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뒤엔 의지가 있다"는 쇼펜하우어에겐
맹목적인 의지를 버려야 행복한 삶이 되죠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맹목적인 의지를 버려야 행복한 삶이 되죠
쇼펜하우어 철학이 염세주의적 경향을 띤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부유한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물려받지만 그의 어린 시절 기억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석가모니가 젊었을 적에 병든 사람이나 노인, 고통과 죽음을 목격하고 그랬던 것처럼 삶의 비참함에 사로잡혀 지냈다”는 말에서 보듯이 세상에 대한 그의 혐오가 그를 염세주의 철학자로 이끈 듯하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하게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신봉했던 헤겔철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헤겔과 달리 인간의 본질을 이성이 아니라 의지에서 찾았다는 점에서 현대철학의 선구자로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의 철학은 대표작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집약돼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칸트 철학의 ‘물자체’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했다고 믿었다.
칸트에 대한 대답 ‘의지’
칸트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적 세계, 즉 표상적 세계의 배후에는 ‘물자체’가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표상의 세계 배후에 있는 물자체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표상’이란 철학자들이 쓰는 어려운 말이지만 쉽게 말하면 세상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방식이다. 따라서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드러난 표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의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의 진정한 본질은 의지이며, 비합리적이고 맹목적인 삶의 의지가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맹목적인 삶의 의지란 ‘살고 싶고, 번식하고 싶은 아주 본능적인 욕구’를 말한다. 예컨대 동물이 살려고 하는 충동과 욕망이나 식물이 자라려고 하는 것이나 심지어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자연 현상까지도 의지의 작용으로 설명된다.
‘의지’를 세계의 본질로 파악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염세주의 경향을 띠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의지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마음에 대한 의지의 힘은, 건장하지만 눈먼 사람이 ‘앞을 볼 수 있지만 마비된’ 사람을 어깨에 메고 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무분별하고 끊임없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 인간의 삶이란 결코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삶의 평정도 되찾을 수 없는 운명이다. 이런 까닭으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삶은 비관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지금 행하고 있는 의지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주장을 둘러싸고 많은 오해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그가 자살을 예찬했다는 오해다. 그러나 이것은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에 대한 오해의 산물이다. 그의 염세주의 철학은 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자살은 삶에의 의지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의지를 가진 개체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해결은 아니다.
부정을 통해 현실 직면해야
물론 모든 것이 다 쓸모없고 가치 없다는 의미만을 두고 보면, 염세주의 철학에서 죽음 혹은 자살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염세주의 철학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바꿔보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 철학은 낭만에 빠져 헛된 희망을 꿈꾸게 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부정의 힘을 길러 준다. 부정의 방법을 통해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젊은 시절을 방해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행복이란 생전에 꼭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가정 아래에서 행복 사냥에 나서는 일이다. 여기서부터 희망은 늘 좌절하기만 하고 그로 인해서 불만이 생겨난다. 우리가 꿈꾸는 막연한 행복의 기만적인 이미지들이 변덕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앞을 맴돌고, 우리는 그 실체들을 헛되이 찾고 있다. 적절한 충고와 가르침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이 세상이 그들에게 줄 것이 아주 많다는 그릇된 관념을 털어낼 수 있다면, 그들은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
여기에서 보듯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줄이면 그나마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제시한 방식대로 살지 못했다. 생각대로만 된다면 누가 불행하겠는가마는.
● 기억해주세요
염세주의 철학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세상을 바꿔보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비관주의 철학은 낭만에 빠져 헛된 희망을 꿈꾸게 하지 않고 오히려 현실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부정의 힘을 길러 준다. 부정의 방법을 통해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서울국제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