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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채만식 '태평천하'

    식민시대의 모순을 풍자로 고발하다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서당에서 한문을 익혔고 1914년 임피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918년 경성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1922년 일본 와세다대학 부속 고등학원 문과에 입학했으나 이듬해 귀국했다가 다시 돌아가지 않아 퇴학 처분되었다. 1924년 경기도 강화의 사립학교 교원으로 취직하고, 조선문단에 '세 길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25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했다가 이듬해에 그만두고 고향에서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에 심취하며 문학 수업에 전념했다. 1936년 개성으로 옮겨가 본격적인 전업 작가 생활에 들어간 뒤 '탁류' '태평천하' 등을 써내면서 당대 문단의 중진 작가로 인정받았다. 일제 말기에 귀경과 낙향을 반복하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집필 활동에 전념하여 주옥같은 해방기의 명편들을 남겼다. 1950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원문읽기아무려나 이래서 조손 간에 계집애 하나를 가지고 동락을 하니 노소동락(老少同樂)일시 분명하고, 겸하여 규모 집안다운 계집 소비 절약이랄 수도 있겠습니다.그렇지만 소비 절약은 좋을지 어떨지 몰라도, 안에서는 여자의 인구가 남아돌아가고(그래도 한숨과 불평인데) 밖에서는 계집이 모자라서 소비 절약을 하고(그래 칠십 노옹이 예순다섯 살로 나이를 야바위 치고, 열다섯 살 먹은 애가 강짜도 하려고 하고) 아무래도 시체의 용어를 빌려오면, 통제가 서지를 않아 물자 배급에 체화(滯貨)와 품부족이라는 슬픈 정상을 나타낸 게 아니랄 수 없겠습니다.▶해설=채만식은 식민지 시대의 모순을 풍자적 기법을 활용하여 예리하게 비판한 당대 최고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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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레비 스트로스 '슬픈 열대'

    문명은 과연 인간적인가현대 구조주의 사상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레비 스트로스는 기존의 인류학 연구방법론은 물론 인문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온 독특한 사유 체계를 창시한 대학자이다. 현대에 씌어진 가장 탁월한 기행 문학으로 전 세계의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일대 충격을 준 <슬픈 열대>는 레비 스트로스가 브라질에 체류하면서 조사한 네 원주민 부족에 관한 민족지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민족지의 차원을 넘어 저자 자신의 사상적 편력과 청년기의 체험,인류학을 자신의 학문 영역으로 설정하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을 지적,자서전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다.현대의 탁월한 고전으로 자리 잡은 이 책에서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인들의 사회에 대해 동경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동시에 비인간적인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 문명에 대한 강한 분노와 깊은 우수를 표명하고 있다.◆원문 읽기마르크스가 내게 가르쳐 주었던 것은 물리학이 감각의 여건에서부터 출발하여 체계를 세운 것이 아닌 것처럼 사회과학도 사건들을 기반으로 하여 성립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사회과학의 목적은 하나의 모델을 설정하여 그것의 특성과 그것이 실험실에서의 테스트에 반응하는 갖가지 방식을 검토한 후 이어서 그 관찰 결과를 경험적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석-예견했던 바와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에 적용하는 것이다.▶해설레비 스트로스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마르크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청년 시절 스스로를 좌파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으나 자신의 사상적 지향점이 마르크스와 다르다는 것을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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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사마천 '사기(史記)'

    사마천의 선택…치욕보다 더 큰 명분저도 생명을 아까워하는 비겁한 자에 불과하지만 거취만은 분명하게 하려는 사람입니다. 어찌 치욕을 모르고 죄인 노릇만 하고 있겠습니까? 천한 노예와 하녀조차도 자결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하려 했으면 언제든 할 수 있었습니다.그러나 그 고통과 굴욕을 참아내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는 까닭은 가슴 속에 품고 있는 숙원이 있어,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경우 후세에 문장을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입니다.(중략)만일 이 저술이 완성되면 명산에 보관되고 각지의 선비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저의 치욕도 충분히 씻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설사 이 몸이 산산이 부서진다 해도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사마천,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사기(史記)>는 130권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으로,춘추전국시대를 살다 간 수많은 영웅호걸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열전',연대기에 따라 발생한 사건을 통해 제왕들의 삶을 서술한 '본기',제후들의 '세가',당시의 생활을 분야별로 서술한 '서',역사적인 사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한 '표'로 구성된다.이러한 사기에 등장하는 사건들과 인물들은 우리들이 평소에도 대화에 인용할 정도로 매우 친숙하기까지 한다.그런데 우리 역사도 아닌 2000여년 전 중국 역사를,그것도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모든 내용을 접하기란 쉽지 않다.하지만 당시 선비로서는 도저히 선택할 수 없는 궁형을 선택한 비극적인 인물이었던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로 승화시킨 정신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또한 인생의 의미,처세의 태도,인간관계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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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리하르트 반 뒬멘 '개인의 발견'

