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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함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그의 왼편에 김 위원장, 오른편에 푸틴 대통령이 자리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서방 진영을 향해 자신들의 결속력을 선보이는 무력시위 같았습니다.

미국과의 이해관계가 조금씩 달라 북·중·러 3국 합동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반미(反美) 연대를 공식화하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에 반대하는 분위기는 역력했죠. 이 때문에 결국 ‘신냉전(New Cold War)’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이 체제 경쟁에 몰두하고 군사적 긴장 또한 고조되던 시기가 1950~1980년대 냉전기였습니다. 핵전쟁의 공포 속에서 인류 위기를 걱정해야 하던 때였죠. 중국 전승절 행사에선 ‘트럼프 대(vs) 푸·시·킴(푸틴, 시진핑, 김정은)’이라는 대결 구도가 확연히 드러나 신냉전이 기우만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중국 중심의 브릭스(BRICS)와 같은 국제협력 모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합니다. ‘하나의 시장’을 중심으로 번영하는 지구촌을 만들려던 이상이 퇴보하고, 평화를 위협하는 대립과 갈등의 시대가 다시 시작되는 지금의 국제 정세를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핵전쟁 공포 엄습하던 냉전 뒤로하고
시장경제 확산이 세계를 하나로 연결
베를린 장벽 건설 64주년을 맞은 지난 8월, 한 관광객이 독일 베를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 있는 장벽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베를린 장벽 건설 64주년을 맞은 지난 8월, 한 관광객이 독일 베를린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 있는 장벽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역사와 시대의 변화는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방향이 정해진 물줄기는 돌려세우기 어렵고, 역행하는 움직임은 얼마 못 갑니다. 지금의 세계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 미래는 어떻게 다가올지 감을 잡으려면 잠깐 물 밖에서 넓은 시야로 조망해야 합니다. 신(新)냉전의 우려가 커지는 요즘, 20세기 냉전 이후의 세계사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차가운 전쟁’의 시작

냉전(Cold War)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년경부터 1991년 옛 소련(소비에트연방) 붕괴 전까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서 진영이 정치·이념·군사·경제적으로 대립하며 벌인 긴장 상태를 뜻합니다. 전면전은 없었지만, 그에 필적하는 위기 상황이 상존했기에 탄생한 용어입니다.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당시 미국 코앞인 쿠바에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배치되는 움직임이 감지되자, 미국은 군사 봉쇄로 대응하며 핵전쟁 직전까지 갔습니다.

냉전의 시작을 알린 것은 1946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철(鐵)의 장막’ 연설이었어요. 그는 당시 미국 대통령도 참석한 미국 내 행사에서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을 가로질러 드리워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폴란드,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지역이 소련의 주도하에 속속 공산화하는 현실을 경고하고 영국, 미국, 캐나다가 튼튼한 동맹을 맺어 소련의 팽창주의에 맞서자는 요지를 담았죠. 이듬해인 1947년엔 ‘트루먼 독트린’이 발표됩니다. 당시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기존의 고립주의(먼로 독트린)에서 탈피해 외교정책의 기조를 적극적 개입주의로 전환합니다. 최근 신조어 ‘돈로 독트린’(도널드 트럼프+먼로 독트린)도 이와 관련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예전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되, 미국 우선주의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철저히 관철시키는 팽창주의 욕심을 숨기지 않습니다. 역사는 돌고 도나 봅니다.

데탕트를 아시나요?

냉전시대엔 지금도 익숙한 용어가 많이 등장했습니다.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끼리는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이 그런 예입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 간 직접적 군사 충돌이 없었고 핵무기 사용이 억제된 것은 공포의 균형 덕분이란 얘기입니다. 서방은 지금도 존재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소련과 동유럽국은 바르샤바조약기구(WTO)라는 군사동맹을 만들어 서로 으르렁댔어요.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많은 WTO 가입국이 나토로 넘어간 것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예에서 보듯, 러시아와 서방 간 새로운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파국을 피하려는 양 진영의 긴장 완화 노력을 ‘데탕트(Détente)’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냉전의 극한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군비 축소 협상을 벌이고 관계를 개선하려는 일시적 움직임을 프랑스어로 데탕트라고 했지요.

