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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 기타

    '닥터 지바고' 영화를 그대로 압축한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겨울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눈보라가 휘몰아쳤지.세상 끝에서 끝까지 휩쓸었지.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촛불이 타고 있었네.여름날 날벌레 떼가날개 치며 불꽃으로 달려들듯밖에서는 눈송이들이 창을 두드리며날아들고 있었네.눈보라는 유리창 위에둥근 원과 화살들을 만들었고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촛불이 타고 있었네.촛불 비친 천장에는일그러진 그림자들엇갈린 팔과 엇갈린 다리처럼운명이 얽혔네.그리고 장화 두 짝바닥에 투둑 떨어지고촛농이 눈물 되어 촛대서옷 위로 방울져 떨어졌네.그리고 모든 것은 눈안개 속에희뿌옇게 사라져 갔고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촛불이 타고 있었네.틈새로 들어온 바람에 촛불 날리고유혹의 불꽃은천사처럼 두 날개를 추켜올렸지.십자가 형상으로.눈보라는 2월 내내 휘몰아쳤지.그리고 쉬임없이식탁 위엔 촛불이 타고 있었네.촛불이 타고 있었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890~1960) : 러시아 시인이자 소설가.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닥터 지바고>를 그대로 압축해놓은 듯하죠?이 시 ‘겨울밤’의 배경은 암흑 속의 러시아 혁명기입니다. ‘눈보라’는 시베리아까지 휘몰아친 혁명의 소용돌이를 상징하지요. ‘촛불’은 시대의 광풍 앞에 위태롭게 흔들리는 개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엇갈리는 ‘운명의 그림자’는 소설 주인공인 유리와 라라를 닮았습니다. 당국 압박에 노벨상도 거부해야 했던…비운의 시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삶도 그랬지요. 그의 본업은 소설가라기보다는 시인이었습니다. <닥터

  • 시사 이슈 찬반토론

    정부가 사립대 입시까지 감놔라 배놔라, 바뀔 때 됐나

    2028학년도 대학입시 방식이 2023년 말에 발표됐다. 늘 그렇듯이 발표 주체는 교육부다. 선택과목이 폐지되고, 내신성적은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하되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뀐다. 수학은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가운데 선택하는 현행 방식에서 문과생 수준의 쉬운 수학으로 단일화된다. ‘심화수학’이라는 난도가 높은 학습 과정이 빠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과대 등 이공계통 대학에서 기본적인 미적분을 다시 가르치게 되면서 기초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학생 선발 자율권을 왜 대학에 주지 않고 정부가 계속 간섭하느냐다. 국립대학은 몰라도 사립대학은 건학 이념에 따라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학생을 선발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다. 사립대학 입시 과목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정부,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인가.[찬성] 학생 선발은 대학 독립·발전의 대전제…건학 이념·지향 교육 가치 따라 자율로대한민국에서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규제·간섭·감독 행정으로 ‘관치금융’을 언급하지만 더 심한 관치는 교육이다. 정부가 대학입시의 과목 선정과 난이도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고, 그나마도 매년 조삼모사 조변석개로 바꾸는 나라가 어디 있나. 현대 국가의 합리적 행정권을 넘어서는 전근대적 국가만능주의에 다름 아니다. 과도한 간섭에 대학은 자율성·창의성·독립성을 잃은 채 경쟁력만 저하되고 있다. 대학의 질적 저하는 관치교육에 큰 원인이 있다. 왜 대학을 법에서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하는가. 스스로 책임지면서 홀로 서야 한다는 철학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여러

  • 역사 기타

    "5%까지 허용"…중세 때도 금리 상한선 있었다

    나는 은행에 예금이 있다. 같이 사는 여자는 은행에 대출이 있다. 요즘 같은 금리 인상기에는 표정 관리를 잘해야 한다. 받는 이자와 내는 이자 사이에 은행의 수익이 있다. 내가 직접 대출해주면 은행의 수익만큼 절약할 수 있겠지만 회수 가능성이 매우 낮은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수는 없다. 그러나 금리 인상이 마냥 달갑지는 않다. 기쁨의 증가는 아장아장 소폭이지만 근심의 증가는 진격의 거인 수준인 까닭이다.구약시대, 신(神)과의 길고 지루한 협상을 마치고 내려온 모세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부터 전하겠소. 계명을 10개로 줄였소이다.” 예나 지금이나 규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는 가운데 모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간통은 못 뺐소.” 모세의 말에 사람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숨만 내쉬었다. 하여간 한동안은 그렇게 10개만 지키면 됐다. 종교는 단순하게 시작해서 복잡하게 진화한다. 계명이 새끼를 치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성경 출애굽기의 한 구절이 근거가 된다.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꾸어주면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교리에 따르면 생명 창조는 신의 영역이다. 해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 즉 돈에서 돈을 창조하는 것을 신의 업무에 대한 침해로 보고 금지했던 것이다.그러나 인간 세상에서 가난은 보편이다.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항상 있었고 중세 교회는 숨통을 틔워준다. 이번에는 신명기의 한 구절이 동원된다. “타국인에게 네가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여도 가하거니와 너의 형제에게 꾸이거든 이식을 취하지 말라.” 요렇게

