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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허라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허라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얼마 전만 해도 국내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은 똑같이 뜨거웠습니다. 단기간에 급등하며 과열 양상을 보였죠. 그런데 부동산엔 ‘투기’ 딱지가 붙었고, 주식엔 ‘투자’란 설명이 당연시됐어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에서 그런 뉘앙스가 진하게 풍겼습니다. 집, 땅, 주식 등 자산의 보유 목적과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하는 자산이란 점에선 비슷하죠. 그럼에도 하나는 투기로 매도당하고, 다른 하나는 투자로 대우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근 뉴욕 증시에선 인공지능(AI) 관련 투자가 급증하면 거품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이 투자가 당장 눈에 띄는 실적을 내지 못한다고 해서 “돈 먹는 하마다” “투기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중에 실적으로 확인되면 건강한 투자이고, 실적이 따라오지 못하면 투기라고 빈축을 사는 게 맞을까요? 이는 명백한 ‘결과론의 함정’인데, 현실에선 그런 함정에 쉽게 빠집니다.

인간은 주류경제학이 전제하는 ‘합리적 존재’와는 거리가 멉니다. 자신이 투자라고 여겨도 투기일 수 있고, 투기라고 낙인찍혀도 나중에 투자로 판명날 수 있습니다.

투자와 투기를 나눌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찾기 힘듭니다. 경제학자들도 경계가 모호하고 교집합이 넓은 영역이라고 봅니다. 과연 투자와 투기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자산 내재가치 살피는 게 투자의 본질
근거 없는 기대는 투기·거품 키우죠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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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으로 보면 투자는 이성적으로 하는 것이고, 투기는 오를 것 같은 감(感)에 의존하는 행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물론 단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5년 전 강남 아파트를 산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는 주택시장의 장기적 수급 상황을 따졌고, 입지와 학군도 확인했습니다. 이후 아파트 가격이 2배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투자일까요? 아니면 투기일까요? 이와 달리 기업 분석도 하지 않고 “다들 사니까 오르겠지…”라며 주식을 산 사람은 수익률을 떠나 투자자일까요? 투기자일까요?

‘포모’는 투기의 발단

자산의 종류로 투자와 투기를 나누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잘한 투자냐 아니냐’는 투자 결과도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의 태도, 그리고 의사결정의 근거입니다. 어떤 기업의 가치가 몇 년 후 어떠한 이유로 높아질 것이란 확신과 근거를 갖고 하는 것은 투자입니다. 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는데 매수 대열에 동참하지 않아 안타까움을 느끼던 사람이 투자에 나선다면 그것은 투기에 가깝습니다. 흔히 말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현상은 대개 투기를 부릅니다. 투기의 본질은 무지(無知)가 아니라 근거 없는 기대입니다. 그런 기대가 집단으로 확산·전염될 때 거품이 만들어집니다.

경제학으로 본 투자·투기

이번엔 경제학의 ‘언어’로 살펴보겠습니다. 경제학에서 투자(Investment)는 미래의 생산능력이나 수익을 늘리기 위해 현재의 소비를 희생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당장의 필요에 맞추지 않고 미래를 위해 예비하고 사용하는 것이어서 거시경제 측면에선 바람직할 때가 있습니다. 투기(Speculation)는 실물 생산에 기여하지 않고 가격 변동에서 차익을 얻으려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자산의 내재가치보다 시장의 가격 움직임 자체에 베팅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화폐 가치의 변동을 예상하고 투자 목적으로 화폐를 보유하려는 수요를 ‘화폐의 투기적 수요(Speculative demand)’라고 합니다. 경제학은 투기에 대해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습니다. 그냥 경제주체의 여러 선택 중 하나로서 가치중립적으로 평가합니다.

물론 사회 전체가 투기에 휩싸이면 불안 요소가 됩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투기가 투자를 압도하는 상황을 경계했습니다. 그는 “투기꾼들이 기업의 꾸준한 흐름 위에 거품처럼 떠 있는 것은 해롭지 않다. 그러나 기업 자체가 투기의 소용돌이 위에 떠 있는 거품이 될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효율적시장이냐 아니냐

미시경제학 관점으로 좁혀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재무 투자 이론이 그런 분야입니다. 미국 월가의 가치투자 창시자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투자란 철저한 분석에 기반해 원금의 안전과 적절한 수익을 약속하는 행위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투기”라고 명쾌하게 정의했습니다. 그는 주식시장을 ‘미스터 마켓(Mr. Market)’에 비유했습니다. 미스터 마켓은 매일 사람들에게 주식을 사고팔 가격을 제시하는데요, 그의 기분에 따라 가격이 들쭉날쭉합니다. 투자자는 미스터 마켓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내재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투기자는 미스터 마켓의 기분을 따라갑니다.

