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인문논술을 위한 독서-<이기적 유전자> 편
[2027학년도 논술길잡이] 이기적 유전자는 어떻게 '착한 행동'을 만들까
논술 시험장에서 이타심·협력·공동체·이기심 같은 단어를 마주칠 때, 학생들은 보통 윤리학이나 정치철학의 언어로 답하려 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문논술은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진화생물학과 게임이론의 관점을 함께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그 중심에 놓인 텍스트입니다.

이 책이 인문논술에서 중요한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이타주의를 설명하는 새로운 분석 틀을 제공합니다. 도덕철학이 ‘왜 우리는 타인을 도와야 하는가’를 규범적으로 묻는다면, 도킨스는 ‘왜 이타적 행동이 자연계에 존재하는가’를 인과적으로 묻습니다. 둘째, 모형적 사고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죄수의 딜레마’처럼 단순한 게임 모형으로 인간 사회 전반을 비춰내는 방식은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셋째, 애덤 스미스·카를 마르크스·장 자크 루소 같은 사상가와 비교 논제로 자주 출제됩니다. 스미스의 ‘이기심에 의한 공익’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의한 협력’을 함께 묻는 식이지요.

이 책을 처음 접하는 학생은 흔히 ‘이기적 유전자라는 말은 결국 인간이 본성적으로 이기적이라는 주장 아닌가’라고 오해합니다. 이러한 오해를 교정해봅시다.

첫 번째 포인트는 이기적이라는 용어가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도킨스는 서두부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진화해왔는가’를 설명하려 한다고 분명히 합니다. ‘이기적’은 가치판단이 아니라 분석 도구입니다. 인간은 학습과 문화를 통해 유전자의 지시를 거스를 수 있는 동물이며, 의식적으로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치라고 도킨스는 권유합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이타주의의 정의가 결과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행위자의 심리적 동기와 무관합니다. 이는 동기를 중시하는 칸트적 윤리학과 정면으로 대비됩니다. 세 번째 포인트는 이기성과 협력이 모순되지 않는다는 통찰입니다. 친족 사이의 유전자 공유, 무리 생활의 통계적 이익, 반복적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호혜성의 메커니즘을 토대로 이기적 출발점에서 협력적 결과가 도출됩니다. ‘미래의 그림자’가 길다면…1장에서 도킨스는 다윈주의의 함의를 끝까지 밀고 갑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가 만들어낸 생존 기계이며, 수십억 년 경쟁에서 살아남은 유전자로부터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성질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입니다. 검은머리갈매기는 이웃이 자리를 비운 사이 둥지를 습격해 새끼를 삼키고, 황제펭귄은 누군가 먼저 물에 뛰어들어 바다표범의 위치를 알려주기를 기다리며 서로 등을 떠밉니다. 그러나 자연에는 명백히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도 있습니다. 일벌은 침을 쏘는 즉시 죽음에 이르면서도 둥지를 지키고, 어미 새는 부러진 날개 흉내를 내며 여우를 둥지에서 멀리 끌어냅니다.

1장의 핵심 질문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출발한 생물이 어떻게 이런 행동을 진화시켰는가’입니다. 도킨스는 ‘종(種)의 이익을 위해’라는 흔한 답이 진화 논리에는 어긋난다고 잘라 말합니다. 이타적 집단에 단 한 마리의 이기적 변이체가 등장하면 그 변이체가 더 잘 살아남고 자손도 더 많이 남기기 때문에 결국 집단은 이기적 개체로 채워집니다.

10장은 이 질문에 본격적으로 답합니다. 해밀턴의 ‘이기적인 무리’ 이론에 따르면, 동물이 무리를 짓는 것은 동료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각 개체가 포식자와 자신 사이에 다른 개체를 두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새의 경계음, 톰슨가젤의 높이뛰기, 사회성 곤충의 자기희생—이 모든 행동이 유전자의 관점에서는 이기적 전략으로 재해석됩니다.

12장은 10장의 ‘호혜적 이타주의’를 게임이론으로 정교화합니다. 핵심 도구는 ‘죄수의 딜레마’입니다. 두 사람이 협력 또는 배신 카드를 동시에 내는 게임에서 상대가 어떻게 하든 내가 배신하는 편이 항상 더 유리합니다. 그러나 양쪽이 합리적으로 배신을 선택한 결과는 양쪽이 협력했을 때보다 못합니다. 이 딜레마를 깨는 열쇠는 ‘반복’입니다. 게임이 반복되어 ‘미래의 그림자’가 충분히 길면, 상대의 과거 행동을 기억하고 보복하거나 보상할 수 있습니다.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게임이론 전문가들에게 ‘전략’을 공모해 컴퓨터 토너먼트를 열었습니다. 여기서 승리한 전략들의 공통 속성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먼저, 배신하지 않는 ‘마음씨 좋음(Nice)’, 보복은 하지만 곧 용서하는 ‘관대함(Forgiving)’, 상대보다 많이 얻으려 하지 않는 ‘시샘하지 않음(Non-envious)’입니다. 사례도 많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참호전의 ‘우리도 살고 남도 살리자’ 현상에서 영국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같은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서 미래의 그림자가 길었기에 명령 없이도 암묵적 휴전을 유지했습니다.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자기 피를 토해 나누어주며, 같은 동굴 친구를 정확히 식별합니다. 도킨스의 결론은 분명합니다. 자연이 비영합 게임의 ‘물주’가 되어주는 한, 그리고 미래의 그림자가 충분히 긴 한 이기적 유전자의 세계에서도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킨스의 한계와 유용성도킨스 사상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비판이 가장 흔합니다. 그러나 도킨스 본인은 인간이 학습과 문화, 즉 ‘밈’을 통해 유전자의 지시를 거스를 수 있는 동물이라고 강조합니다. ‘죄수의 딜레마’ 모델 자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의 협력은 두 사람의 반복 게임이 아니라 다수가 얽힌 복합적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며 정보의 비대칭, 권력의 불균형, 제도의 매개 같은 요소들이 결정적입니다. 게임이론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환원적 충동은 인간 사회의 풍부한 결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킨스의 분석은 강력한 사고 도구입니다. 협력이 어떤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를 새로운 시선으로 묻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그림자’ 개념은 단기성과주의가 만연한 조직이 왜 협력을 잃어가는지를 설명해줍니다. 또한 ‘마음씨 좋고 관대하며 시샘하지 않는’ 전략의 성공은 국제 외교와 환경 협상이 어떤 조건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다른 사상가와 적극적으로 연결해보세요. 스미스가 “이기심이 의도치 않은 공익을 만든다”고 말했다면, 도킨스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유전자의 이기성이 의도치 않은 협력을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홉스가 만인의 투쟁을 막기 위해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도킨스는 외부 강제 없이도 미래의 그림자만 길면 평화가 자생할 수 있다고 답합니다. 이런 비교의 축을 만들 수 있다면, 이기적 유전자는 어렵기만 한 생물학 책이 아니라 인문학적 사유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