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브렉시트·코로나·홍콩사태…'퍼펙트 스톰'에 휩싸인 영국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국 이야기입니다. 영국이 퍼펙트 스톰, 삼각파도 속에서 위태로운 지경이 됐습니다. 첫 번째 파도는 브렉시트, 즉 유럽연합(EU)과의 결별 사건이고요. 두 번째 파도는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코로나 사태, 세 번째 파도는 홍콩 국가안전법 제정 때문에 중국과의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적대적 관계입니다.브렉시트 협상 지지부진에 코로나 사태 터져브렉시트부터 알아보죠. 영국이 드디어 2016년부터 시작된 브렉시트를 했습니다. 즉 유럽연합(EU)을 떠났습니다. 지난 1월 23일 영국이 EU 탈퇴법을 통과시켰고 29일에는 EU 의회가 영국의 탈퇴를 승인했습니다.그러나 이건 완전한 마침표가 아닙니다. 탈퇴 이후 영국과 EU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탈퇴가 이뤄졌습니다. 어정쩡한 브렉시트인 거죠. 그래서 영국과 EU 양측은 2020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정하고 그 안에 협상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관세 문제, 비자 문제, 노동력 이동 문제 등 협상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누가 봐도 12월 31일 시한이 너무 빠듯해 보입니다.그런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가 터졌습니다. 6월 25일 현재 사망자가 4만 명, 확진자가 30만 명을 넘었습니다. 보리스 존슨 총리 자신도 코로나에 감염돼 격리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무슨 협상을 하겠습니까.홍콩인에 영국 시민권 부여는 브렉시트와 배치브렉시트와 코로나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영국인에게 홍콩 사태까지 겹쳤습니다. 중국이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키자 많은 영국인이 격분했습니다. 홍콩 반환 전에 영·중 두 나라가 맺은 일국양제(一國兩制: 하나의 국가에 두 가지 체제를 인정)의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한나라에 패했지만 자의식 보존한 원조선 유민들…유사한 언어·문화·종족 바탕으로 수복전쟁 나서

    근래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놓고 다른 견해가 돌출하거나 그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대한제국이 망한 뒤 독립군의 활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됐고, 우리는 이를 계승했다. 반면 북한은 ‘조선’을 국호로 택했다. 민족을 강조하며 ‘주체사관’을 정립한 뒤에는 단군릉을 만들고 ‘조선 계승’ 사실을 강조했다. 비록 잘못된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역사의 계승성과 정통성이 체제 경쟁에서 효과적임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불분명하게 기술된 원조선개인은 물론 나라와 민족에도 정통성과 계승성은 존재 방식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뿌리야말로 존재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4000여 년 역사 속에서 수백 개의 나라가 명멸했고, 전혀 다른 종족과 언어집단들이 번갈아가며 나라를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라는 이름 아래 계통을 분명히 하고 역사책에 서술했다. 지금도 ‘중화’라는 자신감을 토대로 국가를 경영한다. 일본은 고대에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고, 현재 일본도 19세기 중반이 지나서야 비로소 완성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만세일계’라고 하며, 기원전 660년 전부터 현재까지 한 영토에서 하나의 역사가 이뤄졌다고 계통성을 분명하게 선언한다.그러면 지금 우리는 역사 속 계승성과 정통성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앞 전시실에 설치한 연표에 고조선 조항이 들어간 것은 불과 1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역사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쓴 시민들의 주장 덕분이었다. 역사책에서는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부여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이 ‘부족국가’에서 출발했다고 서술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새 농토·풍성한 수확물 찾아 대항해 나선 한반도 남부인…1000년 동안 철기와 볍씨 쪽배에 실어 남해 건넜다

    야요이시대 사람의 생물학적 유사성일본 야요이문화를 발전시킨 이주민들의 정체는 생물학적인 성격을 분석하면 더욱 확실해진다. 유골들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길며, 코가 높다. 하니하라 가즈로 일본 도쿄대 교수는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인구 모델을 적용했더니 기원전 300년 경부터 기원후 700년까지 원주민의 비율과 도래인(진출자)의 비율은 1 대 9.6이었다. 또 두개골의 형태를 비교했더니 원주민과 이주계의 혼혈 비율이 서부 일본은 1 대 9 내지 2 대 8에 가깝고, 간토(關東) 지방은 3 대 7이었다. 1000년 동안 사람들이 대규모로 험한 바다를 건너와 정착한 것이다. 또 신라계 주민들이 주로 개척한 돗토리현의 야요이인들의 유골에서 DNA를 추출해 조사한 결과는 놀랍게도 혼슈지역 사람들은 물론이고, 현대 한국인들과 유사했다.이런 역사를 안 일본인들은 ‘내선일체론’ ‘일선동조론’ ‘동조동근론’, 즉 일본과 조선은 한 뿌리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천황의 신민인 우리는 창씨개명해야 한다며 동화정책을 폈다. 하지만 그들은 주(主)와 부(副)를 속였다. 우리가 주이고, 일본인의 원형이었다.조한(朝漢)전쟁과 한민족의 이주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재미가 있고, 의미도 크다. 하지만 지금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가 있다. 왜 선조들은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넜을까? 그 동기를 알고, 신천지를 개척한 이들의 용기와 지혜를 배우는 일이다.우선 기원전 3세기 무렵부터 동아시아 세계는 대혼란기에 접어들었다. 중국 대륙은 진시황이 통일전쟁을 계속했다. 북방의 흉노가 침공하면서 숱한 유민이 생겨 동쪽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원조선(고조선)에서는 이주민인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미국 편에 설 것인가…중국 편에 설 것인가…홍콩사태로 국제사회 '편 가르기' 본격화할까

