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꿈꾸기 위해 필요한 2가지, 돈과 자기만의 방](https://img.hankyung.com/photo/202509/AA.41614318.1.jpg)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픽션’ 강연 서두에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낳고 가사를 하며 남편을 도왔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노부인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조화를 만들고, 유치원 아이들에게 철자법을 가르치며 몇 파운드 버는 정도였다.
여성의 지위가 형편없어서 도서관 입장도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 가능했다. 힘들게 도서관에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들이 쓴 여성에 관한 엄청나게 많은 책을 보고 경악했다. “대부분의 여성은 성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라브뤼예르), “여성은 교육받을 수 없다”(나폴레옹), 여성을 경멸한다(무솔리니)는 내용부터 여성을 찬미하는 괴테까지 여성에 대한 상반된 견해가 난무했다. 여성은 남성을 2배 확대한 거울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2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닌 거울 노릇을 해왔습니다. 그 마력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마 지금도 늪과 정글뿐일지도 모르지요”라고 피력하며 “만일 여성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다면 거울 속 형체는 오그라들 것이고 삶에 대한 적응력도 감소할 것입니다”라고 정곡을 찔렀다.
여러 상황이 여성에게 불리할 때 어떻게 버지니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탁월한 기법으로 소설을 쓰고 당당한 의견을 담은 에세이를 발표했을까. 숙모 메리 비턴이 사망하면서 남긴 유산을 매년 500파운드씩 받게 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1920년대 500파운드를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4500만 원에 이른다.
생활비가 확보되자 버지니아 울프는 “신문사에 잡다한 일자리를 구걸하거나, 여기에다 원숭이 쇼를 기고하고 저기에다 결혼식 취재 기사를 쓰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됐다.
요즘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원하지 않는 일을 늘 하고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영혼도 소멸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남녀 상관없이 넘쳐난다. 버지니아 울프는 그런 이들을 위해 자기만의 방이 없어 거실에서 고군분투하며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을 소개했다. 아울러 브론테 자매, 조지 엘리엇에 관한 이야기도 기록했다. 영국 사교계는 여성 작가들을 ‘블루스타킹’이라고 조롱했지만, 1880년대에 활동한 4명의 여성 작가는 세계가 인정하는 명작을 남겼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 작가들을 다룬 최초의 문학사로도 인정받는다. 마음 전체가 활짝 열려야발표 당시에 별다른 반향이 없었던 <자기만의 방>은 1970년대 이후 각광받으며 페미니즘 비평의 물꼬를 텄다. 그와 함께 ‘자기만의 삶’, ‘자기만의 목소리’, ‘자기만의 수입’ 같은 제목의 비평과 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적인 힘과 여성적인 힘이 우리 인간의 내면세계를 관장하고 있고, 두 가지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정신적으로 협력할 때 정상적이고 편안한 상태가 된다”면서 “창조적인 예술이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먼저 마음속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이 협력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충실하게 전달한다는 느낌을 주려면 마음 전체가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