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 이야기
(30) 속도 예찬에서 느림 예찬으로
1995년 9월, 미국에서 연쇄 폭발물 테러가 벌어진 뒤 언론사에 익명의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이었다. 동시에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주요 정치인 등도 테러 협박 편지를 받았다. 선언문의 서두는 이랬다.(30) 속도 예찬에서 느림 예찬으로
“산업혁명의 결과는 인류에게 재앙이었다. 그 덕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의 존재는 비천해졌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글의 요지는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에 반대하며 이를 막기 위한 세계적인 혁명이 실현된다면 자신의 테러 행위를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선언문이 17년간 오리무중이던 테러범의 꼬리를 잡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 시민이 신문에 실린 글이 자기 형의 문체와 비슷하다고 제보해왔다. 이를 단서로 FBI는 1996년 4월, 북부 몬태나주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테러범을 체포했다.
그가 ‘유나바머’로 알려진 전직 수학 교수 시어도어 존 카친스키였다. 그가 폭발물을 보낸 곳이 주로 대학교와 항공사여서 언론이 두 단어의 앞 글자(Un+A)에 폭파범(Bomber)을 붙여 지은 별명이다. 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총 16회의 우편물 폭탄 테러로 사망 3명, 중경상 23명의 피해를 입혔다. 기술 문명을 거부하는 반문명카친스키의 악행도 놀랍지만,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그가 엄청난 인텔리라는 점이었다. 1942년 시카고의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친스키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고등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하버드대와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25세의 나이로 UC버클리의 최연소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러나 그는 2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둔 뒤 몬태나주 오두막에 은둔하며 살았다. 그가 갑자기 변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960~1970년대 유행했던 생태주의에 경도된 듯하다. 그는 산림 개발로 오두막이 헐릴 처지가 되자 1978년부터 테러를 감행했다. 기소된 카친스키는 무기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복역 중이다. 카친스키와 같은 사고방식은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다. 역사적으로 기술 문명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반문명, 또는 문명을 거부하는 세계관이 계승됐다. 바쁜 현대인들의 느림 예찬문명의 발전은 속도와 비례했다. 걷거나 뛰던 인간이 말을 길들인 뒤에는 평균 시속 20㎞로 빨라졌다. 증기기관차는 19세기 말 속도를 시속 60㎞까지 높였다. 20세기에는 자동차 덕분에 시속 100㎞ 속도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초고속 열차는 시속 300~400㎞로 달리고, 비행기는 음속(시속 1234㎞)을 넘었다.
고대인이나 현대인이나 하루가 24시간인 것은 똑같다. 따라서 속도가 빨라진 만큼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 조선시대에 과거를 보러 한양까지 한두 달씩 걸어갔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나 자동차로 네댓 시간이면 도착한다. 전기를 이용하면서 밤까지 활동 영역이 확장됐다. 쓸 수 있는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현대인은 늘 “바쁘다 바빠”를 외친다. 자동차가 느리게 가면 못 견디고, 승강기에 타는 순간 닫힘 버튼을 누르기 바쁘며, 식당에 가서는 음식 나오는 차례가 늦어지면 짜증부터 난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시대에는 느리면 뒤처진 것, 게으른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이런 삶에서 벗어나 ‘시간의 노예’이길 거부하는 시도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속도 만능주의에 반기를 들고 느림을 예찬하는 생활의 반란이다. 속도, 효율, 능률 등 빠른 삶 대신 느린 삶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슬로 라이프’라고 부른다. 이런 개념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문화인류학자 겸 환경운동가인 한국계 일본인 쓰지 신이치가 《슬로 라이프》에서 느림의 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제안했다. 걷기, 슬로푸드, 방랑, 농사, 어울림 등 자연에 순응하며 소박하고 느긋하게 살자는 것이다. 슬로 라이프의 원조 격이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한 마을에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맥도날드가 로마에 진출한 이후 패스트푸드와 반대로 이탈리아의 전통 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해 건강한 음식을 먹자는 취지의 ‘안티맥도날드 운동’으로 출발했다.
1999년 이탈리아 토스카나주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는 슬로시티 운동이 시작됐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로 요약된다. 지역민이 중심이 돼 전통과 자연 생태를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삶과 발전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주장이다. 슬로시티의 철학은 성장보다 성숙, 삶의 양보다 질, 속도보다 깊이와 품위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빠름과 느림, 농촌과 도시, 로컬과 글로벌, 아날로그와 디지털 간 조화로운 삶의 리듬을 지키자는 취지다. 한국에서는 이런 개념이 전원생활로 이해되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히슬로 라이프는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고 있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슬로비족’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슬로비는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주목받은 것이 신흥 부유층인 여피 세대로 도시에 거주하며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층을 가리킨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에는 물질보다 마음을, 출세보다 자녀를 중시하며 느긋하게 사는 슬로비족이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도 소확행, 욜로 등의 용어가 유행했다. 지금 이 순간 나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태도다, 한 번 뿐인 자신의 삶을 미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집단 속의 ‘나’에서 자신을 자각하는 개인주의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①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이 없었더라도 인류는 기아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② 빠르고 효율적인 삶과 느리고 여유 있는 삶 가운데 내 삶의 철학에 더 어울리는 쪽은 어디일까.
③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비대면 문화가 보편화된 상황에서 앞으로 삶의 형태는 어떻게 달라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