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식시장보다 채권시장에 관심이 더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재정적자에 따른 정부의 이자 부담, 지지 기반인 중하층 서민의 금융비용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급거 상호 관세 적용을 유예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미국 국채는 가장 안정적이고 유동성(환금성)이 뛰어난 대표적 금융상품입니다. 미 국채금리는 세계 금융시장과 경제의 향방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이런 미 국채를 알아야 세계경제를 이해할 수 있겠죠? 미 국채의 종류와 여러 기능, 관련한 경제이론,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채금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현 상황까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통화정책 가늠자' 역할하는 美국채
세계 경제 움직임 보여주는 바로미터죠

채무불이행 위험 적은 미국 국채
미 국채는 미국 정부(재무부, Treasury)가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만기 1년 이하의 단기국채(Treasury Bills)는 이자가 없습니다. 발행 때 채권값을 미리 할인해주고 만기 때 원금을 돌려줍니다. 이에 반해 만기 2~10년의 중기국채(Treasury Notes)와 만기 20~30년의 장기국채(Treasury Bonds)는 발행 후 6개월마다 이자(고정금리)를 줍니다. 단기국채는 가장 빨리 현금화할 수 있는, 즉 유동성 높은 투자 대상을 찾을 때 또는 단기자금을 굴릴 때 적합합니다. 장기국채는 금리가 높을 때 사두면 장기간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어 자산가들이 많이 선호합니다.
첫손에 꼽는 미 국채의 특징은 가장 안전한 자산(riskless asset)이란 점입니다. 미국 정부가 보증하는 채권이어서 돈 떼일 염려가 거의 없죠. 이를 채무불이행(default) 위험이 적다고 표현합니다. 주식은 물론이고, 위험도에 따라 신용등급이 매겨지는 회사채와 비교해 무위험 투자자산에 가깝습니다. 수익률은 낮을 수 있지만, 고정금리로 이자를 꼬박꼬박 주기 때문에 안정적입니다. 경기침체기에 특히 선호되며, 달러화로 표시돼 있어 환율변동 위험이 적습니다. 과거 일본부터 지금의 중국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무역흑자로 쌓인 달러화를 미 국채에 투자하는 이유도 그래서죠.
장·단기 미 국채금리에 관심
미 국채의 금리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표준이 됩니다. 마치 영국 그리니치천문대가 기준이 된 표준시 같은 역할이죠. 그중에서도 10년물 국채금리가 중심입니다. 이 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와 같은 시중금리도 따라 오릅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통화정책을 수립할 때 중요하게 참고할 정도이지요. 미 국채는 단순한 금융상품을 뛰어넘습니다. 세계경제가 현재 어떤 상태이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지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투자자들은 장·단기 국채의 금리 차이에 주목합니다. 장기국채 금리가 단기국채보다 높으면 경제가 문제없다고 보지만, 이게 반대가 되면 경기가 나빠질 징후로 해석합니다.
이를 ‘유동성 선호 이론(Liquidity Preference Theory)’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만기가 짧아 원금 걱정을 덜하게 만드는 단기채권을 선호합니다. 장기 투자에 따른 불확실성과 위험이 있는 장기채권에는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합니다. 미국 국채의 만기를 가로축, 금리를 세로축으로 놓고 그린 그래프를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이라고 하는데요, 이 그래프가 오른쪽 위로 향하면(장기금리>단기금리) 경제가 정상적인 상태이고 순항 중이라고 볼 수 있죠.
만약 경기침체가 걱정된다면 장기 자금을 빌리려는 사람은 적고, 오랜 기간 고정금리를 받을 수 있는 장기채권에는 수요가 몰립니다. 그러면 장기채권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떨어지겠죠? 이게 심각해지면 수익률 곡선이 오른쪽 아래를 향하게 됩니다. 이를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 또는 ‘수익률 곡선 역전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미 Fed는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1960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7번의 경기침체 직전에 수익률 곡선 역전이 나타났습니다. 지금은 글로벌 저금리 현상과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장기금리가 인위적으로 낮아져 수익률 곡선의 모양만으로 경기를 전망하기 쉽지 않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NIE 포인트1.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의 개념, 각 범주에 속하는 금융상품에 대해 공부해보자.
