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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피로 "삼성-애플소송·남-북 긴장도 협상으로 풀 수 있어"

    “삼성과 애플이 소송전을 택한 건 마치 인질극 상황에서 경찰이 특공대를 투입한 마지막 카드를 쓴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양쪽이 한치의 양보도 없어 보이지만, 협상으로 풀고자 나선다면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겁니다.”협상학 전문가로 꼽히는 대니얼 샤피로 하버드대 협상학 교수는 24일 글로벌 인재포럼에서 ‘설득하는 인재, 세상을 바꾸는 협상’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마친 뒤 기자와 만나 ‘협상의 힘’을 재차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샤피로 교수는 “소송을 하면 삼성이든 애플이든 결과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며 “비용 측면에서도 소송보다 협상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을 개인·기업·국가 등의 협상전략에 응용해 주목받아 온 인물로 《감성으로 설득하라》 등의 저서로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교육 투자 통해 협상력 높여야”샤피로 교수는 “세계 모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협상 기술과 갈등 해소 능력을 교육한다면 세상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협상력을 인재의 중요한 역량으로 꼽았다. 그는 “협상을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데에는 ‘훈련에 훈련, 또 훈련’밖에 없다”며 “정부가 교육과정에 월 1회 단 2시간씩만 ‘협상학’을 개설해도 청소년들이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폭이 눈에 띄게 넓어질 것”이라고 제안했다.샤피로 교수는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 대기업과 중국, 페루, 마케도니아 등의 국가 정치인들에게 협상 실무를 자문해왔으며 세계경제포럼(WEF)과 공동으로 교육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그는 협상의 중요성을 강의할 때 한국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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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끝>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참, 찬란한 신세계" 아무도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도 모르니까. 그러나 한편 모두가 아는 것에 대해 말하기도 쉽지는 않다. 모두 아니까. 모두 아는 것에 대해 감히 어떤 말을 보탤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지금 고유명사이면서 보통명사이고 나아가 고전의 대명사인 셰익스피어에 대해 말하려 한다. 그의 마지막 작품 『템페스트』를 한 번 읽었더니 또 읽고 싶어졌고 하여 또 읽었더니 뭔가 말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좋은 노래를 듣고 또 듣다보면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싶어지는 것처럼. 템페스트는 폭풍이라는 뜻이다.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을 만난 배가 난파당한 후 몇몇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섬에 다다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폭풍은 사실 주인공 푸로스퍼로가 마술로 빚어낸 것이다. 그는 밀라노의 대공이었으나 마술 연마에만 힘쓰다가 동생 앤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계략에 의해 쫓겨난 인물이다. 어린 딸 미랜더와 함께 망망대해에 버려진 그는 충신의 도움으로 죽지 않고 외딴 섬에 당도하여, 그곳에 살던 괴물 캘리밴과 공기의 정령 에어리얼을 하인으로 삼고 살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앤토니오와 알론조 일행이 탄 배가 그곳 근해를 지나가는 것을 보고 복수를 위해 폭풍을 일으켜 그들을 섬으로 유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론조의 아들 퍼디넌드와 자신의 딸 미랜더가 사랑에 빠지자 모두를 용서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마술 책을 버린다.푸로스퍼로는 아마도 셰익스피어의 분신일 것이다. 그가 전 생애를 통해 갈고닦았던 마술을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는 것처럼 평생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해온 셰익스피어도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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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존 밀턴'실낙원'