현대 재무 이론에는 ‘효율적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이란 게 있습니다. 시장의 가격은 모든 정보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지속적으로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게 핵심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투자자도 코스피지수 이상의 수익률을 올릴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 세계에선 투자를 하든 투기를 하든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에서 나온 행동재무학은 다르게 설명합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저서 <비이성적 과열>에서 시장은 종종 내재가치에서 크게 이탈하며, 이는 집단적 심리와 투기적 행동의 결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NIE 포인트 1. ‘포모’는 어떤 현상을 말할까?

2. 경제학의 ‘투기’와 일반 상식 용어 ‘투기’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3. 효율적시장가설에 대해 공부해보자. 사람은 이론과 달리 늘 합리적이진 않죠
인간의 탐욕, 사회의 광기가 투기 부채질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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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주류경제학은 오랫동안 ‘호모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경제적 인간)’, 즉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을 가정해왔습니다. 인간은 완전한 정보를 갖고, 감정보다 이성을 앞세우며, 일관된 선호를 유지하고, 항상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겁니다. 투자의 맥락에서 이런 인간은 자산의 내재가치를 정확히 계산하고, 위험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감정의 개입 없이 매매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요?

심리적 편향도 투기의 원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은 1950년대에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란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인간은 최적의 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지능력의 한계 안에서 ‘충분히 괜찮은 답’을 찾는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결정이 투자인지 투기인지는 판단 당시엔 알 수 없고, 시간이 지나 봐야 합니다. 이게 현실의 인간입니다. 투자와 투기의 경계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가 만들어내는 틈 사이에 존재합니다.

행동경제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인간은 원래 비합리적인 존재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은 이익보다 손실에 더 민감하고, 과거의 자산 가격 움직임 등 패턴에 과도하게 의존하며, 군중심리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행동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등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이 밝히는 바입니다. 인간의 심리적 편향 중엔 과잉확신(overconfidence bias)도 있습니다. ‘나는 특별하다’는 착각이 투기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연구에 따르면 펀드매니저의 70% 이상이 자신이 시장 평균을 이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도 있죠. 이런 것들이 투기적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비합리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투자와 투기의 구분은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비합리성을 아는 것 자체가 합리성의 시작이란 깨달음입니다. 인간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투자자는 그것을 모르는 투자자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투자가 투기로, 투기가 투자로

처음엔 투자로 평가받다가 투기로 바뀌어가는 데엔 개인의 탐욕과 군중심리, 사회적 광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은 1895년 저서 <군중심리(The Crowd)>에서 충격적인 주장을 했습니다. 개인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면 지능이 낮아지고 감정이 증폭된다는 겁니다. 그는 군중은 ‘개인의 합’이 아니라, 개인보다 훨씬 원시적이고 충동적인 새로운 심리적 존재라고 봅니다. 금융시장 투기 광풍의 역사는 르봉의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1637년 네덜란드 튤립 구근 거품, 1720년의 남해회사 버블, 1929년 대공황 직전 상황, 2000년 닷컴버블 등이 그랬습니다. 케인스는 주식시장을 ‘미인 선발대회’에 비유했습니다. 진짜 미인을 고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생각할 만한 사람을 고르는 경쟁이라는 거죠. 투기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비유입니다.

반대로 역사적으로는 투기라 낙인찍었지만 올바른 투자인 경우도 있습니다.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초기에 매수한 사람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않는 암호화폐를 사는 것은 투기나 다름없다고 봤는데, 금융 세상이 분산화와 디지털화로 발전하면서 대박이 터진 거죠. 2007년 미국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비우량 주택대출 시장인 서브프라임모기지 시장이 붕괴할 것이라 보고 시장 하락에 베팅했습니다. 2008년 그는 수억 달러를 벌었고,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이 됐습니다. 그의 행동은 무모한 투기처럼 보였으나, 역사상 가장 철저한 분석에 기반한 투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AI 투자 열풍이 닷컴버블과 유사하다고 말했습니다.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NIE 포인트 1. 인간은 과연 합리적 존재인지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2. 행동경제학이 어떤 배경에서 발전했는지 알아보자.

3. 글에서 언급한 버블 역사에 대해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