  • 숫자로 읽는 세상

    수시 이월 2만7340명…전년보다 4834명↑

    전국 173개 4년제 대학의 2024학년도 수시 이월 인원은 총 2만7340명으로 집계됐다. 이투스에 따르면, 이들 대학에서 추가 모집까지 했지만 수시에서 뽑지 못해 정시로 이월한 인원이 전년 2만2506명보다 4834명(21.5%) 늘었다.이는 지난 2일 오후 7시 현재 정시모집 최종 인원을 공개한 대학을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수시 미충원 인원은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정시모집에서는 최초 발표한 인원에 수시에서 뽑지 못해 이월된 인원을 합해서 선발한다.지방대학의 수시 미충원 현상은 특히 심각했다. 수시 미충원 인원의 92.6%가 지방대학에서 발생한 데다 미충원 인원 또한 급증했다. 지방대학 112곳의 수시 미충원 인원은 2만5326명으로, 전년 2만715명보다 4611명(22.2%) 늘었다. 최초 발표한 정시모집 인원이 2만1987명이었는데 최종 모집 인원은 2.1배인 4만7313명으로 증가했다.반면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61개 대학의 수시 미충원 인원은 2014명으로, 전년 1791명보다 223명(12.4%) 늘어나는 데 그쳤다.올해 수시에서는 비수도권 대학의 경쟁률이 평균 5.5대 1로, 최근 4년 동안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거꾸로 서울 소재 대학의 평균 경쟁률은 17.8대 1로, 최근 4년 중 가장 높았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갈수록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면서 상위권 대학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있는 반면 지방대는 거점 국립대조차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했다.뉴스1

  • 커버스토리

    선거·전쟁·AI…내년 세계 경제는?

    이맘때면 학생들은 수능 성적을 들고 진학할 대학과 전공을 선택하느라, 새 학년을 준비하느라 제각기 긴장되고 설렘 가득한 연말을 보냅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올해와는 다른 새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관심을 기울여야겠죠?우리 삶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요소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 변화입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한국의 수출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제품을 얼마나 잘 팔고, 원유 같은 국제 원자재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가정 경제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전쟁 같은 극한적 충돌이 멀리 중동과 우크라이나가 아닌, 우리 코앞에서 벌어질 수도 있지요. 그런 갈등의 물밑에는 경제적 이해 충돌이 잠복해 있는 경우가 많아요.그래서 새해에 변화할 세계를 전망할 때 가장 먼저 경제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연결돼 광속으로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한 해를 내다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습니다. 예측이 잘 맞지 않으니 ‘경제 예측 무용론(無用論)’까지 나옵니다. 그러나 경제 예측은 나라살림은 물론, 기업과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가늠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기초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4·5면에서 경제 예측이 왜 그리 어렵고, 내년 세계경제는 어떤 모습을 띨지 살펴보겠습니다."경제 전망은 점성술" 혹평 적지않아수치보다 리스크 변수에 주목해야죠경제 예측 또는 전망은 나라 살림살이와 기업 경영, 가계 살림의 기준점을 제공합니다. 이를 기초로 정부와 중앙은행은 정책을 만들고 가계는 소비, 기업은 투자 계획을 세웁니다. 경제의 바로미터는 가격입니다. 이 가격 변수가 어떻게 움직일지 안다면 가정 살림도,

  • 교양 기타

    생업(生業)이 직업(職業)보다 숭고한 이유 [고두현의 아침 시편]