    무너지는 사랑의 낙원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낙원의 원주민들이었다. 그곳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제외한 그 어떤 법이나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가난도 없고 겨울도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는 완전한 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낙원을 잃게 된다. 유일한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형벌은 가혹했다. 낙원에서 쫓아냈고, 죽음을 예감하는 유한한 존재로 전락시켰으며 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내렸다. 그것은 그들이 범한 단 하나의 죄였지만 그 죄는 인류 모두가 유산으로 물려받아야만 하는 원죄가 되고 말았다.나는 가끔 물끄러미 앉아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낙원에서 그들의 삶은 완전했다. 알몸의 상태로 부끄러움 없이 서로를 사랑했고, 부드럽고 따뜻한 풀밭에 누워 불면 없이 잠들었으며, 한 점의 우울감도 없이 눈을 떴다. 그들은 악을 알지 못했기에 죄의식과 죄책감을 몰랐고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기에 치욕과 비참 같은 슬픈 감정도 느낄 줄 몰랐다. 하지만 낙원을 잃은 후부터 그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비참했을 것이고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린 박탈감은 그들로 하여금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존 밀턴이 지은 『실낙원』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인간의 원죄와 구원의 가능성을 다룬 일종의 종교 서사시다. 표면적인 서사는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태초 이전과 종말 이후를, 공간적으로 천국과 지옥, 낙원과 실낙원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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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슬프고…그래서 더 장엄한…어렸을 때 큰집에는 어린이 세계명작동화 전집이 있었다. 큰집보다 형편이 좋지 못했던 우리 집에서는 전집을 살 수가 없어서 나는 돈이 생길 때마다 한 권 한 권씩 사 모아야 했는데, 큰집에 갈 때마다 내 전의가 불타올랐다. 계림문고판 어린이 세계명작전집. 그 책들을 전부 다 갖고 싶어 애가 닳았다.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욕망도 전의도 충족되지는 못했으나, 책 한 권을 새로 갖게 될 때마다 그 책들을 순서대로 배열하는 즐거움이 짜릿했다. 가나다 순서로도 배열해보고, 전집 번호대로 배열해보기도 하고, 내가 정한 명작 순위로도 배열해보았다. 『폭풍의 언덕』은 언제나 내가 정한 명작 순위의 1위에 있었다. 어렸을 때 내가 읽었던 계림문고판 『폭풍의 언덕』은 어린이들이 읽기 쉽게 원작을 재구성해놓은 책이었다. 소설은 캐서린의 아버지가 히스클리프를 데리고 오던 날로부터 시작되어 히스클리프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그러니까 이 광대한 이야기의 전달자인 록우드나 엘렌 딘은 나오지도 않았거나 나와도 아주 슬쩍 나왔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 책의 완역본을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도대체 내가 뭘 읽었던 거야? 당혹감과 노여움과 부끄러움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감정이었다. 나는 그 계림문고판 『폭풍의 언덕』을 잊고 싶었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나는 지금도 『폭풍의 언덕』의 한 장면을 떠올리라고 하면 계림문고의 삽화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히스클리프가 창가에 서서 이미 죽은 캐서린에게 제발 들어와달라고 울부짖는 장면의 기억은 아직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열두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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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엘프리데 옐리네크 '피아노 치는 여자'

    어머니의 욕망에 갇힌…그래서 자아가 상실된 이십대의 어느 날, 이 책을 읽고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지고, 입속에는 침묵이 가득 찼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고, 나 자신조차 무서워 들여다본 적 없는 스스로의 심연을 보아버린 느낌이었다. 어떤 작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시험이 된다. 감당할 힘 없이 진실을 마주했다가, 우리는 자멸해버릴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미쳐버린 사람들도 알고 있다. 경고하건대 이 소설은 함부로 첫 장을 넘길 책이 아니다. 에리카. 그녀는 오스트리아 빈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여선생이다. 서른이 넘은 그녀는 친구도 애인도 없이, 노모와 함께 살고 있다. 노모는 일과표에 따라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규제하고, 통제한다. 어머니는 딸을 위대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왔다. 에리카는 이른 유년 시절부터 피아노의 악보체계에 묶여 있었다. “그 다섯 개의 선은 그녀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그녀를 지배해왔다.” 에리카는 피아노 외의 어떤 충동에도 휘둘리지 않도록 훈육받았으며, 어머니의 우상으로 떠받들어져 살아왔다. 정신병을 앓던 아버지는 살아 있을 때도 시체와 다름없었고, 끝내 죽어버림으로써 모녀에게 가난과 공허를 남겼다. 어머니와 딸은 삶을 예술로써 보상받으려 했으나, 결국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단둘이 살아온 모녀 앞에 뒤늦게 젊은 남자가 나타난다. 젊은 미남자인 클레머는 자신만만하게 이 병적으로 왜곡되고, 이상에만 매달려 있고, 잘못 떠받들어진 정신에만 의지해 사는 괴상한 지성인 에리카를 변화시키려 한다. 그것은 오래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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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사샤 소콜로프 '바보들을 위한 학교'

