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살리는 '고래 펌프'
고래는 지구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종에 따라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까지 다양하지만, 대왕고래의 경우 몸길이가 약 30m, 무게는 무려 200톤에 달한다. 압도적 크기만큼, 고래는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해양 생태계 엔지니어’라는 별명처럼 바다 생태계와 기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바로 배설물을 통해서다.
ⓒwikimedia
ⓒwikimedia
고래의 똥이 바다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2010년에 밝혀졌다. 고래는 바닷속에서 크릴 등의 먹이를 먹고, 수면 위로 올라와 똥을 싼다. 고래가 똥을 싼 자리는 주변 바다보다 영양분이 3~7배나 많다. 과학자들은 고래가 깊은 바다에서 얕은 바다로 영양분을 끌어올리는 이 현상을 ‘고래 펌프’라고 부른다.

고래 펌프는 바다 생물에게 엄청난 자원이다. 질소, 철, 인 등이 풍부해 식물성플랑크톤이 크게 번성한다. 그리고 식물성플랑크톤은 다른 해양 생물의 먹이가 되어 결과적으로 해양 생태계의 다양성이 확대된다.

게다가 고래 똥은 탄소 저장에도 기여한다. 고래 똥을 먹고 번성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광합성을 통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죽은 뒤 바닷속 깊이 가라앉아 오랜 시간 탄소를 저장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고래 덕분에 매년 약 22메가톤의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저장된다고 추정한다. 이는 자동차 약 500만 대가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양이다.

최근에는 고래의 오줌도 바다 생태계에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버몬트대 연구팀은 귀신고래, 혹등고래, 북대서양 긴수염고래, 남방긴수염고래 등 대형 고래 4종의 이동 경로와 배설량을 조사했다.

이들 고래는 여름철에 영양분이 풍부한 알래스카, 아이슬란드, 남극 등의 극지방에서 먹이를 먹고 지방을 축적한다. 이후 겨울이 되면 따뜻한 적도 근처의 바다로 이동해 번식한다. 번식기에는 먹이를 거의 먹지 않고, 몸에 저장한 지방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양의 오줌을 배출하는데, 긴수염고래는 하루에 약 950의 소변을 본다. 이는 성인의 하루 소변량(약 1.8)의 500배가 넘는 양이다.

고래의 오줌에도 질소와 인이 풍부하다. 이런 영양분은 열대 바다처럼 영양이 부족한 해역에 큰 도움이 된다. 연구팀은 이들 고래가 매년 질소 3784톤, 유기물 4만6512톤 이상을 극지방에서 적도까지 운반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와이에서는 고래가 바람이나 해류보다 더 많은 질소를 가져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 그대로 고래가 바다 생태계를 ‘먹여 살리는’ 셈이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인간의 무분별한 포경으로 고래 개체 수는 450만 마리 이상 줄었고, 지금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고래가 줄자 이 생태 순환이 끊기고, 해양 생태계의 영양 순환과 탄소 저장 능력도 급감했다. 연구팀은 과거 고래 수가 많았을 때는 지금보다 영양분의 이동량이 3배 이상 많았을 것으로 추정했다.

탄소 저장 효과도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고래 개체 수가 포경 이전 수준으로 회복된다면 매년 약 2억2000만 톤의 탄소가 바다에 저장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한국의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기후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인간의 포경’이 꼽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인공 고래 똥을 만들어 바다에 뿌리는 실험을 시작했다.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고, 지구가 스스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호주의 웨일X(WhaleX) 연구팀은 2021년 고래 한 마리가 배설하는 양인 약 300L의 인공 고래 똥을 호주 동부 해안에 살포했다. 다만 당시에는 탱크에서 직접 바다에 뿌리는 방식이라어서 똥이 너무 빠르게 확산해 식물성 플랑크톤의 증가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다.

그래서 연구팀은 최근 원통형 용기를 개발해 실험을 다시 진행하고 있다. 고래 다섯 마리 분량의 인공 똥을 용기에 넣고, 4~7일 동안 플랑크톤을 성장시킨 뒤 바다에 방출하는 방식이다. 이 실험을 통해 얼마나 많은 탄소가 저장되는지를 측정할 예정이다.

연구팀의 궁극적 목표는 영양분이 부족하고 생산성이 낮은 전 세계 바다 300곳에 인공 고래 똥을 뿌려 매년 최대 15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이 효과가 있으며, 해양 생태계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증명이 선행돼야 한다.

과연 인공 고래 똥 실험이 환경 복원과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을까? 지구의 거대한 ‘해양 엔지니어’ 고래가 다시 생태계의 핵심으로 돌아오길 기대해보자. √ 기억해주세요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前동아사이언스 기자
오혜진 과학칼럼니스트·前동아사이언스 기자
고래 펌프는 바다 생물에게 엄청난 자원이다. 질소, 철, 인 등이 풍부해 식물성플랑크톤이 크게 번성한다. 그리고 식물성플랑크톤은 다른 해양 생물의 먹이가 되어 결과적으로 해양 생태계의 다양성이 확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