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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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주변 국가 멸시하는 시각은 어떻게 확산됐나
고대 중국에서 뿌리내린, 나와 남을 구분하고 타자를 ‘인간 이하의 동물 같은 존재’로 바라보는 세계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국가로 퍼졌다. 그 과정에서 동아시아 각지에 오랜 후유증을 남겼다.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율령제(律令制)의 확산이다. 율령제는 중국식 화이사상(華夷思想)을 확산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했다. 중국과 가장 먼저 직접 접촉한 고구려부터 중국을 빼닮은 자국 중심적 세계관이 발현됐다. 414년에 조성된 광개토대왕비에서부터 자신을 높이고 주변을 깎아내리는 시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비문 곳곳에서 ‘노객(奴客)’ ‘귀왕(歸王)’ ‘궤왕(跪王)’ 등 남을 폄훼하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다. 고구려는 자신들에게 복속한 주변 집단에 대해 자신들을 정점으로 하는 상하 관계로 서열을 매겼다. 백제를 겨냥한 ‘백잔(百殘)’ ‘잔국(殘國)’ ‘잔주(殘主)’ 등의 비칭(卑稱)에서도 자국 중심적 세계관이 진하게 느껴진다.4~5세기경이 되면 고구려는 주변의 신라, 예(濊), 동옥저(東沃沮) 등을 포함한 자신들만의 세계관, 그들만의 질서를 구축했다. 고구려에 신라는 “예부터 속민(屬民)으로 고구려에 조공하는”(광개토대왕비) 존재였으며, 고구려는 “동이(東夷) 매금(寐錦) 위에 군림하는”(충주 고구려비) 존재였다. 고구려는 ‘천하의 중심’(모두루묘지)이자 ‘천손의 나라’(신포시 오매리 절골터 금석문)였다. 일본 역사학자 고치 하루히토(河內春人)는 “고구려가 수당과의 전쟁에서 말갈(靺鞨)을 동원하는 등 주변에 영향력을 실제로 행사하는 데 중화사상을 이용했을 가능성이 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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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우리는 존귀, 이민족은 야만"…우월적 사고의 기원
자신이 속한 집단을 높이고, 외부 민족을 짐승이나 벌레에 비유하거나 머나먼 상상 속 공간에 사는 괴물처럼 묘사하는 사고방식은 세계 각지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인이 주변 이민족을 두고 “말을 제대로 못 한 까닭에 마치 짐승처럼 ‘버~ 버~’ 소리를 내는 존재”라며 ‘바르바로이(βάρβαροι)’ 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후가 좋은 이탈리아반도 출신의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도 게르만 민족의 풍속을 그린 <게르마니아>에서 “게르마니아는 삼림들로 인해 섬뜩하고 늪지들로 인해 보기 흉한 지역”이라며 “이곳에서 과수는 키울 수 없고, 가축은 수는 많지만 대부분 보잘것없다”고 박하게 평가했다. “뿔 있는 짐승까지도 번듯한 뿔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묘사는 타지에 대한 폄하와 적개심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조성되는지와 이를 타파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를 잘 보여준다.반면 자신들은 하늘의 선택을 받은, 신이 점지한 특별한 존재라는 의식도 ‘보편적’이라고까지 부를 만큼 ‘흔한’ 현상이다. 중국에서 황제를 ‘하늘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천자(天子)라고 일컬은 것처럼 유목민족인 흉노족을 이끈 지도자인 ‘선우(單于)’도 자신을 하늘이나 천신에 비견할 만한 자격을 부여받은 특별한 존재로 여긴 게 대표적이다. 선우의 공식 호칭은 ‘탱리고도선우(撐犁孤塗單于)’로, 하늘을 뜻하는 ‘탱그리(撐犁)’의 자손인 위대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흉노제국을 통일한 묵특선우(冒顿单于)는 한나라 문제(文帝)에게 보낸 서한에는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