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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우리나라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미국이 주도한 관세전쟁 영향으로 수출이 위협받고, 내수는 구조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죠.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복되는가 싶던 경제성장률은 올해 1%에 이르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률 최대치인 잠재성장률도 2040년엔 0%대로 떨어질 것이란 예측마저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이 내거는 경제 공약에 더욱 주목하게 됩니다. 빚(국가부채)을 내서라도 재정 투입을 늘리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성장을 이끌게 해야 한다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의 주장이 맞섭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일본에선 각각 대규모 감세를 추진하고 거액의 국채 발행으로 재정지출을 늘리려다 지난달 21일 국채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를 맞았습니다. 재정적자가 심화하면 최고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도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웠죠. 나랏빚을 함부로 늘려선 안 된다는 경고입니다.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우리나라의 국가부채 비율은 2010년대 중반 34%를 유지했습니다. 이게 지금은 46%까지 늘어났어요. 비(非)기축통화국 가운데 두번째로 빠른 증가속도입니다. 한국의 나랏빚은 어느 정도가 적정할까요? 적극적 재정정책을 펴는 것과 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이어지는 4·5면에서 살펴봤습니다.정부 돈 풀면 '경기 마중물' 될 수 있지만
지속 발전 위해선 재정 건전성도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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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이론에서 국내총생산 또는 국민소득(Y)은 소비(C), 투자(I), 정부지출(G)의 합으로 구성됩니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Y=C+I+G’입니다. 민간의 소비지출과 투자는 경제 상황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만, 정부지출은 정책적 필요에 의해 결정되는 차이점이 있어요. 즉 경기가 침체할 때는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일으켜세우고, 경기가 과열될 때는 이를 줄여서 경기를 진정시키려 하죠. 바로 ‘적극적 재정정책’입니다. 경기변동의 진폭을 줄이고 경제를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이만한 수단이 없습니다. 통화량과 금리를 조절하는 중앙은행의 금융통화정책만큼 중요하죠.

적극적 재정정책의 필요성

정부의 경제 개입을 중시하는 적극적 재정정책의 뿌리는 케인스학파입니다. 케인스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비판하는 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해 “종국엔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는 말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경제가 스스로 다시 균형을 찾을 수 있겠지만, 이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라는 거죠. 그사이 경기침체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에 손 놓고 있을 순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즉각 나서서 민간의 유효수요를 증대시키고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승수효과(multiplier effect)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여기죠.

승수효과는 대선 TV 토론에서 화제가 됐어요. 돈이 돌고 돌아야 경제가 활성화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수효과의 진정한 의미는 정부가 재정지출을 늘릴 때 경제는 더욱 활성화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효과의 크기를 따져보는 게 순서겠죠?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의 승수효과가 1이 안 된다고 봅니다. 대략 0.6~0.7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재정을 1억원 지출하면 국내총생산은 약 7000만원밖에 늘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가장 큰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재정지출로 불어난 돈을 사람들이 일부 저축을 하면서 그만큼의 돈이 회전하지 않게 됩니다. 다음으로 정부가 지출을 늘리기 위해 대개 국채를 발행하는데,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 국채 가격은 떨어지고 국채수익률(이자율)은 반대로 상승합니다. 이로 인해 시중금리가 올라가면 민간 투자는 줄어듭니다. 은행이자가 높아지니까 예전만큼 투자하지 않는 거죠. 이를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고 합니다. 정부지출 증가가 민간투자를 구축한다. 즉 쫓아내버린다는 뜻입니다.

재정 튼튼해야 위기 극복 가능

재정 또는 재정정책의 역할만큼 중요한 것이 ‘재정의 건전성’입니다. 이는 나라 살림이 부실해지지 않도록 재정을 잘 관리하고 튼튼하게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부는 갑작스러운 경기침체나 자연재해, 감염병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한 해 예산으론 부족한 경우가 많죠. 이때 국채를 발행하는데, 이것은 곧 나라가 빚을 지는 겁니다. 국가 재정이 튼튼하다면 국채 이자를 수월하게 갚을 수 있기 때문에 위기 대응을 위한 정책자금을 신속하게 마련할 수 있죠.

하지만 국가 재정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정의 적극적 역할만 강조하다가는 국가부채가 지나치게 커질 위험이 있어요. 재정수지는 한번 악화하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채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습니다. 재정이 약해지면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환율·금리 불안 등으로 국민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재정 여력이 충분해야 복지국가의 이상도 지켜나갈 수 있어요.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로 점점 더 세금 내는 사람은 줄어들고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하는 노령층은 늘어나기 때문이죠. 건전한 재정은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민의 세부담도 줄여줍니다. 재정이 건전해 국가신용등급이 높아지면 국채 발행금리를 낮출 수 있습니다. 국채 이자 부담이 줄면 그만큼 세금을 적게 걷어도 됩니다. 결론적으로 재정건전성은 국민의 삶을 보호하고,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며, 위기 대응과 복지, 경제성장의 기반이 됩니다. 재정이 튼튼해야 국민이 안심하고 일상을 영위할 수 있으며,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루어집니다.NIE 포인트1. 재정정책의 유효성을 둘러싼 케인지안과 고전학파 간 논쟁에 대해 알아보자.

