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관의 인문 논술 강의노트

교과서와 책을 잇는 주제읽기 ⑥ 경쟁적 관계
교과서 통합사회와 생활과 윤리에는 경쟁사회와 협력이라는 사회적 관계 양상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늘 학업 혹은 운동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으니, 경쟁이라는 단어는 친숙할 것입니다. 과연 경쟁이란 무엇일까요? 인간 사회에서 경쟁은 한 개인이나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과 유사한 자원, 목표, 지위 등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가진 본능적 욕구나 심리적 욕구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진보와 발전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처럼 경쟁은 때로는 긍정적 영향을 끼쳐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고 효율적인 성과를 달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이 과도하거나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요. 개인적 갈등, 사회적 불안정 및 불평등 등의 문제 또한 좌시할 수 없겠죠?

이번 호에서는 경쟁적 관계에 대한 제시문을 두고, 인문 논술의 비판적 사고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문제를 바탕으로 교육에서 경쟁이 지닌 부정적 측면을 깊이 생각해봅시다. <가> 지문은 한 입사관이 쓴 책에서 발췌한 내용을 윤문 요약한 것입니다.[문제] 제시문 <나>를 활용해 <가>를 평가하시오. (1000자 내외)<가> 올해도 부산 지역 우수 학생들의 면접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보면 3년간의 치열한 노력과 성과가 빼곡하다. 면접에서 장래 희망을 묻자 “CEO가 되고 싶다”고 답한 학생에게 경영의 목표를 물으니 “노동자의 평등한 권리 회복”이라고 답한다. ‘정의’와 ‘공정’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이 경쟁에서 이겨 이 자리에 왔다는 사실은 불편해한다. 경쟁력을 묻는 질문엔 “함께 노력했다”고 답하고, 친구들이 함께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아이들은 ‘실력’이라는 말은 받아들이면서도 ‘경쟁’이라는 말에는 죄책감을 느낀다. 이는 많은 교사가 경쟁을 인성을 해치는 것으로 가르쳐온 결과다. 경쟁은 곧 약육강식, 삭막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부당한 경쟁이다. 경쟁은 포지티브섬이 될 수 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겠다는 도덕적 약속 위에 서 있다. 그 약속을 어기면 시장은 퇴출로 응답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경쟁을 왜곡된 시각으로만 가르쳐왔다. 그 결과 정당한 노력의 성과마저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교육은 경쟁의 본질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정당한 경쟁은 자랑스러운 것이며, 그것을 부정하게 만드는 교육이야말로 잘못된 것이다.

<나> 자연선택을 경쟁을 통한 성공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문화적 편견에 가깝다. 생존과 번식의 성공은 반드시 경쟁이 아니라 협력, 공생, 상호부조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자연선택이 본질적으로 경쟁을 선호하는 것도, 협력을 더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자연에서는 투쟁보다 평화적이고 협력적인 방식이 생존과 재생산에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생태계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갈등을 억제하며, 미성숙한 개체를 보호하는 등 다양한 협력적 전략이 자연선택에 적합하다. 자연선택은 경쟁 없이도 충분히 작동하며, 오히려 경쟁을 회피하고 협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들의 뿔은 외부 포식자에 맞서는 무기가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 쓰이는 무기다. 이런 싸움에서는 뿔의 상대적 크기가 중요하다. 돌연변이를 통해 큰 뿔을 갖게 된 수컷들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돌연변이들은 빨리 퍼져간다. 이런 돌연변이는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되면서 마치 국가 간 군비경쟁과 같은 상황을 일으킨다. 북미 대륙에서 가장 뿔이 큰 말코손바닥사슴의 경우 뿔의 길이는 4feet(약 1.2m) 이상이고, 무게는 40£(약 18kg)가 넘는다. 이것은 개체의 번식 적합성은 높이지만 종족 전체에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뿔이 커지면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기동력이 떨어져 늑대에게 잡아먹힐 개연성이 높다. 반면 뿔이 작으면 포식자를 피하기엔 유리하지만 다른 사슴과의 경쟁에서 피해를 보므로 작은 뿔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해설] 우선 <가>는 경쟁의 본질적 의미가 공정한 규칙과 과정에 있음을 말하면서 교육 현장에서의 경쟁을 긍정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읽어보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지요. 하지만 이번 문제는 <나>를 기준으로 <가>를 평가해야 하므로 경쟁을 반대하는 <나>의 관점에서 비판할 논리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나>는 자연 세계에서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유비추리의 논리를 사용해야 합니다. 유비추리는 비교되는 2개의 현상이나 대상의 유사한 속성이 있다면 관찰되지 않은 속성에서도 유사함이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논리를 말합니다. 어떻게 풀어나가면 될까요? 말코손바닥사슴에게 뿔의 경쟁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하여 인간 사회에도 그대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라면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쟁과 다를 바 없음을 말해야 합니다.

[논리적 양상]
[2025학년도 논술길잡이] 혁신 촉진하는 경쟁, 과도하면 갈등·불평등 유발
유비추리는 ①과 ②와 본질적으로 유사하므로 ③도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 현장에서 경쟁만 강조할 때 잃어버릴 것이 무엇인지 집단적 측면에서 생각하고, 위의 논리를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면 되겠습니다. 아래 예시 답안을 통해 구체적 전개 양상을 공부해봅시다.

[예시 답안] <나>는 경쟁에 대한 편견을 지적하며, 자연 상태에서 협력이 경쟁보다 생존에 유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예컨대 말코손바닥사슴은 수컷 사이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큰 뿔을 갖게 되었는데, 이는 오히려 집단 전체의 생존율을 크게 하락시킨다. 자연에서 얻은 교훈은 입시 과정에서 벌어지는 경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제한된 자리를 두고 다투며 자기 성공만을 목표로 둔다는 점에서 양측 경쟁의 본질이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가>는 말코손바닥사슴의 개체 간 투쟁처럼 실력 성장이라는 하나의 목적만 바라보며 전체적 악영향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를 학생과 사회 측면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학생 측면에서 본다면 <가>에서 주장하는 경쟁은 공정하더라도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학생들은 경쟁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 어우러지는 연대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규정하는 주체적 여유 등을 상실한 채 단일한 목적에 자연스럽게 몰두할 것이 자명하다. 경쟁 논리 속에서 뒤처지는 학생들은 모든 책임과 결과를 스스로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패배감은 다음번 승리를 위해 학생들을 내몰게 될 것이다. 이는 사회적 관계에서 조화로운 역할을 수행하는 역량, 다른 이들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 창의적 사고를 펼칠 수 있는 독창성, 삶을 성찰하는 철학적 태도 등 진정으로 중요한 요소를 앗아갈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 경계를 형성하고,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끼리 반목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커다란 뿔을 갖게 된 슬픈 말코손바닥사슴 수컷과 다름없는 것이다.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임재관 대치 한걸음 입시논술 원장
사회 전체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사회는 경쟁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연대하며, 제한된 자원의 배분과 사회적 약자의 보호에 동의한다. 이러한 체제가 잘 정비된 선진국일수록 국제사회에서 더 높은 경쟁력을 갖는다. 즉 한국 사회의 경쟁은 오히려 국가적 경쟁력과 생존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가>는 자연 세계가 주는 교훈을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