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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프래그머티즘(중)-제임스의 실용주의적 진리론

    역사적으로 인간은 외적인 힘이나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정신으로 진리를 찾고자 했다. 왜냐 하면 진리는 단순히 이론상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에 좌표를 제공하고 사회를 바람직한 방 향으로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리를 찾는 일은 어느 시대나 사회를 막론하고 인간답 게 살기를 원하는 모든 인간에게 절박하고도 공통된 과제였다퍼스가 만들고 제임스가 꽃피워19세기 말 미국에서 등장한 실용주의 철학, 프래그머티즘 역시 행동의 관점에서 진리와 지식을 새로 해석한 철학이다. 실용주의는 간단히 말하면 ‘지식과 진리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다. 여기에 핵심적인 공헌을 한 철학자가 윌리엄 제임스다. 그는 뉴햄프셔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에는 정식 학교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아버지와 많은 여행을 하며 견문을 넓혔다. 10대 후반에 하버드대에 입학해 화학, 해부학, 생물학, 의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뒤 하버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위대한 제임스가 하버드대에서 34년이나 가르쳤기 때문에 19세기 말, 20세기 초 하버드대가 위대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실용주의 철학을 대중화하기 위해 일상적인 용어를 즐겨 쓰고, 나아가 다양한 비유나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자신의 주장을 풍부하게 표현했다. 퍼스가 실용주의를 제창해 씨를 뿌렸다면 제임스는 실용주의를 보급해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소의 발자국을 따라가니제임스의 실용주의에서 핵심 사상은 그의 실용적 진리관이다. 그에 이르면 진리란 어떤 실제적인 문제의 해결이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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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래그머티즘(상)-미국의 실용주의

    실용주의의 창시자 퍼스프래그머티즘은 행위, 실천 등을 뜻하는 그리스어 ‘프래그마(pragma)’에서 유래하였다. 영어의 실천(practice), 실제적(practical)이라는 말도 이와 관련이 있다. 프래그마라는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프래그머티즘의 핵심 사상은 ‘유용한 것이 진리’라는 말에 압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말하자면 진리는 유용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용성이란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어떤 이론이 진리를 갖고 있는지는 이론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이 만들어낸 행위의 결과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보는 입장이다.프래그머티즘의 태동은 19세기 말 보스턴에서 형이상학에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역설적이게도 ‘형이상학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진 데서 비롯되었다. 이 철학 창시자인 퍼스(사진)가 프래그머티즘이라는 이름으로 이 모임에서 논의됐던 것들을 정리해서 발표했고, 이것이 프래그머티즘이 철학사에 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퍼스는 이론이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험의 조작을 규정하고 지정하는 동시에 그 결과에 의해서 실증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실험 행위가 증명하지 못하는 관념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퍼스의 사상을 하나의 철학 이론으로 발전시킨 윌리엄 제임스는 독일 관념론에 반대하여 진리의 근거를 실제적 효과에 둠으로써 형이상학적인 논의를 종결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가장 쓸모 있는 인식을 참된 인식이라 보고, 어떤 사물이 얼마만큼의 유용성을 갖는지 또는 어떤 성과를 일으키는지가 그 진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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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는 '과학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자본주의 몰락을 말했지만 현실은 반대였죠"

    공상적 사회주의?마르크스 이전에도 생시몽, 푸리에, 오언 같은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초기 자본주의의 해악이나 모순을 비판하고 유토피아를 건설하려 노력하였지만, 마르크스는 이와 같은 기존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을 구체적인 사회 개혁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상적 사회주의’라고 비판하고, 사상적 동지인 엥겔스와 함께 체계적이고 실천적인 ‘과학적 사회주의’를 제시하였다. 공상적 사회주의와 달리,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의 메커니즘과 구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모순을 노동자 계급의 계급적 자각과 투쟁에 의해 사회주의로 전환시킬 필요성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였다.노동자 계급을 단순히 구제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공상적 사회주의들과 달리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을 사회주의 실현의 주체로 보았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이 사회 변혁의 주체인 노동자 계급에게 자본주의 사회의 내적 모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과 노동자 계급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노동자 주인·역사적 유물론마르크스가 사회 변혁의 주체인 노동자 계급에 제공하려 한 대표적 무기는 역사적 유물론이었다. 역사적 유물론을 통하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밝힘과 동시에 그것은 왜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가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역사적 유물론에서 가장 유념해서 살펴볼 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요인을,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요인이 아니라 경제적인 요인에서 찾는 마르크스의 시각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중요한 동력은 어떤 사회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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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마르크스(중): 소외론

    철학자의 역할은 “세계 변화”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극렬하게 반대하며 변혁시키려 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소외’는 마르크스의 철학 사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관통하는 개념이다. 마르크스는 소외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소외의 원인으로서 사유 재산 제도를 비판하고, 이것에 근거해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며, 이것을 정당화하는 당시 자본주의 경제학을 비판했다.마르크스는 인간의 본질을 노동에서 찾고 있다. 노동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말은 인간은 노동을 함으로써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변화시키며 동시에 자기를 실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창조적, 생산적, 예술적, 미적인 존재로서 자신들의 생산물 속에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창조적 욕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그런 노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마르크스가 생각한 ‘노동’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겉으로 보면 고전 경제학자들의 말처럼 임금과 노동은 경쟁에 의해 결정되므로 공정성 측면에서 양측이 평등한 조건 아래 공정한 계약을 한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오로지 임금에 의해 먹고사는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자본가가 제시하는 노동 조건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한다. “노동자의 노동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적이며 따라서 강제 노동이다. 그러므로 그의 노동은 그의 욕망을 충족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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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마르크스(상): 철학의 역할은 무엇인가?