하나로 묶이는 세계

냉전은 ‘베를린장벽 붕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권의 해체로 막을 내립니다. 동유럽 국가들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소련도 개혁정책(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을 놓고 내부 갈등이 격화하며 연방이 해체되기에 이릅니다. 지구 반대편에선 중국이 덩샤오핑 주도로 경제 개혁·개방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베트남도 도이머이정책으로 체제 변화와 시장경제 도입에 나섰죠. 시장경제 체제가 확산하면서 세계화 또는 글로벌리즘(Globalism)은 시대의 키워드가 됩니다. 특히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자유무역과 세계적 차원의 자본이동은 일상화되기에 이릅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다국적기업이 번성했고, 이들 기업은 세계 곳곳의 노동력과 원자재, 산업기술을 묶어내는 글로벌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을 고안해냅니다. 촉진제는 인터넷과 같은 정보기술(IT) 혁명입니다.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며 더욱 긴밀해졌고, 국경의 의미는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NIE 포인트 1. 사회주의 이념과 사상이 왜 퇴조했는지 역사를 살펴보자.

2. 지금은 이념의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새로운 냉전이 시작되는 듯한 이유는 무얼까?

3. ‘공포의 균형’은 지금도 유효한 생각인지 토론해보자. 경제·안보 위해 다시 블록화하는 세계
'글로벌리즘 종언'은 어떤 미래 부를까?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부터)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부터)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와 인권, 시장 질서가 인류의 보편 가치로 받아들여지던 지구촌은 다시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그리스 철학자 투키디데스의 예언처럼 패권을 쥔 국가와 이를 뺏으려는 국가 간 다툼은 세계를 분열시킬 수밖에 없죠. 바로 중국(경제)의 급부상과 패권국가화 시도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린 겁니다.

한국 미래도 걸린 중국의 패권 도전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초고속 성장을 한 중국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경제 규모(국내총생산 기준)를 추월할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오면서 미국은 본격적으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최근엔 경제 안보와 관련됐다며 첨단기술과 부품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고,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축하고 있습니다. 올 초 트럼프 미국 정부의 관세장벽 높이기는 보호무역주의를 역사에 다시 소환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국가적 자원과 전략을 여기에 총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북한·중국·러시아의 협력과 결속 강화는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 제품의 최대 수입국은 미국이고, 첨단기술과 부품에 대한 일종의 지식재산권과 통제력은 미국이 많이 갖고 있기에 중국은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입니다. 괄목할 성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 전기차 등 첨단산업에서 중국의 저력이 확인되면서 기술 헤게모니를 중국이 잡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북·중·러의 정치·군사적 협력은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이념 대결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걸까요? 북·중·러 3국과 인접한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국제정치학의 답변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국제정치학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엔 전통적으로 ‘자유주의’, ‘현실주의’, 그리고 ‘세계체제론’이라는 세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먼저 자유주의는 세계의 패권 다툼을 자유주의와 반(反)자유주의 세력의 대립으로 해석합니다. 세계사는 20세기 유엔·WTO 등 국제기구의 출범, 경제의 상호의존과 세계화, 민주주의 확산 등으로 자유주의가 압도했다고 봅니다. 세계 평화와 안정적 국제질서는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소프트 파워>, <권력의 미래>의 저자인 조지프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가 대표적 학자입니다. 이 관점은 탈냉전과 이후 세계 질서의 변화에선 설득력을 갖지만, 경제와 안보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은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다음은 현실주의입니다. 이는 국가의 이익과 패권을 향한 경쟁이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고 봅니다. 현실주의자들은 탈냉전기 미국이 ‘자유주의적 패권’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는 바람에 과거에 비해 국력이 쇠퇴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은 냉전 이후 미국의 일극(一極)체제에 대항해 다극화를 추구하는 경향, 강대국 간 패권 경쟁이 벌어진 상황을 설명하는 데 유용합니다. 여기서 발전한 신현실주의는 국제사회가 무정부 상태기 때문에 각 나라가 자국의 안보와 생존을 최우선으로 삼고 의사결정을 한다고 가정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주창한 ‘세계체제론(World-Systems Theory)’은 세계를 서로 영향을 밀접하게 주고받는 하나의 생태계이자 시스템이라고 분석합니다. 세계체제론은 월러스틴의 저서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는 세계를 중심부(선진국)·반(半)주변부·주변부로 구분하고, 세계사의 변화를 자본주의 중심의 세계경제 체제 발전과 불평등 구조를 초점으로 설명합니다. 결국은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이 국제질서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주장입니다. 이 이론은 그러나 국가 간 권력투쟁이나 충돌 현상에 대해선 현실주의적 설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글로벌리즘이 쇠퇴하고 이념과 가치가 비슷한 나라끼리 다시 블록화하는 요즘 세계, 여러분이 보기엔 어떤가요? NIE 포인트 1. 미국과 중국의 국력 및 경제력을 비교해보자.

2. ‘투키디데스의 함정’이 무엇인지 공부해보자.

3. 과연 글로벌리즘 시대는 막을 내린 건지 토론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