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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22) 구병모 《위저드 베이커리》

    “……아 참, 빵 싫어한다고 했던가?”지금 눈앞의 파랑새가, 내 앞에 놓인 빵 쟁반을 치우려는 몸짓을 하고 말했다. 나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우리 빵을 사 가는 단골손님이, 막상 빵을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아니라고 그래서 나 얼마나 어이없었는데. 하지만 이제 네 사정을 알고 나니까 이해가 돼. 네가 빵을 좋아해서 사 간 게 아니라 단지 집에서 불편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재혼한 아버지와 불행한 소년주인공 ‘나’는 몹시 불행한 16세 소년인데 그 불행이 양과 질에 있어서 또래 청소년의 평균치를 심각하게 상회한다. 우선 친어머니에게 버림받은 경험이 있다. ‘나’는 6세 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청량리역에 유기된다. 어머니가 주머니에 넣어 준 대보름빵을 먹다 혼절한 ‘나’는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열 살 때 아버지가 재혼하자 내겐 새어머니와 두 살배기 의붓여동생이 생긴다. 초등학교 교사인 새어머니 배선생은 ‘나’를 학대할 목적으로 결혼했나 싶을 정도로 ‘나’를 미워한다.‘나’는 새어머니 눈에 띄지 않도록 존재감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간신히 생존한다. 말을 더듬는 증세까지 생겼다. 늘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는 ‘나’의 사정을 모를뿐더러 안다고 하더라도 딱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배선생이 밥을 주지 않으므로 ‘나’는 아파트 단지 입구의 빵집에서 빵을 사 먹고 연명한다. 불행은 계속될뿐더러 가속된다. 의붓동생 무희가 성폭행을 당한 징후가 발견된 후 유력한 용의자를 사법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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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 《중국인 거리》

    항구도시 외곽에 이주한 주인공화자인 ‘나’의 가족은 전쟁통에 머물렀던 피난지를 떠나 항구 도시 외곽의 중국인 거리로 이주한다. 미군 부대와 기지촌에 둘러싸인 이 도시는 석탄을 싣고 온 화차에서 날리는 탄가루로 늘 그늘져 있고 거무죽죽한 공기 속으로는 회충약으로 쓸 해안초 끓이는 냄새가 노오랗게 떠다닌다. 포격에 무너진 건물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 거리는 텅 비어 을씨년스럽다.‘나’는 동네에 사는 치옥과 단짝이다. 치옥의 집 2층에는 양갈보 매기 언니가 세 들어 있다. 동네 대부분의 집은 양갈보에게 세를 주고 있다. ‘나’는 등굣길에 치옥네에 들러 굳이 매기 언니의 방까지 올라가 문 안을 흘끔거리며 치옥을 불러낸다. 매기 언니는 검둥이 애인과 함께 산다. 언니가 외출하면 ‘나’는 언니의 빈 방에 놀러가 화장품, 페티코트, 속눈썹, 미제 비스킷, 유리알 브로치 등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논다. 치옥이 알 굵은 유리 목걸이를 목에 걸고 ‘난 커서 양갈보가 될 테야’라고 단호히 말할 때 ‘나’ 역시 치옥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미군부대와 기지촌의 여자들화자의 가족은 이 도시 못지않게 황폐하다. 단속을 피해 담배 장사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왔던 어머니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계속 동생을 낳고 있으며 성품이 냉정한 할머니는 ‘나’가 하교하면 기다렸다는 듯 막 젖이 떨어진 막내 동생을 업혀 내쫓는다. 아버지는 어렵게 일자리를 구해 가족을 끌고 이 도시로 왔지만 가족을 행복하고 풍족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곤궁한 집안의 어린 딸에게 화려한 물건들이 전시된 매기 언니의 방은 신기한 이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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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로 《누항사》

    박인로는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시가인(詩歌人)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정세아의 막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수군절도사 성윤문에게 발탁되어 종군하였으며 1599년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선전관을 지내며 군비를 증강하고 선정을 베풀었다.어릴 때부터 시재에 뛰어났고 가사 문학 발전에 기여한 그의 작품 중 ‘태평사’ ‘선상탄’ ‘누항사’ 등은 우리에게 꽤 친근하다. ‘태평사’는 1598년 왜군이 퇴각하자 사졸의 노고를 위로하려 지었으며 ‘선상탄’은 1605년(선조 38년)에 부산에 통주사로 부임한 뒤 전선에서 종전과 평화 염원을 노래한 작품이다. 셋 중 가장 나중 지어진 ‘누항사’는 1611년(광해군 3년) 51세 때 벗 이덕형이 고향에 돌아가 살던 작자에게 두메에 사는 어려움을 묻자 그 답으로 노래한 작품이다.작품에 드러난 화자의 삶은 몹시 곤궁해 보인다. 그의 가난이 실감나게 그려진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소를 빌리러 갔다가 거절당하는 장면이라 하겠다.<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그 어찌 와 계십니까?/ 해마다 이렇게 하기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가난한 집에서 걱정이 많아 왔습니다./ 공짜로나 값을 받거나 간에 빌려 줌직도 하지마는,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이 끓어오르게 구워 내고 갓 잇은 삼해주를 취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러한 은혜를 어찌 아니 갚을 것인가. 내일 소를 빌려 주마 하고 굳게 약속하였기에 약속을 어기기가 편하지 못하니 말씀하기 어렵구려./ 진실로 그렇다면 설마 어찌하겠는가. 헌 모자를 숙여 쓰고 축 없는 짚신을 신고 맥없이 어슬렁어슬렁 물러나오니 풍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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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극인 《상춘곡》

