. 한 학기를 버틴 병태는 결국 석대에게 굴복한다. 저항을 포기한 순간 병태가 흘린 눈물은 무력함과 외로움을 온전히 노출했기에 몹시 굴욕적인 것이었지만 항복의 열매는 굴욕을 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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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살 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 소설은 아주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 남자의 이야기다. 스무 살 두 남녀가 아름다운 사랑을 한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대개 그렇듯 이 이야기는 꽤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다.여주인공은 못생긴 외모로 놀림 받고 상처 받으며 나이를 먹었다. 사랑받을 자신이 없는 그녀는 남자의 진심을 믿지 못하고 멈칫거리는데, 외모만 수려하고 불성실하기 짝이 없어 어머니를 불행하게 했던 아버지를 가진 남주인공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손을 내민다. 어렵게 여자가 마음을 열고 둘은 서로를 응시한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여자는 마음속의 어둠을 이기지 못하고 달아난다. 남자가 여자를 찾아 헤매고 둘은 간신히 재회한다. 남자가 여자의 오랜 상처를 어루만져 주고 둘 사이에는 드디어 애틋한 시공이 열린다. 그러나 그 만남을 끝으로 둘의 사랑은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내용이 궁금하면 일독을 권한다.사진은 이 소설책의 표지로 쓰인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한가운데 서 있는 소녀는 마르가리타 왕녀. 왕녀 양쪽에서 시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고 큰 캔버스 앞에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궁정화가의 위용을 뽐내며 서 있다. 애견 오른쪽에는 왕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동원된 두 명의 광대가 있고 그림 뒤편 작은 거울에는 왕녀의 부모인 펠리페 4세 부부가 비친다. 이 그림은 해석이 분분하다. 벨라스케스가 마르가리타 왕녀를 그리는 중에 국왕 부부가 방문한 상황이라고도 하고 「시녀들」 자체를 제작하는 상황이라고도 하고 벨라스케스가 그리는 대상이 국왕 부부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볼수록 묘한 그림이다.벨라스케스의 그림을 표지로벨라스케스는 왜 저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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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창섭의 《잉여인간》

    손창섭이 쓴 1958년 작품‘잉여.’ 인터넷상 유행어다. 요즘은 오덕, 덕후, 덕질 등의 유행어에 밀려 한물간 느낌이지만 여전히 널리 쓰이며 캐잉여, 잉여롭다, 잉여력, 잉여짓 같은 단어까지 파생해 내었다. 잉여의 사전적 의미는 ‘쓰고 난 후 남은 것’, 즉 나머지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현수의 아버지는 “너 대학 못 가면 뭔지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라며 가혹하게 현수를 질책한다. 이때의 잉여인간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무가치한 인간이다. 그런데 우리의 문학사에는 이미 일찌감치 잉여인간이 존재했고 이는 1958년 손창섭의 발표작 《잉여인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만기 치과의원 원장인 서만기는 번듯한 용모에 뛰어난 의술, 훌륭한 인격을 갖추었다. 그리고 간호사 홍인숙은 그런 만기를 존경하고 흠모하여 성심을 다하여 만기를 돕는다. 이 병원에 아침마다 출근하는 인물로 만기와 홍인숙 외에 만기의 중학 동창인 채익준과 천봉우가 있다. 직업이 없는 이 두 잉여인간은 매일같이 병원에서 소일한다. 익준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문 기사를 보면 비분강개하며 부정적인 사회 현실을 개탄한다. 게거품을 물고 일장연설을 하는 그의 머리와 가슴은 늘 뜨겁다.봉우는 익준과 대조적인 인물이다. 잉여도 제각기 개성이 있는 법. 그는 인기척도 없이 슬그머니 병원에 들어와 대기실 구석에 깍지 낀 두 손을 얌전히 무릎에 얹고 앉는다. 신문도 기사 제목을 대강 볼 뿐이고 익준의 연설에 대꾸하는 법도 없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그림자처럼 앉아 잠을 잔다. 그것이 그의 일과의 전부다. 그의 눈이 빛날 때는 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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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상섭의 《두 파산》

