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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마노믹스

    패스트푸드 도입한 맥형제? 프랜차이즈 주도한 레이?…햄버거왕국 맥도날드의 '진정한 창업자'는 누구일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밀크셰이크가 안 팔려서 믹서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믹서가 없어서 밀크셰이크가 안 팔리는 겁니다. 공급이 늘면 수요도 따라 늘죠.”1954년 미국. 레이 크록(마이클 키턴)은 52세 밀크셰이크 믹서 판매원이다. 전국을 돌며 영업하지만, 몇 잔 안 팔리는 밀크셰이크를 만들기 위해 무겁고 큰 믹서를 사는 식당 주인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주문이 들어왔다. 캘리포니아의 ‘맥도날드’라는 식당 한 곳이 믹서를 여덟 개나 시킨 것.호기심에 가게를 찾아간 레이 앞에 신세계가 펼쳐진다. 메뉴는 햄버거와 치즈버거, 감자튀김 총 세 개다. 동전을 내민 뒤 종이봉투에 담긴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30초. 얼떨떨한 그가 “방금 주문했는데요”라고 묻자 젊은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방금 나왔어요.”‘패스트푸드’란 개념이 없던 시대. 음식을 주문하면 나오기까지 20~30분이 걸렸고, 엉뚱한 음식을 받기 일쑤였다. 레이의 마음속에 무언가 번쩍였다. 프랜차이즈의 시초이자 오늘날 글로벌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가 된 맥도날드의 시작이었다. 주방을 공장처럼주문한 지 30초 만에 나오는 햄버거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가게를 운영하는 맥도날드 형제 중 형인 맥(존 캐럴 린치)과 만난 레이는 맥도날드의 주방을 보게 된다.맥도날드의 주방은 ‘햄버거 공장’이었다. 한쪽 벽면의 그릴에서 직원 두 명이 패티 수십 개를 구웠다. 반대편에선 다른 직원들이 반으로 자른 빵에 기계로 같은 양의 케첩과 머스타드를 뿌렸다. 패티를 빵 위에 올리는 직원, 햄버거를 포장하는 직원 등 단계마다 전담 직원이

  • 김동욱 기자의 세계사 속 경제사

    초고속 시대에 느리게 살기가 가능할까

    1995년 9월, 미국에서 연쇄 폭발물 테러가 벌어진 뒤 언론사에 익명의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선언문이었다. 동시에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 주요 정치인 등도 테러 협박 편지를 받았다. 선언문의 서두는 이랬다.“산업혁명의 결과는 인류에게 재앙이었다. 그 덕에 선진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평균 수명은 크게 늘어났지만 사회는 불안정해졌고, 삶은 무의미해졌으며, 인간의 존재는 비천해졌다. 기술이 계속 발전하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글의 요지는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에 반대하며 이를 막기 위한 세계적인 혁명이 실현된다면 자신의 테러 행위를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 선언문이 17년간 오리무중이던 테러범의 꼬리를 잡는 계기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한 시민이 신문에 실린 글이 자기 형의 문체와 비슷하다고 제보해왔다. 이를 단서로 FBI는 1996년 4월, 북부 몬태나주의 허름한 오두막에서 테러범을 체포했다.그가 ‘유나바머’로 알려진 전직 수학 교수 시어도어 존 카친스키였다. 그가 폭발물을 보낸 곳이 주로 대학교와 항공사여서 언론이 두 단어의 앞 글자(Un+A)에 폭파범(Bomber)을 붙여 지은 별명이다. 그는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총 16회의 우편물 폭탄 테러로 사망 3명, 중경상 23명의 피해를 입혔다. 기술 문명을 거부하는 반문명카친스키의 악행도 놀랍지만,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그가 엄청난 인텔리라는 점이었다. 1942년 시카고의 폴란드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카친스키는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고등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하버드대와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