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AI시대인데, 물가 안떨어지네?
게티이미지

생글생글은 최근 커버스토리에서 “긴축의 시대가 온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등 주요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어 세계 경제에 돈줄이 마르고 성장세가 한풀 꺾일 수 있다는 전망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긴축 시대’가 아닌, ‘인공지능(AI) 시대’입니다. AI가 인류 역사와 우리의 삶을 혁명적으로 바꿔놓고 있어 정신이 온통 AI에 팔려있죠. 경제적으로 보면, AI 시대에는 이전과 똑같은 산출물을 얻기 위해 똑같은 노동력과 자원을 투입할 필요가 없습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노동생산성이 높아지고 투입비용은 과거보다 줄어듭니다. 이는 모든 산출물의 가격을 낮추는 효과를 낳습니다. AI 시대에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계 경제가 물가 상승에 대비한 긴축 시대에 접어든다고 하니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AI 시대와 긴축 시대는 공존할 것 같지 않은데 말이죠. AI는 각국의 생산성을 급격히 높이고 있는데, 요즘 물가는 왜 올라갈까요? 이번 주 탐구 주제입니다. 유가가 끌어올린 물가, 그다음엔?
[커버스토리]AI시대인데, 물가 안떨어지네?
물가상승세는 실제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14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같은 달보다 3.7% 올라 전문가 예상치(3.6%)를 웃돌았어요.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전년 대비 2.6% 올라 예상치인 2.5%를 넘어섰습니다.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추가로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다시 시장을 짓눌렀습니다. AI 기업들의 부채 부담이 부각되면서 미국 뉴욕증시의 기술주에 매도세가 몰렸고, 우리나라 증시도 다음날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커버스토리]AI시대인데, 물가 안떨어지네?
시야를 넓혀 최근 수년간 우리나라의 물가 동향은 어땠을까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24년 말 1%대 초반까지 낮아졌다가, 2025년 높은 환율 때문에 석유류 가격이 오른 영향으로 2% 초중반까지 높아졌습니다. 올들어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발발하면서 물가는 더 빠르게 올랐습니다. 6월엔 3.2%까지 상승했고, 7~9월은 2.8~3.1%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석유류 등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고환율 영향이 컸습니다. 이른바 ‘공급측 충격(Supply shock)’이 주요인입니다. 그렇다면 AI에 대한 투자와 보급, 활용이 확산하면서 생겨나는 생산성 향상, 그에 따른 소득 증대와 소비 증가는 언제쯤 나타날까요?

생산성 향상은 물가 하락, 소비 증가는 물가 상승을 가져옵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최근 기준금리 인상은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상승을 막기 위한 용도에 그칠까요? 아니면 AI 호황이 몰고 올 소득과 소비 증가세에 선제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까요? 궁금해집니다. AI는 물가 하락, 상승에 모두 영향 줘물가는 단기적으로 여러 요인에 의해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장기적으로 물가가 어떤 양상을 띨지 살펴보자는 겁니다. 케빈 워시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이런 주제와 관련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Fed 의장이 되기 전인 작년 말,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AI를 ‘상당한 디스인플레이션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란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물가 수준 자체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Deflation)과 다르죠. AI 덕분에 똑같은 자원 투입량으로 더 많은 산출물을 얻게 되면 경제는 물가상승 압력 없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게 워시 의장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Fed가 금리를 올려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워시는 이를 ‘AI 디스인플레이션’ 또는 ‘생산성 주도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불렀습니다.

비슷한 역사적 사례가 있었습니다. 바로 1990년대 미국의 신경제(New Economy) 시대에 인터넷 붐이 일었고, 이때의 생산성 향상이 물가 안정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러니 AI 시대에도 비슷한 전망과 기대를 해볼 수 있지요.

물론 반론과 회의론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디스인플레이션은 논리의 비약이란 주장이 있습니다. 즉, AI가 비용을 낮출 수는 있어도 시장지배력을 둘러싼 기업의 경쟁 상황, AI 투자 비용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문제 등으로 인해 실제 물가의 둔화 폭은 달라진다는 겁니다. 또한 AI 수요와 설비투자가 생산성 향상보다 먼저 나타나 경기 과열과 물가 상승을 부를 위험이 있다고 합니다.

과연 어떻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시간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장기적으로는 AI로 인해 생산성이 오르고 물가가 낮아지겠지만, 단기적으로는 투자비와 소득이 먼저 늘어 수요를 증대시키고 물가를 밀어 올리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죠.

AI로 인한 생산성 증대가 얼마나 빨리 나타날지 아직 불확실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미 MIT 교수는 AI가 10년간 생산성(총요소생산성)을 약 0.7% 높이는 데 그친다고 봅니다. 적어도 초기에는 생산성 증대 효과가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런 주장이 맞다면 AI 시대가 시작되더라도 물가가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반도체 산업 호황이 소득(성과급 포함) 증대를 가져오고, 이는 소비 증가와 근원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과 8월, 두달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이런 연쇄효과로 물가가 가파르게 상승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AI 시대와 인플레이션, 긴축정책의 상관관계’를 대체로 이해할 수 있겠죠? 경제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 한 번쯤 공부하고 자기 머리로 연역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