    광복 직후 우리 사회상1949년 발표작이니 그야말로 광복 직후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이라 하겠다. 그리고 당대의 풍경은 등장인물의 면면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됐다. 해방 공간에서 한자리 차지해볼까 정치권을 맴도는 정례의 남편, 일제시대 도지사를 지냈으니 반민족행위자로 처벌과 재산 몰수의 위기에 처한 옥임의 남편, 이런 남편들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정례 모친과 옥임, 시골 보통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고는 하나 고리대금업으로 이자 독촉에 여생을 건 듯 보이는 영감 등등.작가는 인물의 삶을 소상히 스케치해 지극히 건조한 어투로 서술한다. 돈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룬 점은 이 작품의 큰 특징이다. 당시 물가와 부동산 가격까지 얼추 짐작할 수 있는 사실주의적 기록이 흥미로운데 이런 점은 프랑스의 대문호 발자크의 《고리오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의 삶의 정황은 그들의 금전 거래를 통해 여실히 드러나므로 여기에 신경 쓰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숫자를 따라가다 보면 인물의 처지와 감정선이 손에 잡힌다.정례 모친은 은행 빚 30만원을 내 보증금 8만원에 월세 8000원짜리 가게를 얻어 문방구를 연다. 그런데 자본금이 부족하니 물건을 충분히 들여놓을 수 없다. 여기에 학교 동창 옥임이 10만원을 동업 형식으로 투자한다. 그리고 월 2부 안팎으로 배당금을 받아간다. 월 2부면 연이자 240%다. 엄청난 고리다. 실제 옥임은 아홉 달 동안 20만원 가까이 벌어간다. 그런데 정례 모친의 남편이 벌인 자동차 사업이 시원치 않아 자꾸 문방구에서 돈을 빼 간다. 투자한 10만원을 회수하지 못할까 염려한 옥임은 8만원 보증금 영수증을 담보로 잡고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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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수의 《무정》

    최초의 근대소설비중에 경중은 있지만 음식과 요리가 등장하는 문학 작품이 꽤 많다.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인 이광수의 《무정(1917)》에도 인상적인 음식이 둘 등장한다.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경성학교 영어강사로 재직 중인 이형식은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김 장로의 딸 김선형에게 연정을 품는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기생이 된 박 진사의 딸 박영채는 형식을 사모하며 절개를 지키다가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 김현수에게 겁탈당한다. 영채는 죽음을 결심하고 평양행 기차를 타지만 동경 유학생인 신여성 김병욱을 만나 봉건적 관습을 벗어버리고 자신도 당당한 신여성이 되기로 결심한다. 일본 유학을 떠나는 영채와 병욱, 미국 유학길에 오른 형식과 선형이 우연히 같은 기차에서 만나게 되고, 이들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일하는 역군이 될 것을 다짐한다.이것은 대강의 줄거리다. 영채는 자살을 결심하고 탔던 평양행 기차 안에서 병욱을 만나게 된다. 병욱은 슬픔에 잠긴 영채에게 ‘구멍이 숭숭한 떡 두 조각 사이에 엷은 날고기를 낀 것’을 권한다. 영채는 처음 보는 음식을 어떻게 먹을지 몰라서 병욱이 먹는 모양으로 따라 먹는다. 이후 영채는 병욱의 가르침을 받으며 ‘구도덕과 낡은 사상의 종’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자기 뜻대로 다시 살기로 한다. 이 먹거리는 영채에게 일종의 부활의 음식인 것이다. 이후 친해진 병욱은 영채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그러고 너 그때에 먹은 것이 그게 무엇인지 아니?”“나 몰라, 어떻게 먹는 겐지 몰라서 언니 잡수시는 것을 가만히 봤지요.”“내 아예 그런 줄 알았다. 그것은 서양 음식인데 샌드위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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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신애의 《적빈》

