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수정했죠
자본주의 붕괴 주장했지만 무너진 건 사회주의죠"
카를 마르크스는 반(反)자본주의를 극명하게 천명한 철학자이자 혁명가다. 그는 자본주의는 내적 모순에 의하여 붕괴된다고 예언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 달리 1989년 베를린 장벽붕괴와 함께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오히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한 마르크스의 철학이 박물관이나 골동품 창고에 들어가야 할 처지가 됐다. 자본주의 붕괴 주장했지만 무너진 건 사회주의죠"
헤겔을 접한 마르크스
아닌 게 아니라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명저 《역사의 종언》에서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냉전이라는 기간에 자유민주주의가 공산주의와의 체제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만큼 더 이상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이념과 철학 체계가 없다는 점에서 역사가 종말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이제 냉전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공동 시장이 되고, 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21세기에 마르크스를 언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예리한 비판자인 마르크스는 사실은 자본주의가 스스로 궤도를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인물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경고로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오늘날 자본주의가 붕괴하지 않고 건재할 수 있도록 한 일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전공인 법학보다는 주로 문학과 역사, 철학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의 전공인 법학은 사회 변화의 근본적인 원동력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마르크스에게 아무 설명도 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때 마르크스는 당시 급진 좌파인 청년 헤겔주의자들을 만나 헤겔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그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 헤겔은 이미 5년 전에 죽었지만 헤겔의 철학은 당시 철학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대학생 지식인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유물론적 변증법
처음에 그는 현실이 변화하고 운동하는 역동적 과정을 담은 헤겔의 변증법에 동조했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이 관념론에 근거해 있음을 파악하고는 헤겔의 변증법적 세계관을 비판하며 유물론으로 방향을 바꿨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헤겔은 세계를 거꾸로, 즉 관념론적으로 보았는데, 이제 거꾸로 선 세계를 바로 세워 그 현실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 한다”고 했다. 이리하여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수정해 자신의 철학적 틀로 삼았다.
마르크스에게 헤겔 철학을 바로 세우는 일은 철학의 역할을 올바르게 규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가 보기에 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헤겔의 철학은 마치 거꾸로 세상을 보는 것과 같다. 따라서 마르크스에 의하면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은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할 뿐,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헤겔 자신도 철학의 역할을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보다는 후에 이를 해석하는 데서 찾았다. 헤겔은 자신의 책 《법철학》 서문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어둑어둑한 황혼에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 이 말은 철학의 역할에 대한 헤겔의 입장을 담고 있다. 여기서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지혜, 나아가 철학을 상징한다. 사람을 비롯해 온갖 것들이 활동하는 낮 시간이 지나고 황혼에 접어들어서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철학이라는 것도 현실에서 실제적인 활동이 이뤄진 뒤에야 활동한다는 뜻이리라. 미네르바의 올빼미 vs 갈리아의 수탉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비판하기 위해 ‘미네르바의 올빼미’에 대응해 ‘갈리아의 수탉’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야 날개를 펴지만, 새벽녘에 그 울음을 울리는 갈리아의 수탉과 같이, 철학도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것에 앞서 그것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책 《포이에르바하 테제》에서 이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세계의 변화는 필요하다. 그러나 그 변화가 한 가지 기준만에 의한 것이라면 굳이 존 스튜어트 밀의 ‘무오류성의 오류’라는 개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우리가 황혼녘에 날개를 편 올빼미가 본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기억해주세요
마르크스는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비판하기 위해 ‘미네 르바의 올빼미’에 대응해 ‘갈리 아의 수탉’이라는 개념을 사용 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 혼녘에야 날개를 펴지만, 새벽 녘에 그 울음을 울리는 갈리아 의 수탉과 같이, 철학도 현실적 이고 실제적인 것에 앞서 그것 을 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국제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