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의 열쇠 '리튬'
리튬은 원자번호 3번의 알칼리금속이다. ‘리튬’ 하면 대부분 스마트폰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 금속이 우리 뇌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 놀라운 점은 리튬이 알츠하이머병의 발생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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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이다. 뇌 속의 신경세포(뉴런)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뇌가 쪼그라들고, 기억력과 판단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이 점점 떨어져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는 질병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치매를 앓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커지는 탓에,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환자 수는 급격히 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50년경 전 세계 치매 환자 수가 지금의 3배인 1억5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알츠하이머병은 미래 보건과 사회경제 전반에서 인류가 맞닥뜨릴 가장 큰 도전 과제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알츠하이머 원인을 규명하고 치료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를 이어왔다. 지금까지 밝혀진 주요 원인은 두 가지 독성단백질이다. 첫째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 조각이다. 이 단백질이 제대로 분해되지 못하고 신경세포 바깥에 끈적하게 뭉쳐 플라크를 형성한다. 플라크는 세포 사이의 쓰레기 더미처럼 작용해 정보 전달을 방해하고 염증을 일으켜 세포를 손상시킨다.

둘째는 ‘타우’ 단백질이다. 타우는 원래 신경세포 안에서 미세소관이라는 구조물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미세소관은 세포 안에서 영양분이나 정보를 운반하는 고속도로와 같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타우가 비정상적으로 인산화되는, 즉 과인산화 현상이 나타난다. 이에 따라 타우가 제 기능을 잃고 서로 엉겨 붙어 신경섬유 다발을 형성한다. 그 결과 미세소관이 파괴되고, 신경세포의 운반 자체가 마비되어 결국 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죽게 된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 두 단백질을 제거하면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연구가 쌓이면서 단백질 변화만으로는 모든 증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과학자들은 더 근본적인 발병 요인을 찾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이 뇌 속 리튬이 알츠하이머병의 진행과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인지기능이 정상인 사람, 경도 인지장애 환자, 알츠하이머 환자의 사후 뇌 조직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건강한 사람의 뇌에는 일정량의 리튬이 있었지만, 치매가 진행될수록 뇌 속 리튬 농도가 크게 낮아졌다. 특히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뇌에서는 리튬이 아밀로이드 플라크에 결합돼 있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연구팀은 리튬이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노화로 인한 손상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리튬은 비타민이나 철분처럼 아주 미량이지만 신경세포 유지에 꼭 필요한 물질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쥐 실험으로 이를 확인했다. 쥐에게 리튬을 없앤 먹이를 먹였더니, 뇌가 빠르게 늙어갔다. 리튬 농도가 낮아지자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급격히 늘고, 신경세포의 연결이 끊어지며 염증이 증가했다. 기억력도 크게 떨어졌다. 리튬 결핍이 알츠하이머병과 비슷한 변화를 직접 유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리튬을 보충하면 어떨까? 연구팀은 다양한 리튬 화합물을 쥐에 투여했는데, 이 중 오르트산리튬(리튬 오로테이트)이 인지기능을 회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물질은 아밀로이드 플라크에 잘 붙지 않아 뇌에서 자유롭게 작용할 수 있다. 심지어 나이가 많은 쥐에서도 기억력이 회복되는 효과를 보였다. 또 쥐가 어릴 때부터 일정한 리튬 농도를 유지하면 알츠하이머 발병 자체를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리튬은 양극성장애나 우울증 치료에도 쓰이지만, 고농도에서는 독성이 강하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사용한 리튬 오로테이트는 기존 약물 농도의 1000분의 1 수준만으로도 효과를 보였고, 쥐에 평생 투여해도 독성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를 이끈 브루스 얀크너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는 “쥐 실험 결과를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향후 임상시험을 통해 리튬의 효과가 확인된다면 혈중 리튬 측정은 알츠하이머병을 선별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리튬 화합물은 알츠하이머 예방 또는 치료제로 개발될 수 있다. 리튬이 ‘배터리의 금속’을 넘어 ‘기억의 금속’으로 불릴 날이 올 수 있을지 지켜보자.√ 기억해주세요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前 동아사이언스 기자
지금까지 밝혀진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 조각이다. 이 단백질이 제대로 분해되지 못하고 신경세포 바깥에 끈적하게 뭉쳐 플라크를 형성한다. 플라크는 세포 사이의 정보 전달을 방해하고 염증을 일으켜 세포를 손상시킨다. 둘째는 ‘타우’ 단백질이다. 타우는 원래 신경세포 안에서 미세소관이라는 구조물을 안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미세소관은 세포 안에서 영양분이나 정보를 운반하는 고속도로와 같다. 그런데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는 타우가 비정상적으로 인산화되어 제 기능을 잃고 서로 엉겨 붙어 신경섬유 다발을 형성한다. 그 결과 미세소관이 파괴되고, 신경세포의 운반 자체가 마비되어 결국 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