    세조의 즉위와 최초의 가사 탄생상춘곡. 최초의 가사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봄을 맞아 경치를 구경하며 즐기는 노래를 뜻한다. 정극인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 태인으로 내려와 제자를 키우는 일에 힘을 쏟았다. 상춘곡은 이때 지은 작품으로 홍진(紅塵), 즉 세속에서 벗어나 자연에 묻혀 사는 즐거움을 형상화한 강호가도이자 송순의 ‘면앙정가’, 정철의 ‘성산별곡’으로 이어지는 호남가단 형성의 계기가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묘사는 생생하고 표현은 화려해 봄의 고갱이를 즐기는 화자의 흥이 손에 잡힐 듯하다. 화자의 흥취는 도화, 행화, 녹양방초, 수풀 속 우는 새에서 비롯돼 답청(파랗게 난 풀을 밟으며 산책함), 욕기(물놀이), 채산(나물 캐기), 조수(낚시)에서 고조되며 술을 마시는 시냇가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이 사대부는 시냇가에서 술을 마신다. 막 익은 술을 갈건(술을 거르는 두건)으로 걸러 놓고 꽃나무 가지를 꺾어 잔 수를 세면서 먹는다. 술을 마시되 속되지 않게, 한 잔 두 잔 거듭하되 운치 있게 마신다. 술이 왜 풍류를 즐기는 방법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주로 답답한 사각의 공간에서 대체로 화학주를 들이켜는 현대인의 음주와는 격이 다르다. 술잔에 가득한 청향, 옷에 떨어지는 붉은 꽃잎, 시냇물에 떠내려오는 복숭아꽃, 무릉이 바로 저기니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달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아름다운 자연은 나의 벗이 작품에서 시상은 화자의 시선 이동, 또는 공간 이동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수간모옥(몇 칸짜리 초가)에서 시작해 들판으로, 들판에서 시냇가로, 시냇가에서 다시 산봉우리로 화자의 시선은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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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 《신도가》

    악장은 조선 초기의 송축가다. 궁중의 의식과 행사와 왕의 행차 등에 사용하던 음악의 가사로 조선의 창업과 문물제도를 찬양하거나 왕덕을 기리는 내용이다. 새로운 왕조의 이념과 지향을 펼치는 데 적합한 노래 양식을 갖추고 있었다. 용비어천가, 월인천강지곡, 신도가, 감군은, 상대별곡, 정동방곡 등이 그 대표작이다.그중 신도가는 개국공신 정도전의 작품이다. 전반부에서는 한양의 아름다운 풍경과 새 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의 성덕을 찬양하고, 후반부에서는 배산임수의 명당에서 태조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다. 다소 틀에 박힌 내용으로 읽히지만 정도전의 생애를 알고 읽으면 느낌이 달라진다. 새로운 나라를 열고 도성의 기틀을 닦은 거인의 활달한 기상이 뿜어져 나온다고나 할까?정도전은 봉화 지역의 토착세력 출신이다. 과거를 통해 등용돼 정몽주, 이숭인 등과 함께 공민왕의 유학 육성 사업에 참여했으나 공민왕 사후 우왕 때 정국을 주도한 이인임 등에게 축출돼 전라도 나주 회진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다. 유배지에서 정도전은 한 촌로에게서 ‘관리들이 국가의 안위, 민생의 안락, 시정의 득실, 풍속의 좋고 나쁨에는 뜻이 없고 녹봉만 축낸다’는 질책을 듣는다. 이때 정도전은 백성을 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오랜 방랑 생활을 하며 곤궁한 백성의 삶을 생생히 목격한다. 그가 제시한 민본사상은 이렇듯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태조 이성계와 정도전의 운명적 첫 만남은 우왕 재위 시절에 이뤄졌다.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함경도 동북면도지휘사 이성계를 찾아간 정도전은 이성계가 자신의 이상을 펼치게 해줄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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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림별곡》

