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수능전 논술' 대학 유형 ① 연세대
연세대학교 인문논술은 매년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그 안에 흐르는 출제 철학은 일관됩니다. 하나의 시험지 안에서 철학·문학·사회과학·통계·수리까지 넘나들며, 수험생에게는 단순한 암기력이 아니라 교차 해석 능력을 묻습니다. 문제의 표면은 늘 달라지지만, 그 속에 숨은 구조와 대비의 방식은 꾸준히 반복됩니다.

연세대학교 인문논술은 해마다 다른 얼굴로 등장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논리의 뼈대는 놀라울 만큼 견고합니다. 3개년간 기출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다 보면, 출제진이 수험생에게 묻고 싶은 것은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단편 지식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상이한 학문 언어를 횡단하며 관점을 세우고, 자료를 근거로 그 관점을 검증하며, 계산의 결과를 사회적 언어로 번역하는 힘입니다. 말하자면 철학과 사회과학, 통계와 수리, 그리고 때로는 영어 텍스트까지 한 호흡으로 묶어 서사의 줄기를 뽑아낼 수 있는지를 본다는 뜻입니다.
[2026학년도 논술길잡이] 철학·과학·수리 넘나들며 해석 가능한지 평가
[2026학년도 논술길잡이] 철학·과학·수리 넘나들며 해석 가능한지 평가
[2026학년도 논술길잡이] 철학·과학·수리 넘나들며 해석 가능한지 평가
2023학년도 1번 문항군은 한 제시문을 ‘기준 틀’로 삼아 다른 제시문을 설명하게 합니다. 해석의 방향이 정해지면 비교는 수월해집니다. 기준이 서면 관점의 공통분모와 차이를 명료하게 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24학년도 1-1은 이 방향을 뒤집어, 구체적 경험의 서사를 매개로 두 이론을 재단하게 했습니다. 추상적 개념을 사례로 검증하는 변주입니다. 결국 두 해가 요구한 사고의 규율은 동일합니다. 관점을 정의하고, 동일한 사실을 서로 다른 언어로 해석해본 뒤, 어느 언어가 무엇을 더 잘 설명하는지 근거를 들어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눈으로 보느냐’입니다. 관점은 문장의 첫머리에서 선언되어야 하고, 비교는 선언된 기준 위에서만 유효합니다. 1-2문항은 외부의 창을 열어줍니다. 2023학년도에서는 산업문명의 압축 서사를 불러와 기술을 둘러싼 논지를 재평가하게 했고, 2024학년도는 세계시민주의라는 윤리적 프레임을 도입해 화자의 내면 변화를 다시 읽게 했습니다. 외부 틀을 가져오는 순간, 텍스트는 단순 해석의 대상에서 토론의 장으로 변합니다. 자신의 잣대가 생기면, 같은 문장도 다르게 들립니다. 이때 가장 흔한 실수는 외부 틀의 표어만 반복하는 것입니다. 연세대는 구호를 묻지 않습니다. 외부 틀의 작동 원리를 두세 문장으로 압축해 밝히고, 그 원리가 실제 텍스트의 장면에 어떻게 닿는지를, 전환의 순간들을 짚어가며 보여달라는 요구를 합니다. 보편적 의무와 정체성의 충돌, 감정적 동일시와 규범적 판단의 긴장, 이런 대목을 구체적 장면과 함께 포착하는 문장이 점수를 만듭니다.

2번 문항군에 이르면 시선은 표와 그래프, 혹은 사례의 구조로 옮겨갑니다. 2023학년도 2-1은 현실의 서술을 분석해 다시 관점 평가로 되돌렸고, 2024학년도 2-1은 철학적 관점을 렌즈로 삼아 데이터의 무늬를 읽게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를 옮겨 적는 정직함이 아니라, 숫자들 사이의 관계를 의미망으로 엮어내는 상상력입니다. 전후 변동, 집단 간 격차, 지표 간 상관, 그리고 숨은 교차 효과를 포착해야 합니다. 그다음에야 철학적 언어가 등장합니다. 의무의 보편성과 공리의 총합, 권리의 한계와 책임의 확장 같은 개념은 데이터가 말하는 방향을 설명하는 데 쓰일 때 비로소 힘을 얻습니다. 관점이 데이터를 밝히고, 데이터가 관점을 가다듬는 왕복 운동이 필요합니다. 연세 인문논술의 백미는 2-2에서 드러납니다. 수학적으로는 경계와 극값의 비교, 정책적으로는 내부 최적과 세계 최적의 간극, 윤리적으로는 자국민 중심성과 보편적 고려의 긴장을 하나의 문단 안에서 잇는 작업입니다. 계산을 끝내고 연필을 내려놓는 순간이 아니라, 계산을 끝낸 뒤 펜을 들어 언어로 해석을 시작하는 순간이 진짜 답안의 시작입니다.

영어 지문은 수험생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지만, 여기에도 일관된 접근법이 있습니다. 연세대가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번역이 아니라 수사의 구조를 읽는 능력입니다. 가치어가 무엇을 호출하는지, 청중에게 던지는 요구가 어떤 행동을 정당화하는지, 미래의 비전을 어떻게 현재의 희생과 연결하는지를 뼈대로 정리하십시오. 짧은 한국어 문장 네댓 개로 ‘호소의 대상, 핵심 가치, 근거의 형식, 전망의 구조’를 잡아놓고 본문에 배치하면, 번역의 정확성이 다소 흔들려도 논증의 흐름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의미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일이지, 어휘의 일대일 치환이 아닙니다.

수험생 여러분은 첫째, 문장 앞에서 관점을 세우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서론 두 문장 안에서 판단 기준을 명사형으로 선언하면, 본론의 비교와 자료 해석은 자연히 그 기준 위에 정렬됩니다. 둘째, 자료를 읽을 때는 읽는 순서를 미리 정하십시오. 집단, 시점, 지표의 순서로 훑어보며 변동의 방향을 메모하고, 교차되는 지점에서 멈춰 가설을 세우는 연습을 반복하면, 표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논증의 도구로 바뀝니다. 셋째, 수리 문항은 목적함수를 말로 쓰는 연습이 반입니다. 편익에서 비용을 뺀 구조, 상한과 하한의 의미, 미분의 부호가 정책 언어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한 문장으로 대응표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600자라는 그릇을 의식하십시오. 서론 두 문장, 본론 여섯 문장, 결론 두 문장 정도의 리듬을 몸에 익히면, 어떤 제시문이 오더라도 문장 수를 바꾸지 않고 내용을 갈아끼울 수 있습니다. 글쓰기의 형식은 안정감을, 내용의 변주는 활력을 제공합니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무엇보다 자신의 글을 채점자의 눈으로 한 번 더 읽어보십시오. 관점이 문두에 선언되어 있는가, 비교의 축이 2개 이상 분명한가, 자료의 관계를 설명하는 문장이 있는가, 계산 결과가 정책적 결론과 윤리적 함의로 번역되었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예라고 답할 수 있다면 이미 연세 인문논술의 정중앙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덧붙여, 긴장되는 영어 텍스트가 등장해도 호흡을 고르십시오. 가치와 호소, 근거와 전망을 각각 한 줄로 뽑아 한국어로 재배열하면, 낯선 문장이 익숙한 논증으로 바뀝니다. 그때 비로소 언어가 다르고 표기가 달라도, 논술의 핵심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됩니다. 지식의 창고를 얼마나 크게 쌓았느냐보다, 다른 언어의 방들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드나들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