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

어떤 도시는 위대한 문학작품을 낳기도 하지만 어떤 문학작품은 도시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더블린이라는 도시가 없었다면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소설을 쓸 수 없었겠지만 더블린에 사는 인간 군상을 그린 ‘더블린 사람들’이 세상에 나온 뒤로 더블린은 더 이상 그 이전의 더블린일 수 없게 되었다.

‘더블린 사람들’ 이전 더블린은 아일랜드의 한 도시였지만 ‘더블린 사람들’ 이후 더블린은 ‘더블린 사람들’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니까 더블린이라는 도시에 살아서 더블린 사람들인 것이 아니라 더블린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서 더블린인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뉴요커가 되는 것이 아니라 뉴요커들이 사는 곳이 뉴욕인 것처럼, 파리에 사는 사람들이 파리지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파리지앵이 사는 곳이 파리인 것처럼.

대개는 도시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규정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의 특징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가 뉴요커라고 부를 때, 파리지앵이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이미지들이 뉴욕이나 파리 같은 도시의 물리적 특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그러니 우리가 뉴요커라고 부를 때, 파리지앵이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것들은 특정한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성이라기보다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욕망에 더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더블린 사람들’이야말로 더블린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구심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머지 더블린이라는 도시와 거의 무관해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더블린 사람들’이란 더블린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어떤 본원적인 속성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인 것이다.

친구의 누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소년도, 새로운 인생을 도모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 앞에서 가족이라는 굴레 때문에 망설이는 처녀도, 자신보다 떨어진다고 여기는 친구의 성공에 자극받아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꿈꿔보는 소심한 사내도, 신기루 같은 환상으로 남루한 현실의 쓸쓸함을 달래는 노처녀도, 댄스파티의 흥취에 들떠 있다가 아내로부터 죽은 연인에 대한 고백을 듣는 사내도, 딸의 입신양명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여인도, 밖에서 수모를 겪고 집으로 돌아와 어린 아들에게 화풀이를 하는 주정뱅이도 모두모두 우리 안의 우리들이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가 너무 많아서 저마다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이블린, 챈들러, 마리아, 게이브리얼, 커니 부인, 패링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 안의 우리들이 사는 우리 안의 마을이 바로 더블린이다.

더블린은 우리 안의 수많은 우리가 좌절하고 소리 지르고 술 마시고 번민하고 주저하고 질투하고 자책하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을 부르는 지명이다.

그러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때 우리는 더블린이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고 마음이 무겁다고 말할 때 우리는 더블린이 무겁다고 말하는 것이다.

더블린은 우리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이자 미스터리인 우리의 마음이고 내면이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반들반들하게 닦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기회를 주기 위해 ‘더블린 사람들’을 썼노라고 조이스는 말했다.

문학작품은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어서 우리가 문학작품에서 찾아내야 할 것은 작가의 메시지나 교훈이나 상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조이스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위한 거울을 빚었지만 그 거울은 아일랜드 사람들만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반질반질하다.

조이스는 동시대의 아일랜드 사람들을 위한 거울을 만들었지만 그가 만든 거울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이 되었다.

보편성 속의 특수성, 특수성 속의 보편성.

하나이면서 모두이며 모두이면서 하나인 것. 우리는 그것을 위대한 작품의 운명이라고 부른다.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거나 무시하고 싶거나 부정하고 싶은 우리 마음속의 그늘을 적나라하게 비춰준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알 수 없는 게 뭐니? ‘더블린 사람들’이라는 거울 속에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그리하여 ‘더블린 사람들’을 읽을 때 우리는 모두 더블린 사람들이다. 아니, 더블린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스무 살에 읽으면 스무 살의 우리 자신을, 마흔 살에 읽으면 마흔 살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반질반질한 거울이니까. 누가 앞에 서든 마음 깊은 골짜기까지 비추는 절대거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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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에 사는 중산층 사람들의 이야기

20세기 문학사의 흐름을 바꾼 천재 작가 제임스 조이스는 첫 작품 《더블린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문학 기법을 추구하며 전대미문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창출해냈다.

당시의 문학 전통에 반기를 든 이 소설은 출판사와 마찰을 빚으며 번번이 출간에 실패하다가 탈고한 지 10년 만인 1914년에 출간되었다.

조이스의 문학은 T. S. 엘리엇, 헤밍웨이, 보르헤스, 나보코프를 비롯해, 근래에 와서는 움베르토 에코, 토니 모리슨, 살만 루슈디 등 수많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에 살았던 중산층의 삶을 통해 더블린 전역에 퍼져 있는 정신적, 문화적, 사회적 병폐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총 1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그 내용에 따라 소년 시절, 청춘 시절, 성인 시절을 다룬 단편 각 3편과 사회생활을 다룬 3편, 그 밖에 조이스가 마지막에 덧붙인 3편으로 나눌 수 있다.

생애 처음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소년의 심리를 다룬 단편 《자매》, 사회적으로 성공한 옛 친구를 만나 열등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이야기인 《작은 구름》, 남자친구와 더블린을 떠나 새 삶을 찾기로 약속하지만 떠나는 날 끝내 가족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하는 한 처녀의 고뇌를 그린 《이블린》 등 당시 더블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바탕으로 인류 보편의 문제를 조명한 걸작이다.

[한국 작가가 읽어주는 세계문학]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원제: Dubliners

저자: James Joyce

발표: 1914년

분야: 영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더블린 사람들

옮긴이: 진선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43(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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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공통적으로 ________한모습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