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너미
현대자동차그룹과 포스코그룹이 철강과 2차전지 분야에서 폭넓은 협력을 약속하는 업무협약(MOU)을 지난달 21일 맺었다. 현대차 계열사인 현대제철은 미국의 25% 철강 관세를 피하기 위해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를 짓기로 했는데, 포스코가 여기에 투자자로 참여하고 철강 제품 일부를 가져다 쓸 계획이다. 국내 철강 1·2위 라이벌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관계가 ‘프레너미(frienemy)’로 재정립되고 있다는 평가다. “美 관세 파고 함께 넘자” 손잡은 1·2위프레너미란 친구(friend)와 적(enemy)을 합친 말로, 경쟁하는 동시에 협력하는 기업 간 관계를 가리킨다. 이 용어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 교수인 테리 앱터가 <베스트 프렌즈>라는 책에서 처음 썼다. 친구가 잘되길 응원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뒤처지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의 이중적 심리를 표현하면서다.삼성전자와 애플은 프레너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한쪽에선 ‘갤럭시’와 ‘아이폰’으로 치열하게 싸우지만 다른 한쪽에선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어주고 공급받는 사이여서다.

최근 수년 동안 한국 철강업계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국내시장에서는 건설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위축이, 해외시장에서는 중국 철강사들이 유발한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선진국들의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도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은 지난해 영업이익(연결 기준)이 1년 전보다 각각 38.5%, 60.6% 급감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고 했다. 산업 전반의 복합 위기가 ‘오월동주(吳越同舟, 적끼리 한배를 타고 협력)’를 이끌었다는 얘기다. 해외 철강업계에서는 2014년 유럽의 아르셀로미탈과 일본의 일본제철이 미국 앨라배마주의 한 제철소를 합작 형태로 인수한 사례 등이 있긴 하다. 다만 이는 내수시장에서 경합하지 않는 철강사끼리 제3국에 공동 진출하는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협력과는 차이가 있다. 2차전지·R&D 분야 협력도 이어질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