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는 순수한 추상명사나 실체명사와는 잘 결합하지 않는다. 예컨대 실체명사인 ‘책’ ‘전화기’에 ‘-하다’를 붙여 쓰지 않는다. ‘평화’나 ‘자유’ ‘세계’ 같은 추상명사에 붙은 ‘평화하다’ ‘자유하다’ ‘세계하다’란 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BTS를 새겨넣은 모자와 티, 멤버들을 상징하는 인형까지, 공연을 즐길 준비는 마쳤습니다. 현장에서는 아미들의 ‘보라해!’ 함성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21일 밤 전 세계를 달군 BTS의 컴백 무대 직전 한 방송사는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는 22일부터 25일까지 전광판 등에 환송 메시지를 띄워 공연을 보고 출국하는 팬들을 배웅했다. “보라해요 아미, 대한민국에서 또 만나요!”‘보라해’, 서로 믿고 사랑하자아미들이 있는 곳에 약방의 감초처럼 늘 따라다니는 말 ‘보라해’. 이 말은 태어난 지 10년이 됐지만 여전히 예사롭지 않다. 방탄소년단의 상징처럼 쓰이는 말이라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어색함이 묻어나는 것은 이 말이 통상적인 우리말 조어법에서 벗어난 데다 독특하게 만들어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보라해’를 통해 우리말 조어법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접미사 ‘-하다’ 용법과 진화된 모습이다.

보라해는 ‘서로 믿고 사랑하자’는 뜻으로 만든 조어다. 2016년 BTS 팬 사인회에서 멤버 뷔가 즉석에서 만들어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보라해’로 쓰이지만, “옷을 보라하게 입었다” “아미 여러분, 정말 많이 보라합니다” 식으로 활용해서도 쓴다. 동사 ‘보라하다’를 기본형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핏 보기에도 ‘보라+하다’의 결합으로 이뤄진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때 ‘-하다’는 접미사다. 일부 명사 밑에 붙어 우리말에 부족한 동사, 형용사를 파생시킨다. 동작명사에 붙으면 그 말을 동사로 만들고, 상태명사에 붙으면 형용사로 바꿔준다. 가령 ‘칭찬하다’ ‘명령하다’ 같은 말은 ‘칭찬’ ‘명령’이란 동작성 명사에 ‘-하다’가 붙어 파생된 동사다. 상태명사 ‘만족’ ‘건강’과 어울려서 형용사 ‘만족하다’ ‘건강하다’를 만든다. ‘-하다’의 이 같은 기능 덕분에 우리말은 부족한 동사와 형용사를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생산성이 매우 높은 접사인 셈이다.신조어는 문법 틀로 재단 안 돼하지만 ‘-하다’는 순수한 추상명사나 실체 명사와는 잘 결합하지 않는다. 예컨대 실체 명사인 ‘책’ ‘전화기’에 ‘-하다’를 붙여 쓰지 않는다. ‘평화’나 ‘자유’ ‘세계’ 같은 추상명사에 붙은 ‘평화하다’ ‘자유하다’ ‘세계하다’란 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동작성이나 상태성이 없기 때문이다.

보라해는 추상명사 ‘보라(purple)’에 접미사 ‘-하다’를 붙여 만든 조어다. 어법적으로 보면 ‘파랑하다’ ‘빨강하다’가 말이 되지 않듯 ‘보라하다’도 당연히 성립하지 않는다. 이 말이 존립하는 근거는 ‘믿고 사랑하다’란 새로운 의미를 담아 만든 조어라는 데 있다. 특히 신조어의 생성은 문법 범주를 뛰어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굳이 규범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다양한 유형의 수많은 신조어는 대부분 단순하게 문법의 범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다만 전통적으로 써오던 우리말 용법은 지켜주는 게 좋다. 가령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승부하다’란 표현이 그렇다. 이 말을 “벤처기업은 실패 위험이 높아 성공 확률이 낮은 사업에 승부하는 기업이다” “올봄 방송 3사는 드라마로 승부한다는 전략 아래…”라는 식으로 쓴다. ‘승부(勝負, 이기고 짐)’에서 파생된 ‘승부하다’는 원래 성립하지 않는 말이다. ‘이기고 짐 하다’란 표현이 어색하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데 남들이 하는 대로 무의식중에 따라 한다. 같은 계열의 단어인 ‘승산(勝算, 이길 가능성)’을 ‘승산하다’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말은 “~사업에 승부를 거는 기업이다” “~드라마로 승부를 본다는(건다는) 전략 아래…”라고 하면 충분한 표현이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염두하다’도 글쓰기에서 흔히 범하는 오류다. 이제 이 말이 왜 잘못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염두(念頭)는 추상명사로, 순우리말로 하면 ‘마음속’이다. 그러니 ‘염두하다’라고 하면 ‘마음속하다’라는 건데,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염두에 두다’ ‘염두에 없다’처럼 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