2. 승수효과와 구축효과의 의미를 깊이 공부해보자.

3.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는 어떤 게 있는 지 파악해보자.과도한 재정 확대, 미래세대 부담 '부메랑'
위기때 푼 돈, 정상화되면 거둬 들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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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적자와 국가부채 문제를 언급할 때 ‘가계부채 비유(Government-Household Analogy)’를 많이 듭니다. 정부의 재정 운영을 가정의 살림살이에 빗댄 것이죠. 가정에 수입보다 지출이 많으면 빚이 쌓이고 파산에 이를 수 있듯이, 정부도 재정적자가 계속되고 국채 이자부담이 지나치게 커지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금융위기 등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가계와는 다른 정부

이 비유는 그러나 복잡한 정부 재정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화폐를 발행할 수 있고, 세금을 거둬 추가적인 재정 수입을 늘릴 수 있으며, 경제성장을 통해 부채를 갚아나갈 수 있습니다. 국채의 만기는 민간보다 길고, 평상시 나라빚에 대한 견제 장치도 민간보다 강합니다. 예를 들어, 가계는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을 때 연 소득의 4~5배까지 은행에서 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총생산(GDP)의 100%까지 국가부채를 늘리기 어렵습니다. 그 정도로 국채를 발행하면 시장수요가 받쳐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부와 가계의 차이를 이해해야 하고, 국가 재정에서 단순히 빚 관리만 중요하다고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국가부채는 미래 세대의 부담이 아닌 현재의 투자 수단”이라며 국가부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합니다. 이는 ‘정부 예산 제약식’을 통해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식에선 국가부채는 현재가치로 평가한 미래의 재정 흑자의 합과 같아야 합니다. 원래는 재정수지의 균형을 강조한 건데요,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수학의 미분을 통해 이 식을 단순화하면, 이자율과 경제성장률이 같아지는 선까지는 정부지출을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임계치 넘은 그리스와 일본

나랏빚 문제는 역사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먼저 재정투입의 중요성을 강조한 케인스학파의 정책은 1930년대 대공황 극복에 큰효과를 발휘했습니다. 이후 케인스학파는 세계 경제학계의 주류를 형성합니다. 세계 각국은 국가부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재정정책을 적극 활용해 시장에 개입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재정 확대로 국가부채가 임계치를 넘어서면서 큰 위기를 맞은 나라도 있습니다. 2009년 GDP 대비 국가부채가 130%까지 늘어난 그리스의 재정파탄이 대표적입니다. 1980년대 좌파 사회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국민이 원하면 다 줘라”는 식으로 이른바 ‘퍼주기 정책’을 폈습니다. 65세 이상 무주택자에게 주택수당 월 360유로(현재 환율로 56만원)를 지급했어요. 또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퇴직 전 연봉 대비 지급액 비율)을 95%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일본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다가 장기침체에 빠진 경우입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해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잘못 판단하고, 재정지출을 확대하다가 경기회복은커녕 재정수지만 악화시켰습니다.

‘60%-3% 룰’ 주목

국제경제기구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늘어난 각국의 정부지출, 그에 따른 재정수지 악화를 경고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돈을 풀었으니, 위기가 지난 뒤엔 다시 돈을 조여야 한다고 강조했죠.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는 재정적자가 계속 늘고 있어 문제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미국의 국가부채 문제가 세계경제에 심각한 위험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올해 미국 재정적자는 GDP 대비 7.1%로, 선진국 평균(약 2%)의 3배를 넘습니다. 경제 전문가들은 재정건전성의 기준으로 ‘60%-3% 룰(rule)’을 듭니다. 즉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60% 이내, GDP 대비 재정적자의 비율은 3% 이내로 유지해야 재정이 건전하다고 평가합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비(非)기축통화 국가는 50% 이내로 국가부채 비율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빚을 줄이라”는 주문은 아닙니다. 경제성장과 안정의 균형을 잘 찾으라는 얘기입니다.NIE 포인트1.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국채 발행에 문제가 없다는 논리가 과연 맞을까?

2. 그리스로부터 시작된 유로존 재정위기에 대해 살펴보자.

3. 재정준칙이란 무엇이고,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도입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