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부 차별의식 심한 중국
고대 문헌서 이방인을 동물로 비하
남쪽 '蠻'-벌레 종족, 북쪽 '狄'-개의 민족
각종 금수 특질 동원해 이민족 명칭 지어
확고히 자리잡은 중화사상
중국인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지면 야만족
"탐욕에 호전적, 짐승과 성격 유사" 묘사
문명 초창기부터 '안과 밖' '나와 남' 구분
이민족들도 대가 커 중화이념 수용
고대 문헌서 이방인을 동물로 비하
남쪽 '蠻'-벌레 종족, 북쪽 '狄'-개의 민족
각종 금수 특질 동원해 이민족 명칭 지어
확고히 자리잡은 중화사상
중국인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지면 야만족
"탐욕에 호전적, 짐승과 성격 유사" 묘사
문명 초창기부터 '안과 밖' '나와 남' 구분
이민족들도 대가 커 중화이념 수용

반면 자신들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신이 점지한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도 ‘보편적’이라고까지 부를 만큼 ‘흔한’ 현상이다. 중국에서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천자(天子)라고 일컬은 것처럼 유목민족인 흉노족을 이끈 지도자인 ‘선우(單于)’도 자신을 하늘이나 천신에 비견할 만한 자격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로 여긴 게 대표적이다. 선우의 공식 호칭은 ‘탱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로, 하늘을 뜻하는 ‘탱그리(撐犁)’의 자손인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흉노제국을 통일한 묵특선우(冒顿单于)는 한나라 문제(文帝)에게 보낸 서한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흉노 대선우’라던가 ‘천지(天地)에서 태어나, 일월(日月)을 휘하에 둔 흉노 대선우’라고 자신을 칭했다.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보편적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내외부의 차별 의식을 가장 심하게,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유지하고 발전시킨 게 중국이었다. 중국은 이방인에 대한 ‘거리감’을 체계화했고, 오랜 기간 이를 유지하고 ‘발전’시켰다. 그리고 이 같은 원시적 관념은 하나의 세계관이 되어 중국의 지리적 범위를 넘어 동아시아 전반으로 확산했다.
중국 고대 문헌 자료에선 중국인의 이 같은 오랜 사고체계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풍부하다. 선진시대(先秦時代) 문헌인 <춘추(春秋)>와 그 해설서에서 보이는 몇몇 문헌은 이방인을 동물에 비유하면서 ‘인간 이하’의 존재로 그렸다.
고대 중국인의 관념에서 이른바 중화문명(中華文明)이 내뿜는 ‘빛’은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갈수록 점점 희미해졌다. 중국인의 생활 중심에서 먼 곳일수록 문명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었다. 그곳은 ‘인간 이하’의 존재들이 사는 이질적 공간으로 규정됐다.
<서경(書經)> ‘우공(禹貢)’ 편에선 왕권 소재지인 제도(帝都)를 중심으로 500리 단위로 5개 영역이 분할됐다. 첫째 영역은 왕의 지배지인 전복(甸腹), 둘째 지역은 제후의 땅인 후복(候腹)이었다. 세 번째 영역은 평정해야 할 땅이라는 의미에서 수복(綏腹)이라 불렀고, 네 번째 영역은 신하의 예를 갖춘 이족이 사는 요복(要腹)으로 묘사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미개한 습지로서 야만족이 사는 황복(荒腹)으로 구분했다.
<국어(國語)>에선 황복에 야만족인 적(狄)과 융(戎)이 사는 것으로 그려졌다. <주례(周禮)>에선 중국 민족의 거주지인 구주(九州)와 이방인의 거주지인 ‘만(蠻)’과 ‘이(夷)’가 나뉘었다.
여러 야만족의 주거 지역 중에 ‘가장 미개하고,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란 의미를 지닌 ‘번(蕃)’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번은 ‘울타리’이자 ‘오랑캐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이후 중국인의 사고 속에서 ‘이방인’, ‘야만족’은 거주 지역의 방위에 따라 남쪽의 만(蠻), 동쪽의 이(夷), 서쪽의 융(戎), 북쪽의 적(狄)이라는 용어로 정형화된다.
이방인을 비하하는 관념은 이방인의 명칭에 다양한 동물 이름을 붙이고, 민족의 특성을 묘사할 때 각종 금수(禽獸)의 특질을 동원하는 것에서 두드러졌다. 적(狄)은 ‘개의 종족’으로, 만(蠻)은 ‘벌레의 종족’과 연관되는 식이다. 고대 중국인의 시선에서 그들이 사는 지역과 멀리 떨어진 지역은 그저 야만족과 호전적인 포악한 동물이 살고, 사악한 귀신이 출몰하는 장소에 불과했다. 저주받은 땅에서 사는 야만인은 자연스럽게 탐욕스럽고 호전적이며, 짐승과 성격이 유사한 것으로 여겨졌다. <사기(史記)> ‘흉노 열전’에 묘사된 흉노의 땅을 지배하는 별은 전쟁과 재앙의 상징인 형혹(熒惑, 화성)이었다.
중국인들은 야만인 사이에도 서열도 매겼다. 만(蠻)과 이(夷)는 연합하거나 동화할 수 있는 비교적 ‘친근한’ 존재로, 융(戎)과 적(狄)은 절대로 동화될 수 없는 적대적 존재로 봤다. “적(狄)과 융(戎)은 늑대와 같아 결코 만족할 줄 모른다(<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거나 “오음(五音)을 듣지 못하고, 오색(五色)을 구분하지 못하며, 덕과 정의의 원칙을 따르지 못하는 사악하면서도, 충과 신을 말하지 못하는 네 가지 악을 행하는 자들이 바로 적(狄)이다(<춘추좌씨전>)”와 같은 표현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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