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이들 법 개정은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내용이 많아 청소년이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엔 어렵습니다. 하지만 법 개정의 목적이 무엇이고, 왜 찬성과 반대가 극명하게 갈렸는지, 관련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어떤지 알아볼 필요는 있습니다. 여당의 설명대로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근로자와 소수주주만 약자고, 기업은 항상 강자인지 되물을 수도 있습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선의(善意)만 담으면 정책은 저절로 효과를 내는지도 궁금합니다. 역사와 현실은 반대 효과를 낸 경우가 많았어요. 이런 얘기들을 4·5면에서 풀어보겠습니다.노사 상생 돕고 경영 투명성 높인다지만
기업활동 위축되면 모두가 손해 아닐까?

기업의 대항권 미비한 상법
여권의 이번 상법 개정은 이사회 이사의 의무, 감사위원회 감사위원 선임 권한, 소수주주의 의결권 강화(집중투표제 도입)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예를 들어, 이사는 그동안 회사에만 충실하면 됐는데, 앞으로는 회사뿐 아니라 주주를 위해서도 충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회사에 이로우면 주주에게도 득이 될 것 같지만, 이런 등식이 항상 성립하진 않습니다. 만약 주주에게 주는 배당금을 예년보다 늘리기 위해 회사 설비투자를 줄여야 한다면 주주에겐 좋은 일이 회사엔 나쁜 선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법 개정의 취지는 이사가 중요 의사결정을 할 때 회사의 이익과 미래는 물론 주주에게 미칠 영향도 충분히 고려하라는 겁니다. 여기엔 ‘소수주주 권익 보호’라는 선의(善意)를 담았지만, 현실에선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단기적 시세차익을 노리고 주식을 매입하는 투기자본이 이 개정 조항을 들어 경영 간섭을 노골화할 수 있어요. 주주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이사회 결정에 대한 소송이 크게 늘어나면 이에 부담을 느낀 이사회는 과감한 투자나 인수합병 같은 적극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힘들어집니다.
흔히 ‘오너’라고 얘기하는 기업의 최대주주가 감사위원회 감사를 선임할 땐 주식을 얼마나 가졌든 의결권을 3%밖에 행사하지 못합니다. 이번 법 개정에서 여기에 규제가 하나 덧붙여졌습니다. 이사회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는 감사위원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한 겁니다. 이에 따라 기업 오너는 감사위원 2명을 뽑는 데서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이 틈바구니를 이용해 소수주주와 투기자본 측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지고 대주주의 의결권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기업의 중요 정보가 유출되고 경영 간섭이 생겨날 우려가 크다고 재계는 지적합니다. 선의만 담으면 과연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발휘할까요?
글로벌 스탠더드는 뭘까?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을 뜻하는 노란봉투법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 법안의 별명은 2009년 쌍용자동차 노조가 불법 파업을 벌인 데 대해 법원이 47억원의 배상금 결정을 내리자 시민단체 등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모은 데서 이름 붙었습니다. 현행 법률은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기업이 노조나 노동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정 법률은 손해배상 청구를 어렵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노조가 회사 측의 불법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손해를 입혔다면 배상책임을 지우지 못하게 했죠. 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영상의 결정에도 파업 등으로 맞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습니다. 재계에선 공장 증설, 해외투자 등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준다며 노조가 파업을 벌일 가능성을 걱정합니다. 기업은 파업 때 대체근로자 투입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노조 측에만 유리한 입법이 이뤄진다면 한국 내 기업 경영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어요.
이런 변화가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느냐는 부분에선 논란이 있습니다. 위의 ‘경영상 결정’에 대한 노동쟁의 인정은 미국 등에선 개별 소송해 판례로 인정되는 게 전부입니다. 처음부터 법률로 ‘이런 파업은 가능하다’는 식의 규정은 없지요. 하청기업의 노조와 원청 기업 경영진 간 단체교섭도 법률로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근로자는 약자, 기업은 강자’라는 프레임이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싶습니다.NIE 포인트1. 상법은 무엇을 규율하는 법인지 살펴보자.
2. 최대주주는 어떤 수단으로 기업을 지배하는지 알아보자.
3. 행동주의 펀드는 투기자본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해 공부해보자.좋은 의도만으론 문제 해결 어려워
시장원리에 맞게 정책 짜는 게 중요

정책무력성이 하나의 원인
사람들은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예상합니다. 새고전학파(New Classical)라는 경제학파는 사람들이 소비·저축·투자·취업 등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할 때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를 한다고 가정합니다. 인간이 과연 합리적 존재인지 논란은 있지만, 큰 틀에서 그렇다고 봅니다. 만약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리고 돈을 많이 푸는 금융정책을 펴 경기를 부양하려 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할까요? 가장 먼저,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예상할 겁니다. 가계는 미래의 지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소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국채 발행을 늘리고, 그 결과 국채 가격이 떨어지며 시중금리는 올라갈 수 있어요. 이 경우 민간기업의 투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지출의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입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단기적으론 나라 전체의 총수요를 늘릴 수 있어도, 이런 합리적 기대하에선 장기적으로 큰 변화를 주지 못한다고 봅니다. 경제주체가 정부 정책의 효과를 예상하고 의사결정을 하면 경기부양이나 실업 감소 등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못하는 거죠. 이를 합리적 기대에 따른 ‘정책무력성 명제 (policy ineffectiveness proposition)’라고 이론적으로는 얘기합니다.
풍선효과도 있어요
다음으로 경제학 이론은 아니지만 ‘풍선효과(ballon effect)’라는 것이 있습니다. 정책을 내놓으면 어느 정도 효력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풍선의 한 곳을 누르면 다른 곳이 불거져 나오는 것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자제한법에서 법정 최고이자를 낮춰 고금리에 시달리는 어려운 사람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은 대출 심사 과정에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가산금리를 높게 붙이지 못하게 되고, 결국 경제적 약자들이 대출 자체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입니다. 최고이자 제한의 역설이라고 볼 수 있죠.
쌀이 과잉 생산된 경우 정부가 남는 쌀을 적극 매입해주면 쌀 가격 등락에 따른 농민의 위험부담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하지만 이는 쌀 공급과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농민들이 위험부담 없이 계속해서 쌀농사를 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이 민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국민경제 전체에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경제민주화라는 신념
마지막으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의 문제입니다. 이는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경제주체 간 기울어진 운동장(형평성)을 바로잡자는 것으로, 한때 많은 논란을 불러왔죠. 이런 생각에선 경제적 약자를 도울 수 있다면 시장경제의 근본 원리인 사적 계약 책임 등은 쉽게 무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조업체가 생산한 제품을 운송사업자가 배송해주는 계약을 맺었다고 합시다. 운송사업자는 계약의 상대방임에도 상당 기간 일정한 방식으로 화물운송을 지시받았다며 자신들은 노동자에 가깝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운송을 맡긴 제조업체와 운송료 협상을 벌이고, 마치 노동자처럼 파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만약 경제민주화 관념에 기울면 이들의 노동자 성격을 인정해주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이 또한 시장경제의 근본 원리보다 선의를 앞세운 정책 방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이기심이 원인이 된 경제행위가 시장에서 잘 교환만 된다면 굳이 선의를 담은 정책을 인위적으로 내놓을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기심이 마치 잘 고안된 시스템처럼 작동하면 인위적 선의보다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NIE 포인트1. 정책무력성 명제에 대해 좀 더 공부해보자.
2. 사람은 과연 합리적 존재인지 친구들과 토론해보자.
3. 애덤 스미스의 여러 저서에 나오는 명언을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