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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멀리, 반짝이는, 다다를 수 없는···나 어릴 적 읍내에서 야산으로 올라가는 그 동네엔 담장 높은 집이 몇 채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장 때문에 안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이층집들.그 주변엔 어른 키 높이만 하거나 그보다 낮은 담을 두른 그만그만한 집들이 있었고,동네에서 조금 벗어난 야산 산비탈엔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집들이 나란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이 바로 앞마당인 격이어서,오가는 사람의 눈앞에 좁다란 마루 구석에 놓인 요강이며 누추한 살림살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집들.그 산비탈에서 내려다보면 그만그만한 집들 사이에 자리한 담장 높은 이층집은 성채처럼 오만했다. 길에 나서면 너나없이 한 마을 사람인데,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각자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느낌.뉴욕 롱아일랜드, 아주 작은 만(灣)을 사이에 두고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가 마주 보고 있다. 웨스트에그에 있는 개츠비의 궁전 같은 저택에선 파티가 자주 열린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넘쳐나는 술과 음식,화려한 옷을 입고 북적이는 사람들.사람들이 개츠비에 대해 아는 건 그가 부자라는 것,누구나 와도 되는 파티를 자주 연다는 것 정도다. 옥스퍼드 출신이라는 둥,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둥,1차 대전 때 독일군 스파이였다는 둥.사람들은 파티장에 모여 집주인의 정체에 대해 중구난방으로 쑥덕거린다. 농사꾼의 아들 제임스 개츠는 제이 개츠비라는 이름을 쓰던 장교 시절 상류층 여성 데이지를 만난다. 가난하고 야심만만한 이가 선망하는 상류층의 세계,아름다운 여성 데이지는 개츠비에게 그 세계로 가는 통로이자 그것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상징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소유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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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거기엔 꽃이 있을지도… 어쩌면 이 고백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요. 그러나 하지 않고서는,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에 관해 말하기 어렵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나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소수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의 순례자였던 학창시절부터,그의 책들을 읽어왔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운명이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지금까지도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쓴 기간은 말년의 십 년 남짓한 시간뿐이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때가 1916년,오십 세였으니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십 세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이전부터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자이자 하이쿠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00년,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해 일찍부터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가 서양문물을 접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2년 동안의,다소 충격적이며 고독했던 체류 경험을 통해 그는 일본,동양의 '문학예술론'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일본문학에 대해 흔히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소설(私小說)'입니다. 주로 자신의 체험,경험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은 소설을 뜻합니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쓴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이 '사적인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학을 '인식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생각한 그의 문학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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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

    결국에는 모두 자신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어느 날, 내가 자는 동안 지구가 태양 주위를 무진장 빨리 도는 바람에 하룻밤 새 몇 천 년이 지나갔다고 치자.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누군가 흔들어 눈을 떴더니 거기 최첨단 미래 소재의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지구가 당신만의 별이 됐다고 이렇게 계속 잠만 잘 건가요?""나만의 별이 됐다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나요?"그녀는 하늘을 가리켰다. "우리의 과학 기술은 너무나 발달해서 한 별에서 모여 살 필요가 없어요. 우주에는 별이 무한하게 많거든요. 지금은 별 하나에 한 사람씩 살아요. ""그럼 다른 사람들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만 하나요?""일단 우주선 안에 들어가서 외치세요. 저별로가! 그러면 원하는 별로 갈 수 있어요. 다시 돌아오고 싶으면 이별로가, 라고 외치세요. "우리는 가까운 별로 가서 과연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사는지 만나보기로 하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저별로가! 내가 외쳤다. 덜컹덜컹 우주선이 움직였다. 너무 빨리 가면 여행의 묘미를 잃을까봐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자 우주공간으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니까 언젠가 읽은 소설의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어떤 소설인가요?""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예요. 태어나자마자 납치돼 팔려온 여자아이 이야기예요. 이름은 라일라. 하지만 진짜 이름은 몰라요. 