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체 모방 기술
자연 속 동식물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독자적인 생존 전략을 고안해 왔다. 과학자들은 종종 이런 전략들에 착안해 인간에게 유용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이를 '생체 모방 기술(Biomimetics)'이라고 한다. 비행기 날개(새 날개), 고속열차 앞부분(물총새 부리), 벨크로 찍찍이(도꼬마리 씨앗)가 대표적인 사례로, 자연을 흉내 내 만든 일종의 '모방작'이다.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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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체모방 기술 중 하나는 홍합을 참고해 만든 ‘수중 접착제’다. 홍합은 해류가 잘 통하는 바위나 암초에 달라붙어 사는데, 바위에 물이 묻어 있거나 파도가 세게 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홍합의 강력한 접착력은 입에서 분비하는 ‘접착 단백질’ 속에 포함된 ‘카테콜(catechol)’이라는 특별한 화학구조에서 나온다.

카테콜 구조는 분자 끝에 작은 갈고리 같은 손잡이가 달려 있어 금속이나 돌, 플라스틱 표면의 미세한 부분을 잘 붙잡는다. 처음에는 약한 힘으로 달라붙었다가 시간이 지나면 화학반응이 일어나 강력 접착제처럼 굳어버린다. 게다가 카테콜 구조 주변 분자들이 물과 잘 어울리는 성질(친수성)이 있어 젖은 표면에도 안정적으로 붙는다. 이런 장점 때문에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홍합의 접착 단백질을 흉내 내 의료용 접착제나 수중 보수재를 개발하려고 노력해왔다.

다만 카테콜 구조를 본떠 만든 합성 접착제는 물속에서 접착력이 약하다. 합성 접착제의 몸통은 물을 싫어하는 성질(소수성)을 가진 고분자로 구성돼 물에 젖은 표면에서 잘 퍼지지 못하고 밀려난다. 카테콜 구조가 표면에 닿기 전에 물이 가로막으니 들러붙을 수가 없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이드로젤에 주목했다. 하이드로젤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젤리’ 같은 물질로, 물 층에서 밀려나지 않고 그 안으로 스며들어 마치 요철을 메우듯 표면에 밀착하는 게 특징이다. 하이드로젤에 달린 카테콜 구조가 표면에 먼저 붙어 있던 물 분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대신 달라붙어 표면과 단단한 고리를 만들기 때문에 젖은 표면에도 쉽게 달라붙는다.

다만 이렇게 만들어진 하이드로젤 기반 수중 접착제도 물속에서 접착 강도가 수십 킬로파스칼(kPa) 수준에 머물렀다. 1킬로파스칼은 1㎡ 넓이에 약 100kg의 무게가 누르는 압력인데, 산업적으로 활용하려면 접착력이 1000킬로파스칼을 웃돌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 일본 홋카이도대와 중국, 영국 공동 연구팀이 개발한 초강력 수중 접착제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돼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홍합, 게코도마뱀, 세균 등에서 접착 단백질 정보를 모아 카테콜 구조처럼 붙는 힘을 지닌 화학구조를 찾아냈고, 이 특징을 본떠 여섯 가지 작은 블록 같은 분자를 합성했다. 이후 연구팀은 이 블록들을 서로 다른 비율로 섞어 180가지 하이드로젤 접착제를 만들었다. 조합에 따라 물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표면에 얼마나 단단히 달라붙는지,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가 달랐다. 연구팀은 이 접착제들의 접착 강도와 지속 시간, 다양한 표면에서의 성능을 컴퓨터로 분석해 그중 가장 끈끈하고 안정적인 조합을 골라냈다.

이렇게 찾아낸 하이드로젤 접착제는 금속, 유리, 플라스틱 등 거의 모든 재료에서 1000킬로파스칼 이상의 접착력을 보였다. 이 접착제를 실제로 사용해보니 바닷가 바위에 붙인 고무 오리가 파도가 몰아쳐도 떨어지지 않았고, 물을 가득 채운 파이프 구멍을 하이드로젤로 막았을 땐 5개월 동안 물 한 방울 세지 않았다. 동식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해양 구조물 보수, 수중 로봇 부품, 의료용 봉합재나 인공 장기 접착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접착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홍합 접착제처럼 자연은 수백만 년 동안 진화하며 최고의 설계도를 만들어왔다. 생체모방 기술은 그 설계도를 읽어내고 인간의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과정이다. 홍합의 끈질긴 생존 전략이 실험실에서 초강력 접착제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자연을 흉내 내는 과학은 앞으로도 인류에게 놀라운 발명품을 안겨줄 것이다. √ 기억해주세요
김우현
칼럼니스트
김우현 칼럼니스트
생체모방 기술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동식물의 생존 전략을 모방해 탄생한 유용한 기술을 말한다. 대표 사례인 수중 접착제는 홍합이 분비하는 접착 단백질 속 ‘카테콜 구조’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카테콜 구조는 끝에 작은 갈고리가 달린 모양의 분자로, 표면에 쉽게 들러붙는 게 특징이다. 과학자들은 카테콜 구조를 흉내 내 합성 접착제를 개발했는데, 산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접착력을 구현하지 못했다. 최근 홋카이도대 연구팀은 하이드로젤을 활용해 이 장벽을 극복했다. 카테콜 구조를 비롯해 접착 성질을 지닌 여섯 가지 분자를 다양한 비율로 섞어 180종의 하이드로젤 접착제를 만들고, 접착 강도, 지속성, 표면 적합성 등을 컴퓨터로 분석해 최적의 조합을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