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읽기 ⑨ 선거제도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불리는 ‘선거’는 단지 대표자를 뽑는 절차일까요? 선거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인지, 아니면 그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한지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와 실제 기능 사이의 간극을 비판적으로 성찰해보고자 합니다.
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읽기 ⑨ 선거제도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선거제도가 과연 실제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존재합니다. 선거라는 형식은 유지되지만 그 실질이 정치 엘리트에 의해 독점되거나 특정 계층의 접근만이 가능해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국민의 지배’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결정권이 소수에 집중되고, 유권자는 제한된 후보 중 수동적으로 선택하는 들러리로 전락하는 것이죠. 이는 선거가 본래 취지와 달리,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형식 논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정당 공천, 선거자금, 후보자 난립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한, 선거는 오히려 비민주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 또한 그런 까닭입니다.
이처럼 선거제도는 제도적 신뢰를 통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형식적 절차만 남은 채 실제 권력의 민주성을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선거의 절차적 정당성뿐 아니라 그 실질적 효과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은 선거제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시각을 바탕으로 구성한 논술 문제입니다.
[문제]제시문 [2]의 관점에서 제시문 [1]을 비판하시오. (600자 내외)
제시문 [1]
제도에 대한 신뢰는 사회 유지와 발전의 필수 조건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조차 화폐가 종이 조각이 아니라는 믿음, 즉 제도 신뢰에 기반한다. 전쟁처럼 제도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금이 더 통용되고, 마피아 같은 사적 질서가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예컨대 시칠리아에서는 법 집행에 대한 불신이 마피아 의존으로 이어지고, 이는 공적 제도가 아닌 사적 연줄망이 신뢰의 기반이 되는 사회를 형성한다.
이런 점에서 선거제도는 공적 신뢰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핵심 제도다. 선거는 단순한 대표자 선출을 넘어 국민의 주권 행사를 구체화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할 통합의 기제로 기능한다. 유권자는 정책과 자질을 바탕으로 후보를 선택하며, 대표자는 국민 의사에 따라 국정을 수행한다. 따라서 선거는 민주주의 성패를 좌우하는 제도이며, 국민 주권 실현의 핵심적 장치다.
제시문 [2]
민주주의는 흔히 ‘국민의 지배’로 이해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소수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유권자는 선거를 통해 형식적으로 참여하지만, 실제로는 제한된 선택지 속에서 들러리 역할에 머무르기 쉽다. 다수결원칙 또한 항상 최선은 아니며, 히틀러의 예처럼 민주적 절차가 비민주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공정한 선거가 치러진다고 해도, 정당 공천이나 경제적 제약은 정치 참여의 실질적 장벽이 되며, 선거가 국민 의사를 대변하는 절차인지에 대한 회의가 제기된다.
한국은 선거제도 정착 속도가 빠르긴 하지만 여전히 불법행위나 준비 부족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투명성과 일상화가 필요하며, 투표 외에도 파업·시위·선거 거부 등 다양한 방식의 정치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다양한 참여 형태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답안 예시]
제시문 [1]은 선거제도가 공적제도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핵심 장치라고 보지만, 제시문 [2]는 이 전제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를 비판한다.
첫째, 제시문 [1]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선거의 당연한 결과로 상정하지만, 제시문 [2]는 선거가 실제로 유권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결함을 지닌다고 지적한다. 정당 공천 구조, 정치자금 문제, 제한된 선택지 등은 유권자의 실질적 참여를 방해하고, 이는 제도가 정당하다는 신뢰의 근거를 약화시킨다. 둘째, 제시문 [1]은 선거를 통해 대표자가 국민의 의사를 집약하여 사회 통합을 이룬다고 전제하지만, 제시문 [2]는 선거가 오히려 소수 엘리트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형식에 불과할 수 있으며, 다수결이 항상 정당한 결과를 낳지 않음을 히틀러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처럼 제시문 [1]은 선거제도의 이상적 기능만을 강조하며, 그 전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
결국 제시문 [2]는 선거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장치라는 전제를 반박하며, 다양한 정치 참여 방식의 활성화를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해설] 이 답안은 제시문 [2]의 관점에서 제시문 [1]의 논리를 체계적으로 비판하며, 특히 전제의 타당성과 현실과의 괴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 논리 구조의 명확한 전개
답안은 제시문 [1]의 핵심 논지를 요약하면서 시작하여, 그 논리적 전제(‘선거는 제도적 신뢰를 형성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를 명시적으로 드러냅니다. 이후 제시문 [2]의 관점에서 이 전제가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두 가지 근거를 통해 비판합니다.
2. 근거 1: ‘제도 신뢰’는 선거의 자동적 결과가 아니다
제시문 [1]은 선거가 제도 신뢰를 만들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가 유지·발전된다고 봅니다. 그러나 제시문 [2]는 현실에서는 정당 공천 구조의 폐쇄성, 경제적 제약, 후보자 선택권의 제한 등으로 인해 선거가 유권자의 실질적 의사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선거가 신뢰를 생성하는 ‘조건’이 되기보다 오히려 신뢰를 훼손하는 형식적 절차에 그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3. 근거 2: 선거는 사회 통합을 보장하지 않는다
제시문 [1]의 두 번째 전제는 ‘선거가 대표자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집약하고, 사회를 통합한다’는 것입니다. 답안은 이 주장에 대해 다수결의 맹점과 엘리트 정치의 문제를 제시문 [2]에서 끌어와 비판합니다. 히틀러의 사례는 민주적 절차가 비민주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역설을 설명하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4. 결론: 민주주의 실현 방식의 다원화 필요성 제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