    카를 마르크스는 반(反)자본주의를 극명하게 천명한 철학자이자 혁명가다. 그는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에 의하여 붕괴된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 달리 1989년 베를린 장벽붕괴와 함께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한 마르크스의 철학이 박물관이나 골동품 창고에 들어가야 할 처지가 됐다. 헤겔을 접한 마르크스아닌 게 아니라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명저 《역사의 종언》에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냉전이라는 기간에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의 체제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만큼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이념과 철학 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이제 냉전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 시장이 되고, 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21세기에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예리한 비판자인 마르크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경고로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고 건재할 수 있도록 한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전공인 법학보다는 주로 문학과 역사,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의 전공인 법학은 사회 변화의 근본적인 원동력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마르크스에게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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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쇼펜하우어 철학이 염세주의적 경향을 띤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부유한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지만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석가모니가 젊었을 적에 병든 사람이나 노인,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랬던 것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지냈다”는 말에서 보듯이 세상에 대한 그의 혐오가 그를 염세주의 철학자로 이끈 듯하다.쇼펜하우어는 철저하게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신봉했던 헤겔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헤겔과 달리 인간의 본질을 이성이 아니라 의지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현대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철학은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집약돼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칸트 철학의 ‘물자체’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믿었다.칸트에 대한 대답 ‘의지’칸트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적 세계, 즉 표상적 세계의 배후에는 ‘물자체’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표상의 세계 배후에 있는 물자체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표상’이란 철학자들이 쓰는 어려운 말이지만 쉽게 말하면 세상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드러난 표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의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진정한 본질은 의지이며,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맹목적인 삶의 의지란 ‘살고 싶고, 번식하고 싶은 아주 본능적인 욕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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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헤겔 (하): 인정투쟁

    이솝 우화의 ‘욕심 많은 개’그러나 기존의 관점과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이 우화는 단지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교훈과는 별도의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다리를 건너던 개는 물속에 비친 모습을 보고 왜 짖었을까? 그것은 개가 물속에 비친 그것이 자신인 줄 몰랐기 때문이다. 제 것을 보고 욕심을 내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우화에 나오는 개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기보다 물속에 비친 그것이 자신임을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짖었고 그로 인하여 물고 있던 고기를 놓친 것이다.‘내’가 ‘나’라는 것을 아는 것을 어렵게 표현하여 ‘자기의식’이라고 한다. 쉽게 말해 자기의식이란 거울을 보고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화에 나오는 개는 ‘자기의식’이 없는 존재이다. 우화의 개와 같이 모든 동물들은 자기의식이 없다. 이와 달리 모든 인간은 자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대상화하여 의식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도 처음부터 자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아이들은 ‘나’라는 말을 쓸 줄 모른다. 예컨대 삼둥이의 막내인 만세라는 아이는 무서운 상황에서 “만세는 무서워~, 만세는 무섭다고!”라고 하며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부른다. 즉, 남들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남들이 자신을 아무개로 부르니 자기도 자신을 아무개로 부른다’는 것은 아직 자기의식이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마찬가지로 아주 어린아이들은 거울을 보고도 자기 자신인 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인 줄 알면 진정한 인간이 된 것이다.자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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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헤겔 (상): 헤겔의 변증법

    헤겔 철학은 칸트가 멈춰선 바로 그곳에서 출발한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이 ‘물자체’라고 하는 세계의 본 모습을 알 수 없으며 단지 그것이 나타난 현상만을 알 수 있을 뿐이라고 하며, 이성의 권한을 제한하는 지적 겸손을 보였다. 그런데 헤겔은 모든 것을 낳고 그 구석구석까지 꿰뚫어보는 신적 이성을 제시함으로써 칸트가 이성의 인식 능력의 한계라고 선언한 물자체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 물자체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바로 헤겔 변증법이다.대부분의 사람은 ‘변증법’ 하면 헤겔을 떠올리고 그 내용이 ‘정(正)·반(反)·합(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헤겔은 변증법을 정·반·합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사실 정·반·합의 변증법은 독일 철학자 피히테가 말한 것으로, 헤겔은 이러한 변증법을 도식적이라고 비판한다. 헤겔은 변증법을 살아 있는 현실의 운동하는 원리 자체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오늘 친구를 만났다. 나는 떡볶이를 먹고 싶은데, 친구는 야구장에 가자고 한다. 그럴 때 정(正)은 떡볶이를 먹는 것이고, 반(反)은 야구장을 가는 것이다. 그러면 이 둘의 합(合)은 무엇일까? ‘야구장에서 떡볶이를 먹는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논리는 변증법과 전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반’은 모순적으로 ‘정’에서 도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변증법은 모순 관계이다. 그런데 앞의 예시는 모순이 아니라 반대 관계이다. 모순은 둘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관계를 말한다.밀알→잎과 줄기→새 밀알이제 변증법의 예를 살펴보자. 변증법이란 밀알이 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