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과 NPL 시장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노다지냐, 쪽박이냐'…부실채권 시장의 두얼굴
동양그룹 사태 등 대기업 부실 증가로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3분기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1.80%로 전분기(1.73%)보다 0.07%포인트 상승했다고 7일 밝혔다. 부실채권 규모도 25조8000억원으로 9000억원 늘었다. - 11월8일 한국경제신문

# 부실채권이란?


부실채권(不實債券)이란 말 그대로 부실화된 채권이다. 금융회사가 빌려준 대출 가운데 회수가 불확실한 돈이다. 금융사의 대출은 이자와 원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는가를 기준으로 △정상(normal) △요주의(precautionary) △고정(substandard) △회수의문(doubtful) △추정손실(estimated loss) 등 다섯 단계로 분류된다. 정상은 이자 납입과 원금 상환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며, 요주의는 주의가 필요한 대출금으로 짧은 기간(1개월 이상 3개월 미만) 연체되는 경우다. 고정은 3개월 이상 연체되는 것으로 손해를 입을 가능성은 있지만 대출금을 담보가액으로 상쇄할 수 있는 경우며, 회수의문은 피해 정도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담보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다. 추정손실은 담보가 턱없이 부족해 회수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여신(대출)이다. 부실채권은 이 가운데 정상과 요주의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즉 고정이하 여신을 뜻하는 것이다.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전체 대출 중 부실대출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은행이 가진 자산이 얼마나 건전한지를 보여준다.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낮을수록 부실화된 채권이 적어 은행이 건전하다는 뜻이다. 이에 비해 은행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은 대출을 포함해 은행이 가진 전체 자산(위험가중치를 적용해 계산) 대비 자기자본비율로, 은행 경영이 위험해졌을 때 대응할 수 있는 자기돈(자기자본)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높을수록 은행이 튼튼하다는 얘기가 된다. 국제적인 은행 감독 기준을 정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바젤위원회·BCBS)는 BIS 자기자본비율 8%를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건전한 은행, 미만이면 부실한 은행으로 평가한다.

# 늘어나는 은행 부실채권

은행의 부실채권은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가 허술하거나 △경제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기업이나 소비자들의 형편이 어려워질 때 늘어나게 된다. 요즘 국내 은행들의 부실채권이 증가하는 것은 경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말 부실채권 규모는 25조8000억원으로 6월 말보다 9000억원 늘었다. 2011년 1분기 말(26조2000억원) 이후 2년6개월 만에 가장 많은 규모다. 전체 대출에서 부실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1.80%로 6월 말보다 0.07%포인트 상승했다. 전체 부실채권 중 기업대출과 관련된 부실이 85.8%(22조1000억원)며 부실 가계대출 규모는 13.5%(3조5000억원)다.

은행별로는 특히 국책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정부 산하 공공기관(예금보험공사)이 대주주인 우리은행의 부실이 급증했다. 3월 말 1조7000억원 규모였던 산업은행 부실채권은 9월 말 3조2000억원으로 6개월 새 88.2% 급증했다. 우리은행은 부실채권 규모가 가장 크다. 9월 말 기준 5조3000억원으로 2위인 KB국민은행(3조9000억원)보다 1조4000억원이나 많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이들 두 은행이 정부 소유라는 이유로 위험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산은 측은 “부실기업을 뒷받침하고 회생을 지원하는 것은 국책은행의 책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부실채권이 쌓이면 은행들은 손해에 대비해 충당금을 쌓아둬야 한다. 충당금 비율은 채권이 얼마나 부실화됐는지에 따라 다른데 최고 부실채권 금액의 100%다.