    중국이 홍콩보안법으로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데 대해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또 다른 조치는 금융거래에 대한 제한입니다. 홍콩의 특별지위 박탈과 함께 미국이 할 수 있는 제재입니다. 중국 금융거래의 상당 부분이 달러 거래인데 그것은 미국의 SWIFT(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라는 시스템을 거치게 됩니다. 외국에 송금할 때 은행식별코드 SWIFT 코드를 입력하라고 하는데요. 미국은 그 스위프트에 압력을 가해 중국과 홍콩의 자금거래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이란, 베네수엘라에 대해서는 이미 이런 제재를 가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세게 한다면 홍콩달러의 미국달러에 대한 교환을 중단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홍콩의 페그제(미국달러에 환율을 고정시키는 제도로 미화 1달러는 7.75~7.85홍콩달러)는 붕괴되고 자본이 홍콩에서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미국의 금융 제재는 미국에도 손해하지만 이런 조치까지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엄청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달러 거래에 대한 제재는 달러 거래량을 줄이기 때문에 기축통화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립니다. 그건 미국에 손해입니다.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는 경제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제재하더라도 달러 거래 총량에 큰 차질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다르죠. 세계 최대 수출국 아닙니까. 중국이 달러 거래를 못하거나 안 하면 달러 거래량도 현격히 줄어들고 기축통화인 달러의 파워도 줄어들죠. 물론 제재 대상인 중국은 치명적 타격을 입겠지만 미국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겁니다. 따라서 그런 제재까지 하기는 쉽지 않을 겁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BC 4세기 무렵부터 한반도 남부에서 출항…일본열도에 상륙한 항해자들, 日 '야요이시대' 열었다

    우리는 정말 1000회 가깝게 침략만 받았는가? 우리는 한 번도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거나 개척한 적이 없었는가? 이렇게 자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기이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고대에 망망대해를 건너 일본열도에 상륙한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일본인들의 주장처럼 ‘귀화인’일까, 또는 ‘도래인’일까. 아니면 ‘개척자’나 ‘정복자’였을까.일본 고서에 비치는 외부 정복자들< 삼국사기>에는 신라가 처음 세워질 때부터 ‘왜’ ‘왜인’ ‘왜병’ 등으로 표현된 집단에 쉴 새 없이 침략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일본열도를 공격하거나 진출한 기록은 없다. 실성왕 때(407년) 대마도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빼놓고는 그랬다. <삼국유사>가 그나마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를 실었다.이와 달리 일본의 <고사기>(신화를 담은 역사책의 일종, 712년)와 <일본서기>(역사책, 720년)에는 초기부터 외부 사람들이 일본열도를 정복한 상황이 표현돼 있다.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로 상징된 태양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폭풍(또는 대지)의 신인 스사노오 노미코토, 천손(天孫)인 니니기노 미코토처럼 ‘천(天)신’ ‘해(海)신’ ‘지(地)신’들은 일본열도의 바깥에서 온 집단들을 상징한 것이다. 그러면 지금껏 풀기 어려운 미묘한 관계로 남은 일본 민족과 일본 문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우리와는 어떤 관계로 출발했을까.일본열도에는 군마현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구석기 시대인들이 살았다. 신석기 시대에는 조오몽인들이 사냥과 채집을 하면서 크고 문양이 복잡한 토기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기원전 4~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미국이 '홍콩 특별지위'를 취소하면…

