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경제 민주화 3년, 무엇을 남겼나…손발 묶인 국내 대기업…외국기업이 시장 장악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기업 활동을 옥죄는 과잉 규제를 ‘해악’으로 규정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는 소상공인부터 중소기업 할 것 없이 모든 경제주체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경제시장을 반드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며 “하지만 이게(경제민주화 법안이) 과잉이 돼 포퓰리즘 내지는 이념적으로까지 가서 기업들을 옥죄는 것은 정말로 해악”이라고 밝혔다. -11월26일 연합뉴스

우리 사회에 경제민주화 열풍이 거세게 불기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이 됐다. 이명박 정부 후반인 2011년부터 본격화된 경제민주화는 우리 경제를 얼마나 건실하고 경쟁력있게 만들었을까? 경제민주화의 목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자영업자, 농어민 등도 발전의 과실을 나눠갖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역설적이게도 경제민주화가 경제적 약자를 돕는 게 아니라 피해를 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경제민주화 법안 '과잉 입법'

경제민주화는 단순하게 얘기하면 대기업의 횡포를 막아 모두가 잘 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 3년동안 여러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이 이미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고 있으며 몇몇 법률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크게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 금지 △대기업의 사업 확장 제한 △대기업 총수 개인의 권한 규제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불공정 행위 금지와 관련해선 △부당하게 하청업체의 납품 가격을 깎거나 발주를 취소할 경우 손해액의 최고 3배를 물도록 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납품업체에 불공정한 특약 강요를 막은 불공정 특약 금지 △중소기업 협동조합에 납품 단가 조정 권한 부여 등이 시행되고 있다. 불공정행위에 대해 고객 한 사람이 승소해도 전체 고객이 보상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도 논의 중이다.

대기업들의 사업 확장을 제한하는 조치도 취해졌다. 자전거 빵집 등 100개 품목을 중소기업(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 대기업들이 사업을 하지 못하도록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이마트 등 대형마트들이 월 2회 일요일 휴무토록 의무화했다. 대기업의 면세점 개점을 제한하는 법도 생겼다. 대기업들이 서로 자본을 대 계열사를 늘리는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이 논의 중이며, 삼성생명 등 대기업 계열 금융사들이 가진 계열사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대기업 총수 개인에 대한 규제로는 일감 몰아주기 방지 조항이 새로 마련됐다. 대기업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일정 비율 이상인 계열사와 계열사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할 경우 거액의 상속증여세를 물리도록 했다. 또 상법을 개정해 보유 자산이 2조원 이상인 대기업이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대주주가 아무리 많은 지분을 가져도 3%에만 의결권을 주는 ‘3%룰’ 도입도 추진 중이다.

# 中企도 "경제민주화 이젠 그만"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은 대기업들의 횡포를 어느 정도 막는 역할을 했다. 지난 5월 남양유업 사태가 대표적이다. 남양유업 본사 직원이 대리점을 상대로 무리하게 제품을 떠넘기면서 불거진 이 사건은 ‘갑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이어지면서 대기업들이 가맹점 등을 대상으로 해온 부당한 영업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경제민주화 법안은 여러 측면에서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경제적 약자를 도우려는 법이 오히려 경제적 약자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마트들의 월 2회 일요일 휴무가 의무화되면서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민·어민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 파트타임 잡 등 일자리도 줄었다. 콩 재배 농가는 두부가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판로가 막히고 가격이 폭락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일감 몰아주기 과세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도입했지만 오히려 중소기업이 아우성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첫 정기신고 결과 과세 대상 법인 6089곳 중 98.5%가 중소·중견기업이었다.

# 국내 기업 역차별에'한숨'

올초 자전거 소매업이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된 이후 국내 대기업의 자전거 매장은 15개에서 12개로 3개 줄었다. 하지만 대만의 자이언트와 미국 스페셜라이즈드는 올 들어서만 각각 4곳, 6곳씩 매장을 늘렸다. 두 회사 모두 연간 매출액이 1조원이 넘는 대기업이지만 외국계 기업이라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3월부터 공공기관 구내식당 운영에 대기업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자 외국계 업체가 구내식당 운영권을 싹쓸이했다. 미 급식업체 아라코는 신용보증기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술보증기금 정부세종청사 등의 구내식당 운영권을 연달아 따냈다. 아라코의 지분 100%를 가진 미 아라마크는 연 매출 15조원 규모의 세계 3위 급식업체다. 공항 면세점 입찰에 대기업의 참여를 제한하자 세계 면세점업계 2위인 듀프리가 김해공항 면세점 운영권을 따내는 상황도 벌어졌다.

LED조명을 중기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들의 손발을 묶자 국내 시장은 오스람, 필립스 등 외국 업체들의 안방이 됐다. 국가기관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자 외국계 IT업체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계가 지분을 갖고 있는 쌍용정보통신은 올해만 20건이 넘는 공공사업을 따냈다.

정부가 국내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동안 일본계 유통업체가 반사이익이다. 트라이얼코리아는 2011년 7곳이던 매장 수를 올해 12개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매출도 2010년 400억원에서 2012년 607억원으로 2년 새 52% 늘었다.

# 땅에 떨어진 기업가정신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외에도 기업 경영을 옥죄는 일들이 수두룩하다. 대법원엔 통상임금과 관련한 소송이 걸려있다. 통상임금은 각종 수당과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다. 일부 기업 노조의 주장대로 상여금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기업들은 1년에 최대 38조원(경영자총협회 추산)의 추가 부담이 생긴다.

또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2016년부터는 정년을 60세로 늘려야 한다. 현재 주당 16시간까지 허용하는 휴일근로를 없애 주당 근로시간을 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축소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근로자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기업으로선 죽을 맛이다. 노동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치솟기 때문이다.

화학물질 관리 강화를 위해 마련된 화학물질등록평가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은 석유화학 공장 등에서 사고가 일어날 경우 무려 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내도록 해 기업인들의 원성을 낳고 있다.

국세청은 모자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기업들을 저인망식으로 세무조사하고 있으며, 주요 대기업 지분을 대거 갖고 있는 국민연금은 기업 경영에 적극 참여를 선언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에 기업인 200여명을 증인으로 불러놓고 얼토당토 않은 질문을 해댔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경제 민주화 3년, 무엇을 남겼나…손발 묶인 국내 대기업…외국기업이 시장 장악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 순위는 2012년 현재 144개국 중 19위이지만 정부규제 부담, 규제개선 측면 등에선 각각 117위, 97위로 최하위권이다.

시장경제의 핵심은 고난을 헤치고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기업가정신을 북돋는 것이다. 기업인을 죄인시하는 이런 풍조에서 어떻게 혁신이 나오고 ‘창조경제’가 될 것인가.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