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1B
미국 정부가 ‘전문직 비자’로 불리는 H-1B 비자 수수료를 100배 올리겠다고 발표하자 미국 기업들이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H-1B 비자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내용의 포고문에 서명했다. 발급 수수료를 1인당 1000달러(약 140만원)에서 10만 달러(약 1억4000만원)로 크게 올리는 내용을 담았다. 예고 없는 정책 급변…기업 불안감 커져
미국 비자 발급 신청자들이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 있다.  한경DB
미국 비자 발급 신청자들이 서울 세종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줄을 서 있다. 한경DB
H-1B 비자는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 전문 직종을 위한 비자로, 추첨을 통해 연간 8만5000건을 발급한다. 기본적으로 3년 동안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고, 최대 3년 더 연장하거나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은 미국 기업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저렴한 비용으로 외국 노동자를 들여와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주장해왔다. H-1B 비자는 70% 이상을 인도 출신이 보유하고 있다.

포고문에도 기존 H-1B 비자 프로그램이 미국인 고용을 위협하고 있다는 인식이 분명히 드러났다. 2000~2019년 외국인 STEM 노동자 수가 120만 명에서 250만 명으로 증가하는 동안 STEM 분야 고용은 44.5%만 늘었다는 통계가 인용됐다. 이날 서명식에 함께한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대통령의 입장은 미국을 위해 가치 있는 사람만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새 수수료 규정은 21일부터 발효됐다.

하지만 H-1B 비자는 미국이 세계 최고 인재를 유치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구글, 애플, 메타, 테슬라 등 주요 빅테크는 해마다 수천 명 규모의 H-1B 비자 인력을 채용해 과학기술 인재풀을 넓혀왔다.

어떤 사전 예고도 없이 발표된 조치에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JP모간 등은 H-1B 비자 보유자에게 미국을 떠나지 말라고 경고하는 한편 해외 체류 직원은 즉각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강력히 권고했다. 혼선이 확산하자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새 방침은 신규 비자 신청자에게만 적용된다”고 밝히는 등 진화에 나섰다.

최근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한국인 300여 명 구금 사태 이후 한미 양국이 비자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인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한국엔 어떤 영향?…“인재 유출 막는 효과도”한쪽에서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우리 기업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계 관계자는 “현지 법인에서 이공계 전문 외국 인력을 채용해야 할 수 있는데, 1인당 1억4000만원씩 비용을 내야 한다면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반면 미국의 이번 조치가 장기적으로는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아 한국 기업의 인재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희망 섞인 관측도 나온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10년간 발급한 H-1B 비자 중 한국인은 2만168명이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반도체 등 전략기술 분야에 취직한 고급 인력이 많다. 매년 미국으로 2000명씩 인재가 빠져나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