    안녕하세요? 오늘은 홍콩사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시진핑과 중국 공산당에 홍콩은 목의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홍콩 시위대는 중국 공산당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을 넘어 독립을 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시위를 방치하다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미 독립국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대만이 진짜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할지도 모릅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티벳 자치구 등 무력으로 눌러 놓고 있는 식민지들이 독립 투쟁에 나설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내심 홍콩인들의 시위를 당장 무력을 써서라도 진압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후폭풍이 너무 거셀 것이기 때문입니다.중국 성장하면서 홍콩의 경제적 비중 작아져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홍콩과 중국의 경제적 관계가 어떤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될 당시 홍콩의 국내총생산(GDP)은 177억달러로, 962억달러인 중국의 17.0%였습니다. 작은 섬에 불과한 홍콩이 경제적으로는 중국 전체의 6분의 1에 해당했습니다. 20년 새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018년 현재 홍콩의 GDP는 3630억달러로서 13조6080억달러인 중국의 2.7%에 불과합니다. 중국이 엄청나게 성장한 결과죠.홍콩을 중국의 도시들과 비교하면 이런 상황이 실감납니다. 2017년 중국의 도시별 지역총생산을 살펴보면 상하이가 4500억달러로 1위, 2위인 베이징이 4100억달러, 3위 선전이 3400억달러입니다. 홍콩은 3300억달러로 4위입니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당시에는 당연히 홍콩이 압도적 1위였겠죠.그래도 무역에서는 홍콩이 아직도 꽤 중요합니다. 2018년 중국의 전체 수출 중에서 홍콩에 대한 수출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한반도·일본 소국 차단하며 환황해무역 독점한 원조선…BC 2세기 漢나라와 동아시아 해상권 놓고 무력충돌

    춘추전국시대는 물론이고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진(秦)나라도 광저우시에 적재량 30t짜리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세웠으며, 동남아시아 지역과 물소 뿔, 상아, 비취, 진주 등의 상품을 무역했다. 그런데 기원전 2세기 무렵에 들어와 동아시아 정세는 요동치기 시작했다.페르시아에서 일본까지 무역망 구축 나선 한나라한나라는 건국 이후 60여 년 동안 유목민족인 흉노국에 굴욕을 당했는데, 한무제가 등장해 40여 년 동안 공격한 끝에 분할 지배(devide and rule)하는 데 성공했다. 또 남쪽으로는 기원전 112년에 양복에게 수군 10만 명을 줘 광둥(廣東), 광시(廣西), 베트남 북부지역인 남월(南越)을 멸망시킨 후 동남아시아로, 페르시아로 이어지는 무역망을 구축했다. 서쪽으로는 장건을 파견해 흉노를 압박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대신 실크로드로 진출할 수 있는 정보와 경험 등을 얻었다. 동쪽으로도 관심을 기울였다. 서력 기원을 전후해 한반도의 삼한 소국들 및 왜 소국들과 교류한 기록이 많고, 여러 지역 심지어는 제주도 등에서도 연나라, 한나라의 화폐가 발견된다.사실은 진시황도 해양과 동방에 관심이 많아 네 차례나 해안가 요충지들을 순시했는데, 무려 세 번에 걸쳐 산둥해안과 발해를 방문했다. 그가 파견한 서복(徐福)과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은 황해를 건너 남해안을 거쳐 제주도에 머문 후 일본 열도에 상륙했다. 불로초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치장했지만 실제로는 동쪽지역의 지리, 산물, 정치 상황 등의 정보 수집과 무역을 추진한 사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시진핑 정부가 중국을 가운데 놓고 동서남북으로 대륙과 해양에서 경(經)·정(政)·군(軍)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일대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코로나 불황에 미국도 돈 많이 풀었는데 왜 달러화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달러 강세 현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 중 하나입니다. 실업자도 많이 발생했고, 그걸 해결하려고 돈도 엄청나게 풀었습니다. 미국 정부가 긴급 지출한 자금이 국내총생산(GDP)의 9.1%입니다. 독일의 10%보다는 작지만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나라 대비 거의 10배나 됩니다.정부만이 아니라 중앙은행(Fed)도 엄청나게 돈을 풀고 있습니다. 양적완화를 통해 미국 정부의 장기 국채를 매입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까지 매입합니다. Fed는 외국에도 달러를 제공하죠. 지난 3월 19일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했잖아요. 그게 미국 달러를 풀어내는 또 다른 경로입니다. 그 금액 역시 치솟고 있죠. 4000억달러를 넘습니다.이런 실적은 Fed의 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기록됩니다. 바로 돈을 찍어낸 실적이죠.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Fed의 자산 규모는 GDP의 19%인데 2020년엔 32%로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달러화 많이 풀어도 올초보다 6% 가치 상승오늘의 주제인 달러 가치를 살펴볼까요? 돈은 많이 풀릴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상식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많이 풀린 돈이 달러니까 미국 달러 가치가 떨어졌을 것으로 기대하는 게 순리죠.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반대입니다. 중요 6개 통화에 대한 미국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를 보면 올해 1월 1일 96.45였는데요. 오르락내리락하다가 5월 14일 현재 102.29가 됐습니다. 연초에 비해 6%가 오른 겁니다. 가장 많이 풀린 돈인 달러의 가치가 오히려 오른 거예요.반면 대부분 신흥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