    적빈(赤貧), 몹시 가난하다는 뜻매촌댁은 가난하다. 몹시 가난하다. 집 한 칸, 땅 한 뙈기 없는 이 늙은이는 남의 집 일을 거들어주고 삯을 받고, 무명베 짜는 집에 가서 일해 주고 옷감을 받는다. 부지런히 일을 하니 한 입 걱정이야 하겠냐마는 장성했음에도 제 구실을 못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 별명이 돼지인 큰아들은 돼지같이 둔하고 철딱서니가 없는데 결국 술 때문에 사고를 일으키고 동네에서 쫓겨나 다른 동네에 따로 살게 된다. 둘째는 그래도 착실한 편이었는데 동네 알부랑자에게 속아 노름판에서 하룻밤 새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자신도 알부랑자로 전락한다. 아들이 돈을 날리는 바람에 논 서너 마지기 사서 제 농사를 짓겠다는 매촌댁의 꿈도 물거품이 된다. 그러나 매촌댁은 낙심하지 않는다. 아니, 낙심할 틈이 없다. 그는 쉴 틈이 없다. 당장 큰며느리가 만삭인데 해산 후 먹을 양식 한 톨이 없다. 매촌댁은 양식을 구하기 위해, 또 간신히 구한 얼마 되지 않는 양식을 큰며느리와 작은며느리에게 고루 나눠주기 위해 두 집을 오가며 종종걸음 친다. 간신히 집 주인에게 얻은 약간의 양식은 큰아들이 홀랑 먹어버리고 정작 출산일에 큰며느리가 쫄쫄 굶은 채 아이를 낳자 매촌댁은 큰며느리 주려고 숨겨놓은 보리쌀을 가지러 어두운 밤길을 또 종종걸음 친다.작품을 읽다 보면 우선 일제시대 하층민의 가난을 그야말로 몸으로 인식하게 된다. 가난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은 큰며느리 벙어리가 아이를 낳는 장면이다. 벙어리는 진통으로 손으로 벽을 쥐어뜯으면서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기운이 진하여 몸에 힘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매촌댁이 장 찌꺼기를 끓인 물을 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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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인의 감자

    홀아비에 팔려가는 복녀복녀는 15세에 20년 연상의 홀아비에게 80원에 팔려서 시집을 간다. 남편은 지독히 게으르고 무능하였으며 결국 그들은 평양 칠성문 밖 빈민굴 주민이 된다. 복녀는 거지 행각을 하며 간신히 연명한다. 인근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들끓자 복녀를 비롯한 빈민굴 주민들이 송충이잡이 인부로 고용된다. 일종의 빈민구제사업이다. 처음에 열심히 송충이를 잡던 복녀는 젊은 여인 몇몇이 놀면서도 더 많은 품삯을 받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자신도 그들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감독에게 일종의 매음을 하게 된 것. 그 후 복녀는 본격적으로 타락하게 된다. 남편은 복녀가 벌어온 돈을 보고 벌씬벌씬 웃는다. 가을이 되자 복녀는 빈민굴 여느 여인들처럼 칠성문 밖 중국인 채마밭에 감자 도둑질을 하러 간다. 어느 날 밤 복녀는 밭 주인 왕서방에게 들키고 그 일을 계기로 아예 왕서방의 정부로 전락하게 된다. 왕서방에게 받은 돈 덕택에 이들 부부는 빈민굴에서는 부자로 통하게 된다. 이듬해 봄 왕서방은 젊은 처녀에게 장가를 들게 된다. 질투심에 눈이 먼 복녀는 낫을 들고 신방에 뛰어들지만 낫을 뺏아 든 왕서방에게 살해된다. 이후 왕서방, 남편, 한의사는 모종의 거래를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을 받고 공동 묘지에 실려간다.1920년 사회상이 그대로···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 중학교 1학년 때다. 입학에 즈음하여 아버지가 한국문학전집을 사 주셨다. 그 전집 제일 앞 권에 김동인의 「감자」가 실려 있었다. 여름방학 과제로 독후감상문을 쓰기도 했다. 어떤 내용을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줄거리를 요약한 후 작품 해설을 뒤적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