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선배가 후배에게

저는 수능이 채 한 달이 안 남았을 때 백지도를 프린트해서 그 위에 지역명을 쓰면서 외웠습니다. 얼핏 보면 세계지리에 어울릴 공부이지만, 세계사에도 꼭 필요한 공부법입니다.
[대학 생글이 통신] 세계사 공부 효과 높이는 '지도 익히기'
수험생들은 세계사는 암기를 잘해야 하는 과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세계사 문제 대부분은 내용을 암기하고만 있으면 빠르게 풀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게 출제되지는 않습니다.

2025학년도 9월 모의평가 19번은 지리적 지식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전형적인 문제입니다. 오스만 제국에 관한 선지 중 ‘북아프리카의 트리폴리를 점령하였다’를 맞는 것으로 골라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를 풀려면 트리폴리의 위치를 알아야 했습니다. 트리폴리는 현재 리비아의 수도로, 전성기 시절 오스만 제국에 속했던 지역입니다.

‘트리폴리’라는 지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에 나온 것은 처음이었기에 수험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 문제의 정답률은 23.7%에 불과했습니다. 수능 전 마지막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이 문제를 접한 저는 매우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를 틀렸기에 세계 지도를 익힐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파탈리푸트라, 푸르샤푸라(현 페샤와르), 하라파, 모헨조다로, 콜카타, 뭄바이, 고아…. 생소하지만 모두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인도의 주요 도시명입니다. 세계사는 모든 나라의 역사를 균등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중동 지역이나 인도는 현재 수도가 아닌 곳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은 개항장을 외워야 합니다. 제국주의 시대 유럽의 식민지가 어느 나라였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수능이 채 한 달이 안 남았을 때 백지도를 프린트해서 그 위에 지역명을 쓰면서 외웠습니다. 얼핏 보면 세계지리에 어울릴 공부이지만, 세계사에도 꼭 필요한 공부법입니다.

여러분도 지리에 대한 감을 익혔으면 좋겠습니다. 역사학은 시간과 공간의 학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수험생이었던 저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지도를 펼쳐 보니 책으로 볼 때는 인쇄된 글자에 불과해 보였던 세계사 속 인물과 사건이 지도 위에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해 보길 바랍니다.

인더스강을 넘은 아리아인들, 메카에서 메디나로 망명한 무함마드, 카이펑에서 항저우로 떠난 송나라 문인들. 호르무즈, 믈라카, 파나마 운하도 지도를 보면 왜 중요한 지역인지 알 수 있습니다. 타이가 제국주의 시대에 중립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뉴스에도 많이 나오는 카슈미르는 왜 분쟁 지역이 됐는지 지리와 함께 세계사를 공부하면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임희연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25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