북아프리카에서 부모 없이 비참하게 살던 라일라는 마찬가지 처지였던 후리야 덕분에 스페인을 거쳐 파리까지 가죠. 거기서 세네갈 출신 노인 엘 하즈를 만나 이런 말을 들어요. '라일라야, 너는 아직 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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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윌리엄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농사일에 바쁜 어른들은 보이지 않았고 닭과 거위,개,돼지처럼 들에 데려가도 별 소용이 없는 가축들만 집에 그득했다. 특히 닭은 마루며 방까지 올라와 먹이를 찾다가 먹이가 없으면 화풀이를 하듯 마루와 방바닥에 똥을 갈겨놓곤 했다. 마루나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책들은 닭똥을 닦아내기 위해 한두 장씩 뜯겨나가기 일쑤였다. 그런데 늘 바닥을 굴러다니면서도 그런 기박한 운명을 면한 예외적인 책이 있었으니,하드커버 표지에 케이스까지 딸린 「명화와 함께 읽는 이야기 성서」와 「햄릿」이다. 적어도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구약성서의 이름 모를 저자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 「햄릿」은 학생이 많던 집안의 역사로 미루어 누군가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산 책이 분명했다. 한 면은 한글로,한 면은 영어로 된 이른바 '영한대역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왼쪽 면에 있는 한글로 번역된 「햄릿」만 읽게 되었는데,진도가 쑥쑥 나가는 게 다른 책과 차별되는 성취감을 주었다. 「햄릿」이 형식으로는 생소한 희곡인 데다 번역자가 영어 대역이라는 점을 의식해서 최대한 직역을 했는지 무슨 말인지 모를 게 많았다. 그렇지만 읽고 또 읽어 백 번을 읽으면 뜻은 자연히 알아지는 법이라고 누군가 말한 대로 영한대역본 「햄릿」을 읽고 또 읽어 백 번을 넘어서자 극중 등장인물의 생각과 대사,이야기의 흐름은 훤히 꿰게 되었다. 그 덕분으로 훗날 셰익스피어는 물론이고 유진 오닐,사무엘 베케트,이오네스코 같은 희곡 작가들의 작품이 실린 희곡집이 그리 낯설지 않게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현대의 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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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의 시대…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영국 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이자 정치가,과학자,변호사,저술가이다.그는 후대에도 회자되는 많은 명언 · 명구들을 남겼다.철학자와 과학자로서 베이컨이 남긴 으뜸가는 명언은 '아는 것이 힘이다'일 것이다.이것은 사물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세상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그렇다면 사물에 관한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자연을 움직이는 법칙을 발견하면 자연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되고,자연법칙을 발견하는 방법을 발견한다면 그 방법론에 따라서 자연법칙을 계속 발견해 나갈 수 있다.사물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다.사물에 관한 지식을 발견하는 방법론을 발견하면 이에 따라 사물에 대한 지식을 계속 얻을 수 있게 되고 가장 힘있는 자가 될 수 있다.베이컨은 인간에게 힘을 부여하는 지식은 '과학적 지식'을 뜻하며 우리가 과학적 지식을 추구해 나가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우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베이컨이 지적한 첫 번째 우상은 '종족의 우상'이다.'종족의 우상'은 인간성 자체에 내재해 있는 뿌리 깊은 한계를 뜻한다.인간적 관점에서 세상의 사물을 파악하려고 하는 것 자체에서 드러나는 한계다.인간 자신이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한데도 그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 한 가지 예다.인간은 자신이 결국 동물의 한 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자연의 법칙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도 한다.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두 번째 '동굴의 우상'은 각 개인이 갖고 있는 한계를 말한다.개인이 성장과정에 겪은 특수경험,특정한 형태의 교육,부모나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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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지유신 성공 뒤엔 ‘타협의 정신’ 있었다

    이태진 <서울대 한국사 명예교수> 우리나라는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는가. 한국사 전공자로서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으레 들려 오는 물음은 군주(고종)가 무능하고 관료들이 부패하지 않았던가,유교의 죄가 크지 않은가 등이다.이러한 화두는 반성의 의미를 담은 듯하지만 정답으로 삼기에는 너무 직설적일 뿐더러 일본 명치유신의 화려한 성공담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런 설명은 일제가 우리로 하여금 저들의 통치를 달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던 이른바 식민주의 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다.근래 학계 일각에서 조선왕조 체력 소진설과 함께 식민지 근대화론이 제시돼 젊은 학생들을 당황스럽게 하고 있어 더욱 경계심이 앞선다.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서양의 기계 문명,자본주의 경제,근대국가 체제 등을 수용하는 데 먼저 성공한 것은 사실이다. 청일전쟁,러일전쟁에서 중국과 러시아 등 대국들을 차례로 무너뜨림으로써 서구 열강을 놀라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이런 성공의 신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우리의 '실패'에 대한 답도 어쩌면 여기서 얻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이 출현한 후 일본도 처음에는 우리 대원군처럼 강한 외세 배격에 나섰다. 초기에는 양이(攘夷) 운동이 판을 쳤다. 막부 내에 강 · 온 양론이 대립했고,지방의 번(藩) 가운데는 서양 외교관을 살해하고 외국 선박을 공격해 말썽을 일으킨 곳도 있었다. 또 외세에 대한 투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천황과 막부 양측이 합력하는 공무(公武) 합체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서양 군대와 두어 차례 힘을 겨뤄 본 뒤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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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 환자들이 바흐를 듣는 까닭은?