    우리의 어떤 부분은 분명 다른 사람입니다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비차’이다. 작가 사샤 소콜로프의 친구이자 이웃인 지적장애아 ‘비차 플랴스킨’. 그 이름을 굳이 외울 필요는 없다.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1.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소. 바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든 게 되어버리는 세상 또는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는 세상. 이 문장에 대해선 누구도 명백하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걸 바랐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 무엇이든 되지 않을 자유. 우선 자유라는 단어를 아주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비차가 그 무엇보다 자유를 선택했다니까 하는 말이다. 2. 당신은 완전한 하나인가? ‘비차’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완전한 하나인가? 이런 질문은 너무 불편한데. 나는 적잖이 바보노릇을 해보았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정색하며 ‘당연히 완전한 하나야’라고 대답해봤자 소용없다. 거짓말하지 마. 언제나 비차는 나를 들들 볶는다. 비차의 목소리를 빌려 헛기침까지 해가며 대답했다. 그래, 맞아. 완전한 하나가 아니지. 정말로 어색하고 부끄럽고 그럼에도 퍽 쉬운 대답이 아닐 수 없었다. 사실이니까. “날짜는 누군가 생각나면 오는 거야. 때론 한번에 여러 날이 곧바로 오기도 하지. 혹은 오랫동안 하루도 오지 않는 때도 있어. 그때는 너는 공허 속에서 살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심하게 아프게 돼.” 문득 내가 지금 시간 밖에 있는지 시간 안에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날짜 없는 시간에 대해서 아주 진지한 자세로 골몰하기도 했다. 관자놀이를 쿡쿡 찔러가며 고민한 결과, 그게 바로 비차의 시간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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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 L. 닥터로 '래그타임'

    래그타임은 말이 없지만…1897년부터 유행한 래그타임은 훗날 재즈의 원류가 되기도 한다. 소설을 읽기 전에 음악 포털에서 래그타임을 검색해보았다. 내용이 없다. 지금이라는 시간과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래그타임을 찾긴 쉽지 않았다. 검색창에 보이는 표면적 정보로는 그 음악의 구체적 성질은 물론이고, 단순한 감각조차 일깨우기 어려웠다. 동영상을 찾는다. 새하얀 소매에서 뻗어 나온 시커먼 두 손이 하얗고 검은 건반 위를 뛰어다닌다. 버퍼링이 일어나고, 음악이 멈춘다. 래그타임은 분명히 음악이라고 했지만, 나는 음악 없이 책장을 펼치기로 한다. 때는 니그로의 현란한 피아노 연주가 공기중에 흩뿌려지던, 1902년. 그곳은 미국, 뉴욕 주 뉴로셸, 브로드뷰 애비뉴. 1900년, 고집 센 청교도 노인처럼 미국은 자신의 속내를 금방 드러내지 않았다. 실제 인물이라고 믿기엔 너무나 터무니없는 인간들이 터무니없는 짓을 자연스럽게 해냈다. 그것을 우리는 ‘진보 시대’라고 부른다. 그 기간 동안 인류는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었고, 특정 인종에 대한 대대적이고도 과학적인 학살이 벌어졌으며, 핵무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책을 되도록 천천히 읽어야 했다. 그곳에 섞여 있는 인간의 냄새가 독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진보하는 인간에게는 살 타는 냄새가 난다. 코를 벌렁거리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기가 내 쪽으로만 왔다. 환기되지 않는 독서의 시작.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아메리카 땅을 밟은 청교도 이민자들과, 그 후로 오랫동안 배에 개나 닭처럼 실려 아메리카 땅에 들어온 흑인들, 대기근을 피해서 대서양을 건넌 유럽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몸을 섞고 부비고 있었다. 몸과 몸이 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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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 셸리'프랑켄슈타인'

    섬약한 당신많은 괴물들이 있었다. 신이 타락했거나, 저주를 받아 잘못 태어났거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보니 괴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거나, 혹은 복수심에 불타 스스로 괴물이 되거나. 그러나 이 괴물은 여러모로 다르다. 그는 역사상 가장 서정적이고 섬약한 괴물이며, 탄생한 지 200년이 지나도록 이름 하나 얻지 못해, 무어라 불러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비운의 존재이기 때문이다.촉망받던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전까지 그의 인생은 정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점잖은 귀족 집안의 자제인 프랑켄슈타인에게는 일찌감치 정해놓은 아름다운 약혼녀도 있었다. 그의 내면에 실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다. 죽고 사는 것이 신의 영역이었던 때, 만연한 죽음만큼 자연스러운 것도 없던 시절에, 젊은 천재는 생명체의 탄생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이 이야기를 막 탄생시킬 무렵,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에 불과했다. 조숙했던 그녀는 17세에 아버지의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재능 있는 시인이었던 퍼시는 유부남이었다. 둘의 불장난 앞에 놓인 것은 8년간의 긴 유랑과 가난의 그림자였다. 도피 이듬해, 메리 셸리는 아이를 낳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녀가 전 유럽 대륙을 지나며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뼈대에 살이 붙어갔을 것이다. 그사이 셋째 딸을 낳았으나 이듬해 잃었다. 메리 셸리는 십대 후반에 사로잡힌 불같은 감정 이후, 거의 모든 것을 차례로 잃었다. 그녀의 연보는 주인공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공포영화와 크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