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눈 시대 성큼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에는 종종 ‘인공눈’을 단 인물이 등장한다. 사고나 질병으로 시력을 잃은 사람이 첨단 기계장치의 도움으로 다시 세상을 보는 설정이다. 그런데 이런 장면이 더 이상 허구만은 아니다. 최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의대 연구팀이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NEJM)’에 발표한 연구에서 실명한 환자에게 전자칩을 이식해 시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연구팀은 이 질병을 극복하기 위해 망막 아래에 이식할 수 있는, ‘프리마(PRIMA)’라는 이름의 초소형 실리콘 칩을 고안했다. 이 장치는 지름이 2밀리미터(mm), 두께는 30마이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빛을 전기자극으로 바꾸는 초미세 광다이오드 378개가 들어 있다. 환자는 카메라가 달린 특수 안경을 착용해야 하는데, 이 카메라가 외부 풍경을 포착해 눈으로 보내면 칩이 그 빛 신호를 전기신호로 바꿔 망막 신경세포를 자극한다. 망막이 해야 할 일을 칩이 대신 수행해 뇌가 다시 ‘보는 감각’을 느끼도록 돕는 것이다.
연구팀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5개 국가의 17개 병원에서 노인성 황반변성으로 시야를 잃은 환자 38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칩 이식 후 1년간 추적 관찰 결과, 약 81% 환자의 시력이 평균 0.2로그시력(logMAR)만큼 향상됐다. 시력 검사표로 보면 약 두 줄 정도 더 또렷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개선된 것이다. 또 환자의 80% 이상이 일반적인 인쇄물에 적힌 글자를 읽었고, 대부분은 밝은 곳과 어두운 곳을 구분할 수 있었다. 수술 후 나타난 가벼운 염증이나 시야 혼탁 등의 부작용도 대체로 두 달 이내 사라졌다.
시력 회복뿐 아니라 편의성도 뛰어났다. 앞서 실명 치료를 위해 개발한 인공 망막은 외부 전선을 연결해야 했는데, 프리마는 카메라에서 오는 적외선을 전기로 만들어 스스로 동력을 얻는다. 덕분에 전선이 필요 없고, 두께도 훨씬 얇아 남은 주변 시야도 보존된다.
물론 프리마가 시력을 완전하게 돌려주는 건 아니다. 환자들이 보는 이미지는 여전히 흐릿하고 단색에 가깝다. 하지만 연구팀은 전극의 밀도를 높이고, 인공지능(AI) 영상처리 기술을 더하면 해상도를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앞으로는 칩을 여러 개 연결해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하거나 눈 대신 뇌의 시각피질에 직접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한편 시력 회복과 관련된 비슷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연구팀은 ‘시각피질 자극형 인공 시각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망막이 아닌 시각피질(눈을 통해 들어온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대뇌피질의 한 부분)에 전극을 심어 외부 카메라가 포착한 영상을 전기신호로 바꿔 뇌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망막이 손상돼도 빛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아직은 ‘흑백 그림자’ 수준의 시야를 제공하지만, 연구팀은 전극의 수를 늘리고 신호 해석 알고리즘을 개선하면 물체의 형태나 움직임까지 구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동물실험을 거쳐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준비 중이다.
잃어버린 감각을 되돌리는 연구는 단순한 치료를 넘어 감각을 설계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인공눈은 단지 시력을 되돌리는 도구가 아니라 영화에서처럼 어둠 속에서 사물을 정확하게 보거나 원하는 크기와 속도로 볼 수 있는 새로운 감각 장치가 될지도 모른다. √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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