# 커지는 NPL 시장

은행들은 부실채권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대손상각 처리하거나 시장에 내다 판다. 대손상각은 받지 못하는 대출로 회계를 처리하는 것이다. 시장에 매각할 경우 보통 대출금보다 낮은 가격에 채권을 팔거나 담보물을 경매에 내놔 원리금 일부를 회수한다. 이처럼 부실채권이 거래되는 시장이 부실채권(NPL) 시장이다. NPL(Non Performing Loan)이란 무수익 여신이란 뜻이다. 부실채권은 은행들엔 ‘독’이지만 또다른 쪽에선 대박을 노릴 수 있는 ‘약’인 것은 바로 부실채권 시장의 존재 덕분이다. 좋은 가격에 부실채권을 사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으면 큰 돈을 벌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산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감정가 2억원의 아파트를 담보로 A씨가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았다가 3개월 이상 연체하면 부실채권이 된다. 은행은 이 부실채권을 경매에 부치거나 부실채권 전문 처리회사에 싼 값에 판다. 부실채권 회사는 부실채권만을 전문으로 모아 처리하는 ‘청소부(배드 뱅크)’ 또는 ‘금융 고물상’ 역할을 한다. 개인이 부실채권 처리회사와 직접 거래하거나 경매정보회사 등을 통해 이 채권을 9000만원에 샀다고 하자. 그러면 감정가는 2억원이니 적지 않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땅이나 건물 같은 담보가 없는 무담보채권은 담보채권보다 더 싸게 팔린다. 부실채권 전문 처리회사나 신용정보회사 등이 이 무담보채권을 사 추심을 통해 대출금을 회수하게 된다. 무담보채권을 사 이익을 낼 수 있는지 여부는 은행으로부터 얼마나 싼 가격에 매입했는지, 추심은 어느 정도나 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가령 무담보채권 100억원(총 100건)을 90% 할인해 10억원에 샀는데 20건 20억원을 추심하는 데 성공했다면 다른 비용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10억원이 이익이다.

부실채권 시장은 특히 경제가 위기를 겪다 급속도로 회복하는 경우 ‘노다지 시장’이 되기도 한다. 국내에 부실채권 시장이 형성된 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다. 1999년 말 기준 시중은행 부실채권 규모는 61조원, 전체 대출채권 중 부실채권 비율은 12%에 달했다. 당시 국내에서 부실채권을 사들여 큰 돈을 번 곳이 바로 미국계 자본인 론스타와 뉴브리지캐피털 등이다. 론스타는 1998년 성업공사(현 자산관리공사)에서 부실채권 5464억원어치를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 카드대란 시기까지 약 5조원 이상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두 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다.

현재는 자산관리공사(캠코)와 유암코 등이 부실채권 관리 노하우를 쌓아 전문업체로 성장한 상태다. 캠코는 부실채권 관리 노하우를 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부실채권 업계 1위 유암코의 자기자본 대비 이익률이 14.4%로 시중은행 평균(6.17%)의 배가 넘을 정도다.

2000년대 들어 소강상태였던 부실채권 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꿈틀거리더니 올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다. 웅진, STX, 동양 등 대기업이 잇따라 구조조정에 들어가면서 9월 말 현재 25조8000억원의 부실채권이 발생했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부동산이나 기계를 담보로 대출받은 중소기업 중 돈을 못 갚는 회사도 크게 늘었다.

이처럼 부실채권 시장이 다시 형성되면서 이 시장에 기웃되는 금융사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달 매물로 나온 부실채권 전문회사 ‘우리F&I’ 인수전에는 KB금융지주, 한국증권금융, 사모펀드 IMM PE 등 8곳이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노다지냐, 쪽박이냐'…부실채권 시장의 두얼굴
출사표를 던졌다. 외환은행은 계열사 외환캐피탈을 부실채권 처리회사로 업종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금융회사는 물론이고 사모펀드 개인투자자까지 부실채권 투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부실채권 시장은 기본적으로 ‘기관들의 리그’다. 개인이 참여하기엔 너무 덩치가 크다는 얘기다. 일부 신용정보회사는 대부업체나 저축은행의 무담보 부실채권을 원금의 5%도 안 되는 값에 사들인 뒤 ‘끈질긴 추심’으로 투자금을 회수해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