    개인, 이기적이거나 공익적이거나독일의 역사학자 리하르트 반 뒬멘의 '개인의 발견-어떻게 개인을 찾아가는가 1500~1800'은 개인의 자기발견에 대한 기존의 인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개인에 대한 인식은 르네상스시기부터가 아니라 중세의 기독교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으며,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의미의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근대적 개인'은 18세기 이후에야 나타났다고 한다.뒬멘은 개인 중심의 사고와 행동의 발달이 가정,학교,교회,국가와 같은 사회 문화적인 맥락의 변화 속에서 역사적으로 서서히 형성됐다는 것을 풍부한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자화상,자서전,일기,개인적 서신,교양소설,해부학,골상학,인류학,심리학,가톨릭의 고백성사,학교와 가정의 양육제도,형벌과 법정 제도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영역에서 '개인의 발견'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통주의적 행동에서 개인주의적 행동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시대의 변화 속에 놓인 구체적인 개인의 삶과 행동에서 발견하고 있는 점에서 현대 역사학의 새로운 흐름을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원문 읽기비록 르네상스 시기가 자기성찰이라는 점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던 시기라 해도,그렇다고 중세에는 자아발견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거나 혹은 전반적인 보편주의 가운데 자아가 푹 파묻혀 있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르네상스의 개인이 19세기가 구성해 낸 것처럼 '시민적(burgerlich)' 개인이었던 것도 아니다. 계몽적 사고,시민적 사고라는 특징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근대적 개인은 18세기 말 이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해설=개인의 발견이 르네상스시기부터라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빌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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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에릭 홉스봄 「혁명의 시대」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은 분리돼 있지 않다에릭 홉스봄(1917~ )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미니와 유태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를 다녔고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했다. 홉스봄은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히고 있다. 동시대 역사가로서 로드니 힐튼과 크리스토퍼 힐,그리고 에드워드 톰슨이 영국사 연구에 치중한 반면,홉스봄의 저작들은 영국,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그 시기도 17세기부터 20세기 현대사까지 통괄하고 있다. 특히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 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해 당대의 정치와 경제,사회와 문화,예술 및 문화비평을 포괄하는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1962),자본의 시대(1975),제국의 시대(1987)는 그의 대표작으로,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는가를,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원문읽기유럽의 교역 및 자본주의적 기업에 의한 급속하고도 광범위한 팽창은 이미 이러한 문명과 세력들의 사회질서를 잠식하고 있었다. 이는 아프리카의 경우 전례 없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끔찍한 노예무역을 통해서,인도양 주변에서는 경쟁적인 식민화 세력의 침투를 통해서,중동·극동에서는 교역과 군사적 충돌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이미 유럽에 의한 직접 정복은 16세기 에스파니아 및 포르투갈인들과 17세기 북아메리카 백인 정착민들의 선구적 식민지 개척에 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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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이중환 '택리지(擇里志)'