    고려가요가 고려 민중의 노래라면 경기체가는 고려 귀족의 노래다. 위 작품은 최초의 경기체가인 한림별곡이다. 한림별곡은 한림제유, 즉 왕명을 받들어 문서를 꾸미는 관청이었던 한림원의 선비들이 부른 노래다. 전 8장으로 구성되었는데 시부(문장가와 시인의 문장 찬양), 서적(학문 수련과 독서의 자긍심 찬양), 명필(유명한 서체와 명필 찬양), 명주(귀족의 주흥과 풍류 찬양), 화훼(화원의 경치 노래), 음악(흥겨운 주악에 대한 취향 노래), 누각(후원의 경치 노래), 추천(그네 뛰는 정경과 풍류 찬양) 등을 소재로 당시 선비들의 생활을 노래했다.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 노래의 표현상 특징은 나열이다. 즉, 시적 대상을 나열하거나 제시하면서 흥취를 시구 ‘경(景) 긔 엇더니잇고’로 영탄하고 있다. 경기체가라는 명칭은 이 시구에서 비롯됐다. 나열과 영탄의 반복이니 시적 기법은 몹시 단순하다 하겠다. 한림제유는 이 시가를 인간 본연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목적은 사랑하는 소재를 찬양하면서 자신들의 능력과 기개를 과시하는 데 있는 것 같다.제1장을 풀이해 보자. <유원순의 문장, 이인로의 시, 이공로의 사륙변려문, 이규보와 진화의 쌍운을 내어 빨리 짓는 시, 유충기의 대책문, 민광균의 경서 풀이, 김양경의 시와 부. 아, 시험장의 광경, 그것이 어떠합니까?>이 시가의 두드러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물(物)’의 소재화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물을 소재로 삼은 것은 추상적인 ‘의(意)’를 노래한 이전의 문학적 관습과는 확연히 구분된다.한림별곡을 비롯한 경기체가의 이런 특징은 이 노래의 주된 창작자인 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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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과정》

    연시가 아니었다.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정철의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연시(戀詩)로 읽었다가 수업 시간에 연정의 대상이 연인이 아니라 임금임을 알고는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충신연주지사(忠臣戀主之詞)라는 ‘각이 잔뜩 잡힌’ 용어까지 배우고 나니 낭만적인 한 편의 연시는 시험용 텍스트가 돼 버렸다.그런 경험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인 고은은 ‘정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은 감상을 남겼다. “지난날 나는 이것을 읽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사랑의 갈등으로 하여금 더욱 진한 사랑이 되는 옛사람들의 열정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섬기던 임금에 대한 호소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얼마나 업신여겼던가. 이제 호오(好惡)를 지나 하나의 작품으로 본다.”정서는 고려 중기의 문인인데 역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동래로 귀양을 가게 됐다. 의종은 유배 가 있으면 곧 다시 부르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자 거문고를 잡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의 호가 과정(瓜亭)이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이 노래를 ‘정과정’이라 이름 붙였다. 이 노래를 불렀던 곡조의 이름을 따서 삼진작(三眞勺)이라고도 한다. 고려가요 중 향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표적 작품으로 마지막 행의 ‘아소 님하’를 통해 10구체 향가의 형식적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가요 중 유일하게 작가의 이름이 전해오는 작품이며 무엇보다 유배문학 효시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가지고 있다. 유배지에서 신하가 임금을 그리워하는 정을 절절하게 노래했다고 해 충신연주지사로 널리 알려졌고 궁중의 속악 악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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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리 화랑의 《후예》

    변화의 시대에 과거에 살다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의 대작 《돈키호테》가 17세기 초의 작품이니 중세의 기사계급이 몰락하고도 한참 뒤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 키호테 씨는 기사도 소설에 푹 빠져서 사냥도 그만두고 일상도 팽개친다. 책을 사기 위해 경작지까지 팔아치웠건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몸소 악당을 제거하고 세상을 구하고자 모험을 떠난다. 기이한 동기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살아버린 인물이다.변화한 시대를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를 사는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 우리에게도 있다. 김동리의 ‘화랑의 후예’의 주인공 황진사가 바로 그이다. 작품 속 서술자인 ‘나’는 숙부의 손에 이끌려 파고다 공원 뒤 점쟁이에게 가서 관상을 보게 되고 거기서 황진사를 알게 된다. 그는 황후암의 육대 종손인 황일재라는 사람으로 육십이 다 된 나이에 거무스름한 두루마기를 입고 얼굴이 누르퉁퉁하며 벗겨진 이마와 불그스름한 핏물 같은 것이 도는 눈을 가졌다.숙부가 집을 비운 어느 가을날 황진사가 찾아온다. 그는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을 명약이라며 내게 맡기려 하다가 마침 식사 시간이라 밥을 얻어먹고 간다. 또 친구라는 사람과 함께 먼지투성이의 책상을 하나 가져와서 사라고 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십 전을 줘서 보낸다. 숙부를 통해 그가 문벌이 놀라운 양반 집안이어서 자부심이 크고 조상 중에 정승 판서가 많았음을 알게 된다.황진사는 문벌 양반 출신숙부의 부재중에 다시 ‘나’를 찾아온 그는 화로를 끼고 몸을 녹이며 《시전》을 외다가 《주역》을 읽는다. 그리고 툭하면 찾아와서 음식 대접을 받고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