    생업                                윤효종로6가 횡단보도원단두루마리를 가득 실은 오토바이들이숨을 고르고 있었다.신호총이 울렸다.장애물을 요리조리 헤치며동대문시장 안 저마다의 결승선을 향해순식간에 사라졌다.좀처럼 등위를 매길 수 없었다.모두 1등이었다.* 윤효: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8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결> <얼음새꽃> <햇살방석> <참말> <배꼽> 등 출간. 편운문학상, 영랑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벌써 12월 말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 짧으면서도 강렬한 시 ‘생업’을 소개합니다.생(生)은 윤효 시인의 문학적 화두 중 하나입니다. 생이란 ‘생명’과 ‘목숨’의 비밀을 여는 열쇳말이죠. 나무로 치자면 가장 큰 가지, 풀꽃으로 치면 가장 실한 줄기가 곧 생입니다. 갑골문에서 ‘생(生)’은 땅 위로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새싹이 돋아나는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날 생(生)이고, 낳을 산(産)입니다. 이 글자는 살 활(活)과 있을 존(存)의 뜻까지 아우르지요.생업(生業)은 목숨 걸고 집중하는 일이 가운데 생업(生業)은 우리가 목숨을 영위하기 위해, 먹고살기 위해 집중하는 일입니다. 각자 맡은 일을 하는 직업(職業)과 다르죠. 윤효 시인은 분초를 다투며 원단을 실어 나르는 시장통 오토바이 짐꾼들을 보면서 ‘생업’이라는 시를 썼습니다.이 시에는 ‘숨을 고르고’ 잔뜩 긴장해 있다가 ‘땅’ 하는 총소리를 듣자마자 튀어 나가는 달리기 선수들의 속도가 응축돼 있습니다. ‘장애물을 요리조리

  • 숫자로 읽는 세상

    인천서 출생한 아이에게 18세까지 1억…인천시 인구대책 파격, 출산율 높일까

    인천시가 인천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이에게 18세까지 총 1억 원을 지원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각종 수당과 함께 교육비, 보육료, 급식비, 의료비, 교통비 등 필수적인 비용을 대부분 인천시가 감당하겠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1억 원’을 내건 곳은 인천시가 전국 최초다.유정복 인천시장은 18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1억 플러스 아이드림’ 계획을 발표했다.시는 현재 부모급여(1800만 원), 아동수당(960만 원), 첫 만남 이용권(200만 원), 초·중·고 교육비(1650만 원), 보육료·급식비(2540만 원), 임신·출산 의료비(100만 원) 등 7200만 원에 추가로 약 280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다.추가되는 금액은 △천사 지원금(840만 원) △아이 꿈 수당(1980만 원) △임산부 교통비(50만 원)로 구성된다. 천사 지원금은 아이 출생을 축하하는 인천시 출산 장려금인 ‘첫 만남 이용권’ 200만 원에 1~7세에게 매년 120만 원씩 모두 840만 원을 더해 총 1040만 원을 지급한다. 내년에 1세가 되는 2023년생부터 천사 지원금 대상이다.천사 지원금이 종료된 뒤에는 ‘아이 꿈 수당’이 이어진다. 인천시가 전국 최초로 도입하는 제도로, 만 8~18세 학령기 동안 일정 수당을 현금으로 준다.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8세가 되는 해부터 18세까지 월 15만 원씩 모두 1980만 원을 받을 수 있다.이미 태어난 아이들도 아이 꿈 수당의 지원금을 일부 받을 수 있다. 내년에 8세가 되는 2016년 출생아에게는 18세까지 매월 5만 원씩 660만 원을, 2020년생부터는 매월 10만 원씩 모두 1320만 원을 준다.임산부에게는 안정적인 출산을

  • 시사 이슈 찬반토론

    고위험 성범죄자 거주제한 '한국형 제시카법' 타당한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법 제정이 추진 중이다. 이른바 ‘한국형 제시카법’이다. 미국의 제시카법은 2005년 플로리다주에서 성범죄자에게 강간 살해된 피해자 제시카 런스퍼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법은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최저 징역 25년에 처하고, 출소 후에도 평생 위치추적장치를 부착하도록 해 학교나 공원에서 일정 거리 안에 거주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최악의 범죄자에 대한 사회적 격리형이다. 하지만 수형 생활로 징벌을 받은 자에 대한 이중 처벌인 데다 헌법이 보장하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뺏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지적이 있다. 지정 지역 주민들의 반발 문제도 있다. 그런데도 흉포해지는 성범죄자를 그냥 둘 수 없다는 여론이 높다. 한국형 제시카법을 제정해야 하나.[찬성] 잔혹 성범죄자 격리·관리 필요, 7명 중 1명 재범…불안 해소해야아동을 상대로 잔혹한 성폭력을 휘두른 범죄자들은 따로 격리할 필요가 있다. 성범죄자들이 범행을 되풀이한다는 통계도 있다. 모든 성 관련 전과범이 아니라 고위험 성폭력자를 대상으로 격리하는 것이다.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범죄로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았거나 세 차례 이상 성범죄를 저지른 자 등이 대상이다. 이 법안을 준비한 법무부에 따르면 거주제한 검토가 필요한 성폭력 범죄자는 2022년 말 기준 325명 정도다. 법무부에서 고위험자를 가리고 법원 판정을 받아 제한 대상자를 정하면 인권침해 논란도 줄어들 수 있다. 미리 법을 제정해야 2025년 말까지 출소하는 187명에 대한 격리 준비를 할 수 있다.법무부가 이 법안을 마련해 국회로 보낸 이유는 아동 및 청소년 성범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