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인문논술을 위한 독서-<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편
인문논술을 위한 독서-<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편
20세기 미학의 출발점이 된 이 책은 인문논술에서도 무척 자주 사용됩니다. 그 이유로는 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미학적 질문을 ‘매체와 기술이 인간의 지각을 어떻게 바꾸는가’라는 사회적 질문으로 뒤집어놓기 때문입니다. 매체·대중·정치라는 키워드가 한 텍스트에 모두 들어 있어 출제자 입장에서 활용하기 좋은 자료죠. 다음으로 ‘아우라(Aura)’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원본과 복제, 진본성과 대량생산, 전통과 현대를 모두 묶어 사유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이미지 생성, 디지털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가 일상이 된 요즘 학생들에게 이만큼 현재적인 텍스트도 드뭅니다. 마지막으로 칸트의 무관심한 관조, 아도르노의 문화산업 비판 등과 비교·대조 형태로 자주 출제되는 만큼 벤야민을 정확히 이해해야 그가 동시대 사상가들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를 선명하게 서술할 수 있습니다.‘벤야민=향수주의자’는 오해그런데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일부 오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벤야민은 복제 기술 때문에 예술이 망가졌다고 한탄(?)한 사람일 것이다”라는 선입견입니다. 하지만 실제 텍스트는 정반대에 가깝습니다. 벤야민은 ‘아우라의 붕괴’를 슬퍼하기보다 그것이 몰고 온 새로운 가능성을 직시했습니다. 그는 사진과 영화가 “세계사 최초로 예술 작품을 제의(제사 의식)의 기생 상태로부터 해방시킨다”고 말합니다. 신전 안쪽 어두운 곳에서 사제만 볼 수 있던 신상(神像)이 미술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작품이 된 것처럼, 복제 기술은 예술을 소수의 손에서 대중 속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아우라’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아우라는 신비롭거나 영적인 무엇이 아니라, “가까이 있어도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것의 일회적인 나타남”이라는 매우 구체적인 규정을 가진 개념입니다. 학교 체육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친구를 두 눈으로 직접 본 순간의 그 압도적인 ‘바로 그때, 바로 거기’의 느낌, 그 한 번뿐인 경험이 갖는 무게가 아우라에 가깝습니다. 반면 같은 장면을 누군가의 휴대폰 영상으로 천 번 돌려본다면, 그것은 정보로서는 더 많이 전달되지만 ‘지금-여기’의 뜻이 사라집니다.사진과 영화, 새로운 지각의 등장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벤야민의 논의는 하나의 큰 흐름을 따라갑니다. 사진과 영화에 이르러 복제는 단순한 모방을 넘어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합니다. 사진은 이미지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사상 최초로 예술가의 손을 해방시켰고, 그 자리에 렌즈와 기계장치가 들어섰습니다. 이 전환의 한복판에 ‘아우라’가 있습니다. 박물관 유리장 안의 ‘모나리자’ 진본과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모나리자’ 이미지는 같은 정보이지만, 진본이 지닌 역사적 증언력과 권위는 복제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술적 복제는 두 방향에서 아우라를 흔듭니다. 거대한 대성당이 누군가의 거실 액자에 들어오듯, 원작이 도달할 수 없는 자리로 작품을 옮겨놓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어진 것의 유일무이성을 극복하려 하는” 현대 대중의 욕구와 맞물려 작품을 끝없이 재생산합니다.
아우라의 약화는 곧 예술의 가치 기준이 옮겨간다는 뜻입니다. 동굴벽화나 신상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하는’ 것 자체가 중요했던 제의적 가치의 산물입니다. 사진과 영화는 그 반대편, 누구나 언제든 볼 수 있도록 내보이는 전시적 가치의 극단입니다. 학교 도서관 안쪽 귀중본실에 봉인된 고서가 전자라면, 누구나 검색해볼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의 같은 책은 후자에 해당합니다.
벤야민은 이 같은 변화를 영화의 사례로 구체화합니다. 무대 위 배우는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는 데 비해 영화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분절적으로 연기하고 편집에 의해 재구성됩니다. 그래서 영화배우는 “자신의 살아 있는 인격 전체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인격의 아우라를 포기한 채 활동해야 하는 상태에 놓인다”고 말합니다. 관객의 자리에는 기계장치가 들어서고, 관객은 더 이상 배우를 직접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배우의 연기를 ‘평가’하는 자가 됩니다.
벤야민이 주목하는 것은 이 변화의 사회적 의미입니다. 회화는 한두 사람의 조용한 관조를 전제로 했지만, 영화는 처음부터 집단적 수용을 위한 예술입니다. 신문이 독자 투고란을 열며 독자와 집필자의 경계를 흐트러뜨렸듯, 영화는 누구나 엑스트라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습니다. 동시에 다다이즘이 회화에서 실험한 ‘쇼크 효과’는 영화의 빠른 장면 전환 속에서 본격적으로 자리 잡습니다. 관객은 한 화면에 침잠하는 대신 화면들에 의해 끊임없이 흔들리며, 정신 집중이 아니라 ‘정신 분산’의 상태에서 작품을 수용합니다. 벤야민은 이것을 퇴락이 아니라 새로운 지각의 등장으로 봅니다. 그는 “관객은 말하자면 하나의 시험관이되, 정신이 분산된 시험관이다”라고 말하죠.디지털 시대에 소환된 통찰력90년 전 출간된 이 책은 분석과 비유, 개념들에서 낯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벤야민의 통찰이 낡은 것은 아닙니다. 디지털 시대에 그의 분석은 오히려 더 날카롭게 다가옵니다. AI가 그린 그림 앞에서 ‘원작자’를 묻기 어려워졌고, NFT(대체불가토큰)가 디지털 파일에 굳이 ‘진본성’을 부여하려 애쓰는 모습은 사라진 아우라를 되살리려는 안간힘처럼 보입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직접 본 경험과 그 무대의 영상을 본 경험을 나란히 떠올려보고, 학교 축제에서 친구의 공연을 응원한 기억과 그 클립이 소셜미디어에서 받은 ‘좋아요’를 견주어보십시오. 유튜브와 짧은 영상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정신 분산적 수용’은 벤야민이 영화에서 본 ‘복제’의 가치가 일상으로 확장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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