    김진엽 <서울대 미학과 교수> "어렸을 때 나는 고통받는 마음을 제 연주로 치유해 주고 싶었죠. 그게 제 임무 같았어요. 음악의 아름다움을 삶의 조화에 연결시키려 했죠.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어요. 바흐의 '샤콘느'를 시스틴 성당에서 연주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악이 사라질 거라고요."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었던 예후디 메뉴인이 남긴 말이다. 메뉴인 같은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사상가들 중에도 예술이 우리의 상처 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곧잘 있다. 먼저 고대 그리스의 저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보자.아리스토텔레스는 '오이디푸스 대왕' 같은 비극을 보면 카타르시스를 얻는다고 주장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주장에 더하여 별반의 부연 설명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 분분한 의견들 중에서 수장 격은 카타르시스를 치유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은 카타르시스가 의학 용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에 착안한다. 카타르시스는 의학적 용어로는 '소화기관에 이상이 생겨 막혔을 때 관장시켜 노폐물을 배설시켜 주는 치료'를 의미한다. 물리적 음식물만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 감정도 가슴 속에 응어리지면 한이 되어 병을 불러일으킨다. 응어리진 한은 풀어 주어야 한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 슬픔과 고통에 빠진 비극의 주인공을 바라보며 펑펑 울다 보면,관람객의 가슴 속에 응어리진 한도 씻겨 내려가지 않을까. 그리하여 마음속이 정화되지 않을까. 실제로 비극을 보고 흘리는 눈물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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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에게 正義란 ‘공정한 성과분배·자율보장’

    김형철 <연세대 철학과 교수> “It’s not fair(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미국 시카고 유학시절 유치원에 다녀온 딸은 동생이 사탕을 먹고 있는 것을 보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소리쳤다. 평소 자기한테는 단것을 엄격히 금지했는데 동생한테만 허용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속상했던 모양이다. 철학자들 가운데는 공평한 것이 ‘정의’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딸에게 비친 나는 정의롭지 못한 아빠였다. 그런데 공평하면 다 정의로운 것일까. 정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이래로 정의로움에 대한 논의를 많이 해 왔다. 플라톤은 정의를 ‘각자에 합당한 몫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도자는 지혜,전사 계급은 용기,근로자 계급은 근면의 덕을 행사하면,종합적인 화합의 결과로 정의가 국가에 깃든다고 보았다. 각 계급은 각자의 몫이 불평등한 것에 대하여 불평해서는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의,특히 분배 정의를 ‘평등한 자를 평등하게 대우해 주고,불평등한 자를 불평등하게 대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등한 자와 불평등한 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이 정의는 ‘형식적 정의’라고 불린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리스토텔레스도 무조건적인 평등이 정의는 아니라고 봤다는 것이다. 하버드대학 철학 교수였던 존 롤스(John Rawls·1921~2002)는 평등과 자유 사이의 갈등 관계에서 빚어지는 모순을 해결하려고 평생 ‘정의’의 문제 하나만을 탐구했다. 평등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첫째는 결과의 평등이다. 즉 모두가 동일한 몫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기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