2. 우리나라 국채의 금리는 어느 정도이고, 어떤 요인에 따라 변동하는지 알아보자.
3. 현재 미국 국채의 수익률곡선은 어떤 형태를 띠는지 살펴보자. 투자자 불안감 자극한 미국 관세정책
국채 금리 급등하자 트럼프 '일보후퇴'

채권에 더 민감한 트럼프
중국의 경우, 수출주도형 경제 구조를 통해 막대한 무역흑자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얻은 달러를 외환보유액으로 축적하고, 다시 이를 미 국채에 투자해왔습니다. 미 국채는 달러로 바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중국 위안화 가치가 급변동할 때 유용한 방어수단이 됩니다. 한편으론 중국이 미국과 여러 갈등을 빚을 때, 미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며 위협 카드로 쓸 수도 있어요. 이런 신흥국들의 존재가 달러 강세를 더 부채질합니다. 달러 강세가 무역적자를 부른다고 믿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선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주식시장의 등락보다 국채 금리에 더 민감하다고 합니다. 이유를 잠깐 볼까요? 미국은 만성적인 재정적자국입니다. 올해 재정적자만 1조9000억달러로, 이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6.2% 규모입니다. 나랏빚이 GDP의 3%만 넘어도 과도하다는 점에서 큰 골칫거리입니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부터 감세정책을 추진해왔고 정부 지출은 그와 반대로 늘려오는 바람에 재정적자가 더 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가 올라가면 정부의 부채상환 부담이 늘어나고 나랏빚은 더 늘어나게 됩니다. 지지 기반인 중산층 이하 미국민들의 경제적 안정을 위해서도 대출금리를 끌어올릴 위험이 큰 국채 금리 상승은 두고 볼 수 없습니다.
다시 출현한 채권자경단
그런데 미국이 관세전쟁을 선포하는 와중에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바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동시에 급락세를 보인 것이죠. 미국의 상호관세가 발효된 지난 9일, 채권 가격은 급락하고 2년물 미 국채 금리는 최고 0.3%포인트 상승하며 2009년 이후 하루 중 가장 큰 변동폭을 기록했습니다. 만약 주식시장 침체가 예상되면 투자자금이 미국 국채로 옮겨가 가격은 오르고 금리는 떨어지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반대로 금리가 올라갔습니다. 중국을 목표 삼은 듯한 상호관세 부과로 중국을 비롯한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 국채를 대량 매도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된 게 원인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본질적으로는 너무 급진적인 관세장벽 구축에다 ‘관세 부과-유예’ 등으로 오락가락하는 미국 정부의 행태 때문에 달러와 미 국채에 대한 믿음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합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지난 9일 소셜미디어에 “미국 국채가 신흥국 국채 취급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편으론 국채를 매도하며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채권 투자자들, 즉 ‘채권자경단(Bond Vigilantes)’이 출현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들이 중국 등의 핑계를 대며 1980년대 이후 또다시 미 국채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는 건데요, 결국은 미국 정부가 상호관세 부과 유예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 국채에 대한 신뢰 위기는 일단 달러를 약세로 돌려세우고 있습니다. 주요 6개국 통화와 비교한 달러의 가치인 달러인덱스는 지난 1월 중순 110 수준으로 역사상 높은 수준을 기록했으나, 지금은 99대로 뚝 떨어졌습니다. 경기가 나쁘면 안전자산인 달러(미 국채)에 돈이 몰리고, 경기가 좋으면 좋은대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웬만해선 달러 강세를 피하기 어려운데, 지금은 이런 사정이 바뀌고 있습니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에도 영향을 미칠 사안이어서 주목됩니다. NIE 포인트1. 미국이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이유를 알아보자.
2.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큰데, 어떻게 달러는 강세를 유지할까?
3. 미국 국채 금리와 신흥국 국채 금리가 얼마나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