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주 선생님과 함께하는 한국문학 산책
공을 세운 무인이
은퇴 후 가난하게 산다
권위도, 경제력도 없으니
양반도 예전같지 않다
추상적 관념어 사라지고
일상을 일상어로 생생히 묘사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산문이 움튼다
공을 세운 무인이
은퇴 후 가난하게 산다
권위도, 경제력도 없으니
양반도 예전같지 않다
추상적 관념어 사라지고
일상을 일상어로 생생히 묘사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산문이 움튼다
![[문학이야기(20)] 박인로 《누항사》](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AA.16943714.1.jpg)
어릴 때부터 시재에 뛰어났고 가사 문학 발전에 기여한 그의 작품 중 ‘태평사’ ‘선상탄’ ‘누항사’ 등은 우리에게 꽤 친근하다. ‘태평사’는 1598년 왜군이 퇴각하자 사졸의 노고를 위로하려 지었으며 ‘선상탄’은 1605년(선조 38년)에 부산에 통주사로 부임한 뒤 전선에서 종전과 평화 염원을 노래한 작품이다. 셋 중 가장 나중 지어진 ‘누항사’는 1611년(광해군 3년) 51세 때 벗 이덕형이 고향에 돌아가 살던 작자에게 두메에 사는 어려움을 묻자 그 답으로 노래한 작품이다.
![[문학이야기(20)] 박인로 《누항사》](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01.16990667.1.jpg)
<초경도 거의 지났는데 그 어찌 와 계십니까?/ 해마다 이렇게 하기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가난한 집에서 걱정이 많아 왔습니다./ 공짜로나 값을 받거나 간에 빌려 줌직도 하지마는, 다만 어젯밤에 건넛집 사람이 목이 붉은 수꿩을 구슬 같은 기름이 끓어오르게 구워 내고 갓 잇은 삼해주를 취하도록 권하였는데 이러한 은혜를 어찌 아니 갚을 것인가. 내일 소를 빌려 주마 하고 굳게 약속하였기에 약속을 어기기가 편하지 못하니 말씀하기 어렵구려./ 진실로 그렇다면 설마 어찌하겠는가. 헌 모자를 숙여 쓰고 축 없는 짚신을 신고 맥없이 어슬렁어슬렁 물러나오니 풍채 적은 내 모습에 개만 짖을 뿐이로다.>
![[문학이야기(20)] 박인로 《누항사》](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AA.16943699.1.jpg)
그리고 이런 괴로움을 가식 없는 일상어로 구체적이고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전의 강호가도들에서 흔히 보이던 추상적인 관념어는 사라졌고 정철의 작품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서정적 미문도 없다. 일상을 일상어로 생생하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상술한 인용 장면에서 보듯 사건을 인물 간 대화를 통해 제시하기까지 하였다. 마치 사실주의 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서사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다. 소재, 서술방식 및 표현 기교 등에서 박인로의 가사는 이전 시기의 것과는 크게 다르다. 말하자면 조선 후기 가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문학이야기(20)] 박인로 《누항사》](https://img.hankyung.com/photo/201806/AA.16086172.1.jpg)
말하자면 박인로의 작품은 소재와 표현 면에서는 사대부 가사의 한계를 벗어났으되 그 정신은 구시대의 지배적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시대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시가의 움을 틔웠다고나 할까. 그의 시대 이후 가사는 보다 왕성한 산문 정신을 담는 그릇으로 변화해 간다.
서울사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