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14)] 한강의 《채식주의자》
남편인 ‘나’와 동침을 거부하는 영혜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자 영혜를 아내로 맞아 가정을 꾸린다. 뭔가 요구하는 법이 없으며 끼니때 말없이 맛난 음식을 요리하는 아내와 사는 일은 재미있지 않지만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딱히 불만도 없다. 오히려 성가시게 굴지 않는 것이 아내의 장점이라 생각된다. 아내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싫어하여 잘 착용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 정도다.

그러던 아내가 어떤 꿈을 꾼 뒤로 갑자기 육식을 거부한다. 냉장고의 고기와 생선, 우유, 계란까지 갖다버린 아내는 오로지 채소, 김치, 말간 미역국이 전부인 밥상을 차린다. 고기 냄새가 난다며 ‘나’와의 동침도 거부한다. 아내는 자주 꿈을 꾸고 잠을 설쳐 눈에 핏발이 서고 밥을 먹지 못하여 꼬챙이같이 말라간다. ‘나’는 영혜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처형이 초대한 식사 모임에서 처형과 장모는 영혜에게 어릴 때 영혜가 좋아했던 소고기볶음과 굴무침을 권하지만 소용이 없다. 장인은 ‘나’와 처남이 영혜의 두 팔을 붙들도록 하고 입에 탕수육을 억지로 밀어넣고 영혜가 이를 거부하자 호되게 손찌검한다. 영혜는 결국 과도로 손목을 긋고 병원에 실려가고 ‘나’의 가정은 파국을 맞이한다.

어린 시절, 동물들이 새끼를 다 돌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약한 새끼를 죽이고 개체 수를 조절해 살아남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을 알고 약육강식이라는 자연계의 냉혹한 법칙에 진저리를 쳤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라 여겼다. 인간이라면 약자를 배려하고 함께 공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고 사회적 선을 실현할 수 있으니까. 그것이 인간이니까.
[문학이야기(14)] 한강의 《채식주의자》
세 가지 꿈과 어릴적 트라우마

[문학이야기(14)] 한강의 《채식주의자》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거면 된 걸까? 불행히도 인간 역시 동물에 불과하다. 인간의 생명 유지는 살생을 바탕으로 가능하며 이는 피할 도리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영혜는 이 법칙을 거부하였으므로 남편과도 가족과도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 영혜의 집안은 육식을 즐겼다. 영혜 역시 정육점용 칼로 닭 한 마리를 잘게 토막 낼 줄 알았다. 그런 영혜를 이렇게 변화시킨 그 꿈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 단편에 서술된, 서사가 구체적인 꿈은 세 가지다.

첫 번째 꿈에서 영혜는 숲길을 헤맨다. 숲에 소풍 온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즐겁게 노는데 영혜는 나무 뒤에 숨어서 입과 손에 피를 묻힌 채 두려움에 떤다. 날고기를 먹고는 이에 씹히는 감촉에 소름끼쳐 한다. 또 다른 꿈에서 영혜는 누군가가 흙삽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본다. 꿈을 꾼 뒤 영혜는 자신이 오랫동안 도마에 칼질하는 것을 못 견디게 무서워하고 싫어했음을 뒤늦게 인지한다.

마지막 꿈은 어린 시절 기억이다. 영혜의 아버지는 키우던 개가 영혜를 물자 오토바이에 묶어 동네를 달린다. 나무에 매달아 두들겨 팬 개보다 달리다 죽은 개가 더 부드럽다는 이유로. 오토바이에 묶여 동네를 몇 바퀴고 달리던 흰둥이가 검붉은 피를 토하고 입에 거품을 문다. 영혜는 죽어가는 흰둥이의 희번덕이는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본다. 그날 저녁 집에서 동네잔치가 벌어지고 영혜는 밥을 말아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영혜의 꿈은 동물을 죽이고 도마질을 하고 포식하는 행위의 폭력성을 환기시킨다. 살인은 누구의 경험일까? 월남전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은 영혜 아버지의 ‘내가 월남에서 베트콩 일곱을…’로 시작되는 단골 무용담이 꿈의 원형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실제 영혜의 아버지는 열여덟 살까지 영혜의 종아리를 때렸고 세 남매 중 가장 많이 맞은 것도 영혜였다.

영혜는 겹겹의 폭력에 둘러싸여 있다. 아버지뿐 아니라 지극히 실용적인 역할과 기능을 교환하는 것이 전부인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폭력적이다. 그는 언 고기를 써는 영혜의 동작이 굼뜨다고 나무라다가 영혜가 식칼에 손을 베게 하였고 음식에서 칼날이 나오자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그 다음날 영혜는 문제의 꿈을 꾸게 된다. 이 사건은 영혜의 내면에 잠재해 있던 트라우마가 발현한 일종의 트리거 아니었을까?

부드러운 가슴을 사랑하다

[문학이야기(14)] 한강의 《채식주의자》
영혜가 브래지어를 싫어하는 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가슴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뾰족하지 않고 둥근, 누구도 해치지 않는 부드러운 가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혜 역시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소설의 끝부분. 병원 분수대 옆 벤치에서 ‘나’는 영혜가 깃털이 뜯기고 거친 이빨 자국 아래로 혈흔이 번진 작은 동박새를 움켜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동박새를 영혜가 죽인 것이라면 이는 영혜 역시 포식자의 야수성을 지닌 동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포식의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채식, 나아가 거식을 한 영혜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면 남은 길은 포식자로서의 본능을 거부하는 것밖에 없을 것이다.

3부작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의 마지막 편 ‘나무불꽃’에서 영혜가 음식을 거부하고 나무가 되기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주제도 사건도 결말도 강렬하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가해하지 않는 생명체로 존재하고 싶다는 실현 불가능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