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위키피디아 제공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 /위키피디아 제공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은 경쾌한 리듬과 유머를 바탕으로 권선징악과 같은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가치에 기반을 둔다. 빠른 템포와 리듬감이 있는 문체가 책 읽기를 즐겁게 하는데, <도련님>이야말로 재미와 의미가 넘쳐나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도련님>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과 함께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소설이다.

1867년생인 나쓰메 소세키는 도쿄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했다. 1900년 국비 유학생에 선발되어 영국으로 유학 갔다가 신경쇠약에 빠진 그는 귀국 후 도쿄제국대학의 강사로 재직하면서 정신 질환을 앓았다. 치유의 한 방편으로 소설 쓰기를 시작해 ‘일본 국민 작가’에 오른 그의 작품은 “일본적 감수성과 윤리관으로 서구 근대의 기계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평적으로 바라보며 인간세계를 조명한다”는 평가를 받는다.말썽만 피우던 도련님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초보 교사의 천방지축, 그 속에서 빛나는 의리
“나는 어릴 때부터 천성적으로 타고난 덤벙거리는 기질 때문에 실수만 해왔다”로 소설이 시작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이 녀석은 변변한 인간이 못 될 게 뻔해”, “너 같은 놈은 꼴도 보기 싫다”는 말을 듣지만 할머니 하녀 기요는 “도련님은 솔직하시고 좋은 성격을 가지셨어요”라고 칭찬한다. 늘 야단만 맞는 나는 기요에게 아첨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를 깊이 의지한다.

나는 졸업한 지 8일 만에 교장이 권한 시골 중학교로 향한다. 교사가 될 생각도, 시골로 갈 마음도 없었지만, 덤벙꾼 기질이 발동한 나는 태어나서 줄곧 살아온 도쿄를 떠나 시코쿠에 도착한다. “구경하는 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좁은 도시로 그 어디를 보나 특이한 사건 없는 따분한 곳”이다.

나는 첫날 교무실에서 만난 선생들을 이름 대신 별명을 만들어 기억한다.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강셔츠, 영어 선생은 끝물, 수학 주임은 멧돼지, 미술 선생은 알랑쇠라는 식으로.

24세의 신입 수학 교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관심을 끈다. ‘도쿄’라는 간판이 달린 음식점에서 ‘덴푸라 국수’가 맛있어 네 그릇이나 먹었더니, 다음 날 교실 칠판에 “덴푸라 선생님”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학생들이 “와” 하고 웃으며 “네 그릇은 심했어라우” 하고 놀렸다. 웃고 넘기면 될 텐데 신입 교사는 “내 돈으로 내가 사 먹는데 무슨 상관이지?”라고 쏘아붙인다. 다음 교실에 들어갔을 때 “덴푸라 국수 네 그릇, 단 웃지 말 것”이라고 써 있었다. 부아가 난 초보 교사는 “공연한 억지 부리지 말고 공부나 해”라고 소리쳤고, 그 다음 교실 칠판은 “덴푸라를 먹으면 억지를 부리고 싶어진다”라고 화답했다.

첫 숙직을 하던 날 학생들에게 단단히 골탕 먹은 초보 교사는 교무실에서 선생들과 부딪치기 일쑤다. 이제 막 교사가 된 데다 낯선 도시에 온 나는 빨강셔츠와 알랑쇠의 계략에 말려들어 멧돼지를 오해하기도 한다. 한 여자를 사랑한 끝물 선생과 빨강셔츠 교감, 교감에게 잘 보이려는 알랑쇠, 다시 친해진 멧돼지와 나의 의기투합까지 교무실에서 겪는 초보 교사의 사회생활은 아슬아슬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도 응원하게 된다.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수학 선생사회 초년생의 기개가 살아 있는 초보 교사는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끝물 선생이 억울하게 사직한 일에 분개하고, 승전 축제 뒤풀이에서 자기 학교 학생들이 사범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이 붙자 온몸을 던져 말리다가 부상당한다. 멧돼지 선생과 함께 밤새워 감시해 빨강셔츠 교감의 불건전한 현장을 덮친 뒤 처단에 나서기도 한다.

간사하고 교활한 사람이 득세하는 데다 부정이 판치는 작은 사회를 맛본 나는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사표를 낸다. 빨강셔츠의 계략으로 멧돼지 선생이 사직한 일에 분개해서 내린 결정이다. 이력에 오점을 남긴다며 붙잡는 너구리 교장에게 “이력보다 의리가 소중합니다”라고 외친 나는 미련 없이 도쿄로 돌아간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도련님>은 천방지축이던 초보 수학 교사가 불과 한 달 만에 부쩍 성장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말썽꾼 같지만 올곧은 기질로 “그건 아니잖아!”라고 직격탄을 날릴 때 독자들의 가슴이 뻥 뚫린다. 댓글로 온갖 욕을 하면서도 만나면 화사한 웃음으로 위장하는 사람이 판치는 세상이라 <도련님>에 대한 사랑이 더 뜨거워지고 있다. 작은 도시의 교사와 중학생만으로 부조리한 세상에 확실한 교훈을 던지는 역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