    끝없는 방랑이 만들어낸 조선의 풍속도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살만한 터를 선택하기 위한 책)를 읽다보면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이고 다른 한 사람은 보들레르이다. 이중환 김용택 보들레르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우리의 답답하고 팍팍한 삶을 자신의 방식대로 인상 깊게 풀어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팍팍한 삶 앞에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저무는 강변으로 가 이 세상을 실어오고 실어가는 강물에 자신의 마음 한 끝을 적셔 풀어 보내며' 삶을 위로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광막한 비마저 자신을 꽁꽁 가두는 감옥의 쇠격자'로 생각했던 보들레르는 '음울'이라는 시에 정신적 우울을 담아 자신을 잠시 동안 해방시켰다. 이중환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다. 젊은 나이에 과거에 오르고 문학과 재략(才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불행히 먼 지역으로 귀양 가게 되고 택리지를 저술하기까지는 한(恨) 많은 삶을 살았다.거처할 집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어 매일매일 어떻게 지낼 수 있었을까? 산과 물, 토지, 명승지, 경치 좋은 곳, 피난처 등등 30여년간 방랑길에서 온갖 것과 만나 꽉 닫힌 마음을 트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지 않았을까? 그가 속했던 삶의 벽장 안에서 숨죽이며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 슬픔을 흘려보내고 끝없는 방랑이 만들어낸 이야기 택리지를 읽어보자.1. 사민총론(四民總論)◆ 원문 읽기옛날에는 사대부가 따로 없고 모두 민(民)이었다. 그런데 민은 네 가지로 분류된다. 사(士)로서 어질고 덕(德)이 있으면 임금이 벼슬을 주었고, 벼슬을 못한 자는 농·공·상이 되었다. 옛날 순임금은 처음 역산(歷山)에서 밭 갈고, 하빈(河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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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마키아벨리 '군주론'

    "국가는 도덕으로 통치하는 것 아니다" … 근대정치론의 시작근대 정치학의 토대가 되고 있는 군주론은 권력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로 인식되어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러나 마이카벨리가 이 책을 서술할 당시 이탈리아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이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처럼 군소 국가들의 대립, 외세 침략 등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마키아벨리는 현실의 정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논하면서 기존의 종교적,도덕적 관점을 철저히 배제했다. 그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도덕적 이상의 추구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보았다. 덕을 베푸는 것이 도덕적 결과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정치 권력의 효율적 사용이 국가통치에서는 보다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까지 통용되던 이상적 군주에 대한 철학을 통째로 뒤집어 놓은 셈이다.◆원문읽기-진정한 자비로움이란..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하다는 평판을 얻었지만 그의 가혹한 조치들로 인해 로마냐의 질서가 회복되었으며,로마냐를 통일시켜 평화롭고 충직한 지역으로 만들었다. 군주가 백성들의 단합과 충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잔인하다는 평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걱정해서는 안 된다. 혼란을 제멋대로 방치해 살인과 약탈이 넘쳐나도록 만드는 사람들에 비해 단지 몇 명만 처벌함으로써 더욱 더 자비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질서를 방치해 두는 사람들은 흔히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치게 되지만 군주의 명령에 따른 강제집행은 오직 특정한 개인에게만 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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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한나 아렌트 '폭력의 세기(On Violence)'

    전쟁과 혁명의 공통분모는 폭력일찍이 시몬느 베이유는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예컨대 전쟁)에서 "폭력은 폭력의 피해자를 사물로 뒤바꿔 버린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피해 상황과 사상자 수는 사태의 규모,그 이상의 것을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사망자 카운트가 하나씩 증가할 때마다 존재했을 떨림과 두려움, 고통, 소식을 전하는 손가락의 잔인함은 '타국에서 발생한 재앙을 구경하는 현대적인 경험'(수잔 손택,<타인의 고통>) 속에서 쉽게 지워진다.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년)는 20세기를 전쟁과 혁명의 세기,그 공통분모인 폭력의 세기로 규정한다. 인간들은 이성의 힘으로 폭력 수단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각종 폭력에 감각이 무뎌지고, 오히려 자신들이 만든 파괴 수단에 의해 절멸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은 상황을 풀어내는 20세기의 저작이 21세기의 오늘을 훌륭하게 설명해낼 때, 저자의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진보하는 세상에 대한 의심과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대한 한숨도 나온다.한나 아렌트는 전쟁, 혁명, 테러가 밀도 있게 일어났던 세기를 살아냈다. 그의 고통, 고민, 저술, 사상은 철저히 그 존재를 기반으로 한다. 1906년에 태어나 1975년에 생을 마감한 아렌트는 유태인이었으며, 망명자였고, 심지어 여성이었다. 그가 <우리 망명자들 We Refugees>에서 '나라마다 쫓겨난 망명자들은 자신의 인민들의 전위를 상징한다'고 했듯이, 그는 한계 속에 놓여 있던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고 그러한 삶을 조장한 여러 가지 요인들을 탐구했다.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물려받은 조건들로 인해 고통 받던 아렌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