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판매자 관점’의 말이다. ‘가입자’ 정도가 중립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다. 또는 ‘소비자’나 ‘손님’ ‘방문객’ 등 내용에 따라 적절한 말을 골라 쓸 수 있다. 그것이 이른바 글쓰기에서의 ‘객관적 표현’을 구현하기 위한 문장론적 기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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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은 최근 대규모 유심 정보 해킹 사태로 인해 예상치 못한 큰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 고객뿐 아니라 기업도 해킹의 피해자라는 측면에서 초기에 보다 빠르고 투명하게 대응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난달 터진 SK텔레콤의 유심 정보 해킹 사태가 일파만파의 후유증을 낳았다. 사태 배경과 향후 추이를 분석한 이 기사 한 대목에는 눈여겨봐야 할 말이 하나 있다. ‘고객’은 공급자 중심으로 쓰는 말힌트는 ‘관점의 언어’다. 글쓰기에서 ‘누구의 관점’에서 서술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관점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누군가 “쓰레기 분리수거”라고 한다면 이는 쓰레기를 거둬가는 업체의 말이고, “분리배출”이라고 하면 주민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1953년 7월 27일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전기념일’이라고 한다. 남침으로 참혹한 전쟁을 일으킨 북한에서는 이를 미화해 스스로 ‘전승절’이라고 부른다. 역사적 배경을 모르고 누군가 이날을 두고 자칫 ‘전승절’ 운운한다면 이는 망발이 된다.

예문에서는 ‘고객’이 눈에 띈다. ‘고객’은 어떤 때 쓰는 말일까? 누구나 아는 말 같지만, 의외로 이 말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요즘 ‘고객’은 보통 두 가지로 쓰인다. ‘① 상점, 식당, 은행 따위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는 사람 ② 단골로 오는 손님’, 특히 ②의 의미로 이 말을 쓸 때 제격이다. 즉 ‘판매자 관점’의 말인 셈이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고객’이겠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고객’보다 ‘가입자’ 정도가 중립적이고 정확한 표현이다. 또는 ‘소비자’나 ‘손님’ ‘방문객’ 등 내용에 따라 적절한 말을 골라 쓸 수 있다. 그것이 이른바 글쓰기에서의 ‘객관적 표현’을 구현하기 위한 문장론적 기법이다. 과학적·논리적 표현 담은 말을 써야‘고객’은 가치를 담은 말이다. 문세영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인 <조선어사전>(1938년)에서 ‘고객(顧客)’을 ‘단골손님’으로 풀었다. ‘객(客)’은 ‘찾아온 사람’ 또는 ‘물건을 사는 사람’이다. 순우리말로 ‘손’과 같다고 했다. ‘손님’은 ‘손’을 높인 표현이다. 그러니 ‘손’은 ‘객’이고 이를 높인 ‘손님’이 곧 ‘고객’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단골손님’이 ‘고객’의 개념에 가깝다(물론 요즘은 ‘고객’의 개념이 넓어져 물건을 사는 사람뿐 아니라 은행이나 공공시설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붙이기도 한다).

‘고객(顧客)’이 가치어인 것은 글자를 풀어보면 금세 드러난다. ‘顧(고)’는 ‘(지난날을)돌아보다/방문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문지방(戶) 위로 제비(隹)가 날아드는 모습을 그렸다. 조상들은 봄이 오면 다시 찾아드는 제비를 보고 농사일을 준비했다. 즉 제비가 돌아오듯 사람이나 생각을 돌아본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업 등 영업주체 또는 공급자 입장에서 고객은 매우 소중한 존재다. 그 의미가 ‘돌아볼 고(顧)’ 자에 담겨 있다.

따라서 기업 관점에서는 손님은 다 ‘고객’이다. 이에 비해 제3자 관점, 즉 객관적 관점에서는 ‘손님/소비자/가입자/예금자/방문객/시민/주민’ 등을 상황에 맞게 골라 쓸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객관적인 글쓰기를 구현하는 한 방법이다. ‘고객’과 ‘손님’의 차이가 드러났으니 이제 실전에 응용해보자.

“금융감독원은 이번 금리인하로 전체 예금 고객의 이자 수입이 연간 1조6800억원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여기서 ‘예금 고객’은 시중은행 관점이므로 객관적 표현으로는 ‘예금 가입자’ 정도가 좋다.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이투데이 여론독자부장·前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담보인정비율(LTV),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가 시행된 1일 서울 여의도 ◇◇은행 영업점에서 한 고객이 대출 상담을 하고 있다.” 이 역시 ‘한 고객’은 은행의 관점에서 하는 말이라, 불특정 다수의 일반인 또는 은행 이용객을 드러내는 객관적 표현으로는 적절치 않다. ‘한 시민’ 또는 ‘한 이용객’ 정도가 합리적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